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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94권, 세종 23년 11월 21일 갑인 2번째기사 1441년 명 정통(正統) 6년

평안도에 성 쌓는 일과 왜인이 본국에서 고기잡는 것에 관해 의논하라 이르다

임금이 우승지 이승손(李承孫)을 인견(引見)하고 이르기를,

"예로부터 장성(長城)을 쌓는 데에, 비록 백성은 괴로웠을지라도 그 이익은 실로 많았다. 연(燕)·조(趙)165) 때에는 비록 쌓기를 마치지는 못하였으나 백성이 편안함을 힘입었고, 진(秦) 시황(始皇)은 참기(讖記)에 혹(惑)하여 만리 장성을 쌓아 오랑캐를 막았으나, 이세(二世)에 망하였다. 그러나 진(秦)나라가 망한 것은 장성 때문이 아니다. 시황오랑캐를 방어하기에 급하여 백성을 독려하여 빨리 쌓게 하므로서 여러가지로 폐단이 많았고, 기타 백성에게 원망을 맺음이 적지 아니하였으나, 시황 때에 어찌 장성의 이익이 없었겠느냐. 대저 성을 쌓는 것은 진실로 국가의 큰일이다. 늦추면 마칠 기한이 없고, 급하게 하면 백성에게 병을 일으키나니, 태조조(太祖朝)에는 도성(都城)을 쌓음에 백성들이 부역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므로, 두세 사람의 머리를 베고 밤낮으로 부역을 독려하였으므로 여역(癘疫)이 일어났었다. 그러나, 이제 평안도에 성을 쌓는 백성들에게 괴로운 폐단이 많고 역질(疫疾)도 일어났다고 하여 쌓게 하지 아니하면, 다 되어가는 일에 한 삼태기의 흙을 더하지 못하여 드디어는 완성을 보지 못할 것이고, 할려고 하면 인력이 부족하니 내가 심히 근심한다. 또 연변의 각 고을에 석보(石堡)가 없는 곳이 꽤 많은데, 장성을 쌓기 전에 도적이 만약 갑자기 들어오면 침략을 당할까 두렵고, 만약 석보를 다 쌓은 뒤에 비로소 장성을 쌓으면, 장성의 일이 늦어질 듯하여 큰일을 이루기가 어려울까 두려우니, 어떻게 하면 좋을까.

옛적에 신라의 후예(後裔)가 다대포(多大浦)에 가서 놀다가 장가들어 아들을 낳았는데, 지금의 대내전(大內殿)이 바로 그 후손이다. 이 까닭으로 태종조 때에 대마도왜인이 우리 국경에 들어와서 도둑질하매, 대내전의 대의(大義)를 들어서 문죄(問罪)하고, 그 부락을 무찔러 죽였으니, 그들이 본국을 생각함과 이웃을 사귀고 선조(先祖)를 생각하는 의리가 진실로 가상할 만하다. 그 뒤에 대내전백제(百濟)의 땅에 농사짓기를 애걸하므로 태종께서 수경(數頃)의 땅을 허락해 주고자 하니, 대신들이 모두 말하기를, ‘한 치의 땅이라도 가볍게 남을 줄 수 없습니다.’ 하므로, 드디어 정지하고 허락하지 아니하였는데, 오늘날 생각하면 이는 만세에 좋은 계책이다. 이제 왜인이 본국 고초도(孤草島)에서 고기를 낚아서 살기를 청하매, 논의하는 자가 모두 말하기를, ‘고초도는 우리 나라 땅이고, 또 변경이 가까우므로 허락할 수 없습니다.’ 하니, 이것 역시 좋은 계책이다. 내가 생각하건대, 대마도는 바로 두지도(豆只島)이다. 김중곤(金中坤)의 노비 문기(奴婢文記)에 있기를, ‘두지(豆只)에 사는 사람이라.’ 하였으니, 대마도는 곧 우리 나라 지경인데, 왜인에게 무엇이 관계되랴. 허락하지 아니함이 이치에 거슬리지 아니하나, 이제 왜인이 청하기를 간절히 하니, 우리 나라에서 이웃을 사귀고 작은 나라를 사랑하는 의리에 옳을까. 하물며 왜인이 고기잡는 것으로 생활하니, 그 생활이 또한 가엾다. 전자에 황희박안신(朴安臣)은, ‘고기잡는 배는 거짓 모르는 척함이 가합니다.’ 하였고, 그 나머지 대신은 혹 ‘엄하게 금하고 끊음이 마땅합니다. ’고 하였는데, 이제 만약 허락하지 않으면, 그 생활이 심히 곤궁하여 몰래 내왕할 것이니, 형편이 금제하기 어렵고, 허락하면 왜인이 우리 땅에 들어와서 이익을 취하는 것이니 불가하며, 또 떼를 지어 내왕하면 불측한 화(禍)가 있을까 염려스러우니 어떻게 처치할 것인가. 그것을 대신에게 의논하여 아뢰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0책 94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4책 370면
  • 【분류】
    과학-지학(地學) / 군사-관방(關防) / 역사-고사(故事) / 외교-왜(倭)

  • [註 165]
    연(燕)·조(趙) : 전국 시대.

○上引見右承旨李承孫曰: "自古長城之築, 民雖勞瘁, 其利實多。 之時, 雖未畢築, 民賴以安。 始皇惑讖記, 築長城而禦, 至二世亡天下, 然之亡, 非以長城也。 始皇急於禦, 督民遄築, 勞弊萬端, 其他結怨于民, 不爲不多。 始皇之時, 豈無長城之利乎? 大抵築城, 誠國家重役, 緩則告訖無期, 急則疾疫乃興。 在太祖朝, 修築都城, 民不樂趨, 斬二三人頭, 晝夜督役, 疫癘乃興。 今平安道築城之民, 勞弊已多, 疾疫亦興, 不爲則功虧一匱, 爲之則民力不足, 予甚憂之。 且沿邊各官無石堡者頗多, 長城未築, 而賊若突入, 則恐被侵掠, 若畢石堡, 而後始築長城, 則長城之役似緩, 恐大事不成。 如之何則可也? 昔新羅後裔遊多大浦, 娶妻生子, 今大內殿, 卽其後也。 以故在太宗朝, 對馬 倭人入寇我境, 大內殿擧義問罪, 屠殺部落, 其追念本國交隣念先之義, 誠可嘉尙。 其後大內殿乞耕於百濟之境, 太宗欲許數頃, 大臣皆曰: ‘雖尺寸之地, 不可輕易與人’。 遂寢不許, 今日思之, 是萬世長策也。 今倭人請於本國孤草島釣魚以生, 議者皆曰: ‘孤草島, 我國之地, 而又近邊境, 不可許’。 是亦嘉謀也。 予惟對馬島, 卽豆只島也。 金中坤奴婢文記, 有豆只居接人, 則對馬島, 卽我國之境也。 何關於倭人? 其不許之, 於理不悖矣。 今倭人請之懇懇, 以我國交隣字小之義, 其不許之可乎? 況倭人以釣魚爲生, 其生亦可憫也。 向者黃喜朴安臣以爲: ‘捕魚船, 佯若不知可也’。 其餘大臣或謂當痛禁絶。 今若不許, 則其生甚窮, 潛隱來往, 勢難禁制, 許之, 則倭人得入我地取利不可。 且成群往還, 慮有不測之患, 何以處之? 其議諸大臣以聞。"


  • 【태백산사고본】 30책 94권 11장 B면【국편영인본】 4책 370면
  • 【분류】
    과학-지학(地學) / 군사-관방(關防) / 역사-고사(故事) / 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