검색
상세검색 문자입력기
세종실록 93권, 세종 23년 9월 29일 임술 5번째기사 1441년 명 정통(正統) 6년

이선·박팽년·이개 등에게 《명황계감》의 편찬을 명하다

임금이 호조 참판 이선(李宣)·집현전 부수찬 박팽년(朴彭年)·저작랑(著作郞) 이개(李塏) 등에게 명하여 말하기를,

"옛사람이 당(唐) 명황(明皇)129)양귀비(楊貴妃)의 일을 그린 자가 퍽 많았다. 그러나, 희롱하고 구경하는 자료에 불과하였다. 내가 개원(開元)·천보(天寶)의 성패(成敗)한 사적을 채집하여 그림을 그려 두고 보려 한다. 예전 한(漢)나라 때에 승여(乘輿)와 악좌(幄坐)와 병풍(屛風)에 주(紂)가 취(醉)하여 달기(妲己)에게 걸어앉아 긴 밤[長夜]의 즐거움을 짓던 것을 그렸다 하니, 어찌 세상 인주(人主)들로 하여금 전철(前轍)을 거울삼아 스스로 경계하게 하려는 것이 아니었겠는가. 명황(明皇)은 영주(英主)라고 이름하였었는데, 만년(晩年)에 여색(女色)에 빠져 패망하기에 이르렀으니, 처음과 끝의 다름이 이 같은 자가 있지 않았다. 월궁(月宮)에 놀았다든가, 용녀(龍女)를 보았다든가, 양통유(楊通幽)130) 등의 일은 지극히 허황하고 망령되어 쓸[書] 만한 것이 못된다. 그러나, 주자(朱子)강목(綱目)에다 역시 ‘황제가 공중(空中)에서 귀신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고 써서, 명황(明皇)이 기괴한 것을 좋아하는 사실을 보인 것이니, 무릇 이런 등(等)의 말은 역시 국가를 맡은 자가 마땅히 깊이 경계하여야 할 것이다. 너희들은 이를 편찬하여라."

하니, 이선 등이 명령을 받들어 찬집(撰集)하되, 먼저 그 형상을 그리고 뒤에 그 사실을 기록하였는데, 혹은 선유(先儒)의 논(論)한 것을 기록하기도 하고, 혹은 고금(古今)의 시(詩)를 써 넣기도 하였다. 서(書)가 다 이룩되매, 이름을 《명황계감(明皇誡鑑)》이라고 내렸다.


  • 【태백산사고본】 30책 93권 39장 A면【국편영인본】 4책 364면
  • 【분류】
    역사-고사(故事) / 출판-서책(書冊)

  • [註 129]
    당(唐)명황(明皇) : 현종(玄宗).
  • [註 130]
    양통유(楊通幽) : 도