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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94권, 세종 23년 10월 20일 계미 2번째기사 1441년 명 정통(正統) 6년

대제학 조말생이 자신이 범장한 여부를 분간하기를 청하다

예문관 대제학 조말생이 상언(上言)하기를,

"신의 아들 조찬(趙瓚)이 지난 9월 17일의 도목정(都目政) 때에 사헌부 감찰에 임명되었사온데, 서사(署謝)가 사헌부에서 이르렀사오나 오래도록 서경(署經)하지 아니하오니, 이는 신이 범장(犯贓)한 일을 의논한 것입니다. 신이 주(周) 나라 관제(官制)를 보옵건대, ‘대사구(大司寇)는 양조(兩造)141) 로써 백성의 소송을 금하고, 소사구(小司寇)는 오성(五聲)으로써 옥송(獄訟)을 듣고 민정(民情)을 살핀다. ’고 하였으며, 여형(呂刑)142) 에 이르기를, ‘양조(兩造)가 갖추었거든 모두 오사(五辭)143) 를 들으라. ’고 하였사오니, 이는 송자(訟者)144) 의 말만 가지고 그 허실(虛實)을 찾는 것이 아니옵니다. 고요(皐陶)145) 는 죄인에 대하여 신중하게 심문하고, 소공(蘇公)은 법을 공경히 함은, 모두 이로 말미암은 것입니다. 또 조율(照律)의 법은 모름지기 범인의 자복한 초사(招辭)에 의거하여 죄명(罪名)을 조율한 것이오나, 만약 자복한 초사가 없으면 율(律)로 비출 수 없사오니, 이는 형벌을 쓰는 데에 바뀌지 않은 떳떳한 법입니다.

병오년 봄에 신이 노비(奴婢)로 인한 한 가지 일 때문에 폄출(貶黜)을 받아 유배(流配)되었사온데, 사헌부 관리들이 본래 신과 더불어 감정을 끼고 있사와, 신을 원망하는 집에다 비밀히 사주(使嗾)함으로 인하여 애써 심각하게 죄를 만들어 꾸몄습니다. 우선 그 한 가지 일을 가지고 말하옵건대, 지난 신축년에 신의 아들 조선(趙璿)의 길례(吉禮) 때에 부득이하여 서철(徐哲)에게서 필단(匹段)과 예전에 소용되던 은기물(銀器物) 등을 바꾸었사온데, 사헌부에서 추고할 때에, 서철의 부자가 신의 집 여종[婢]들과 바꾼 실정을 두 차례나 명백히 공술하였으되, 헌부에서 신에게 화(禍)를 반드시 끼치고자 하여, 서철에게 형벌을 더하여 뇌물로 준 것으로써 말 단서에서 근거를 취하였사오니, 이는 이른바, ‘매질 밑에는 무엇이든지 못할 것이 없다. ’고 하는 것입니다. 신이 대질(對質)하였었던들 마땅히 이 화가 없을 것이온데, 그때에 신이 천리 밖에 유배(流配)되었사오매, 어찌 대질할 수 있었겠습니까. 장죄(贓罪)로 신을 다스린 것을 신은 모두 알지 못하였으며 알지 못했으니 한 장의 납초(納招)도 없었은즉, 무엇에 의거하여 조율(照律)하오며 무엇에 의거하여 장죄를 범하였다고 일컬으오리까. 신의 장죄를 다스림이 모두 이와 같은 것입니다. 신이 옥편(玉篇)에서 장자(贓字)의 해석을 보온즉 장(藏)이라고 하였고, 장자(藏字)의 해석은 ‘은닉(隱匿)하다.’ 또는 ‘창고에 감추다. ’라는 뜻이었습니다. 이로써 보오면, 계장(計贓)의 법은 물건을 숨겨서 창고에 감추어 둔 것을 가리켜 말한 것이요, 노비가 창고에 갈무린 것을 가지고 어찌 계장(計贓)의 예에 들일 수 있겠습니까. 신이 김도련(金道鍊)의 노비를 얻어서 사용한 것은 주는 것을 받은 것이 아니옵고, 실은 봉족(奉足)으로 한 것이옵니다. 설사 주는 것을 받았을지라도 어찌 사람을 장물(贓物)로 계산하오리까. 병오년에 사헌부 관리가 본래 신과 더불어 혐의를 가지고 있는 사유(事由)를 만일 위에서 물으심이 계셨다면, 신이 마땅히 사실대로 대답하였을 것입니다.

사대부(士大夫) 집에서 자손이 나면, 밝은 시대에 쓰이기를 누구가 원하지 아니하오리까. 신은 특히 성상의 은혜를 받자와 벼슬이 1품에 이르렀으며, 또 궤장(几杖)을 받았사오니 마음으로 그윽이 생각하기를, 성상께서 이미 신의 죄를 밝게 보시고 신에게 우악(優渥)한 은총(恩寵)을 내리시기를 이처럼 하시니, 사림(士林)의 논의가 마땅히 이로부터 공평하리라고 하였습니다. 이제 사헌부에서 병오년에 신에게 묻지도 아니하고 법을 어겨서 조율(照律)하여 꾸며 만든 죄에 의하여 찬(瓚)의 앞길을 폐하게 하오니, 늙마에 심정이 심히 박절하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성상의 은혜로서 유사(攸司)에 내려 범장(犯贓)한 여부를 분간하게 하소서. 이는 큰 옥사(獄事)를 다시 추핵(推覈)함이 아니옵고, 병오년에 각인이 추고(推考)한 문서 안에서 잡송(雜訟)은 제외하고, 장옥 문안(贓獄文案)에 서로 송사(訟事)한 일만 가지고 옳고 그름을 분간할 뿐이옵니다. 신이 만약 윤허하심을 입게 되오면, 신이 이미 늙었사오매 살아서는 보답할 길이 없겠사오나, 죽어서는 마땅히 결초보은(結草報恩)하오리이다."

하니, 사헌부 장령 홍심(洪深)을 불러서 찬(瓚)의 고신(告身)에 서경(署經)하기를 명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0책 94권 6장 A면【국편영인본】 4책 367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사법-재판(裁判) / 사법-탄핵(彈劾) / 역사-고사(故事)

  • [註 141]
    양조(兩造) : 원고와 피고.
  • [註 142]
    여형(呂刑) : 《서경(書經)》의 편명(篇名).
  • [註 143]
    오사(五辭) : 다섯 가지 형벌에 해당한 말.
  • [註 144]
    송자(訟者) : 원고.
  • [註 145]
    고요(皐陶) : 순(舜)의 신하.

○藝文館大提學趙末生上言曰:

臣之子去九月十七日政, 得拜司憲監察, 謝到憲府, 久不署經,是議臣犯贓也。 臣觀《周官》, 大司寇以兩造禁民訟, 小司寇以五聲聽獄訟, 求民情。 《呂刑》曰: "兩造俱備, 師[辭] 聽五辭。" 是則未始不以訟者之言而求其情僞也。 (阜陶)〔皋陶〕 之淑問, 蘇公之式敬, 皆由此也。 且照律之法則須據犯人服招, 照得罪名, 若無招服, 則不得照律, 是用刑不易之常法也。 歲丙午春, 臣初以奴婢一事, 受貶流外。 憲府官吏, 素與臣有挾, 因臣怨家密嗾, 務爲深刻, 鍊成文致, 羅織臣罪, 姑卽其一事而言之。 去辛丑年臣之子吉禮時, 不得已交易徐哲匹段及古稱銀所要等物, 憲府推考時, 徐哲父子及臣之戶婢等交易情實, 二度明白納段, 憲府必欲貽禍於臣, 加刑徐哲以贈與, 據取言端, 是所謂箠楚之下, 何求不得者也。 臣若口對, 則當無此禍矣, 臣其時貶在千里之外, 何敢口對? 所以治臣贓獄, 臣皆不知。 旣不知, 而無一張納招, 則何所據而照律! 又何所據而稱犯贓乎! 治臣贓獄, 類皆如此。 臣抑觀《玉篇》釋贓字曰: "藏也。" 釋藏字曰: "隱匿, 又庫藏也。" 以此觀之則計贓之法, 指隱匿庫莊者言也。 奴婢豈是庫莊而入計贓之例乎? 臣之得於金道鍊奴婢使用者, 非受贈, 實是奉足之功也。 設若受贈, 豈以人物而計贓乎? 丙午年憲府官吏, 素與臣有挾事由, 如有上問, 臣當實對。 士大夫之家, 生子若孫, 孰不願爲明時之用? 臣特蒙聖恩, 位至一品, 又受几杖, 心竊以爲聖上已燭臣罪, 賜臣寵渥, 以至如此, 士林之議, 當自此而公也。 今憲府依丙午年當臣不問違法照律誣論織成之罪, 廢前程, 桑楡晩景, 情甚迫切。 伏望上恩, 乞下攸司, 臣之犯贓與否分揀。 (上慈)此非更推大獄, 丙午年各人推考文案內, 除雜訟, 只將贓獄文案相訟事, 是與否分揀而已。 臣若蒙兪允, 臣已老矣, 生雖無以報效, 死當結草。

召司憲掌令洪深, 命署經告身。


  • 【태백산사고본】 30책 94권 6장 A면【국편영인본】 4책 367면
  • 【분류】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사법-재판(裁判) / 사법-탄핵(彈劾)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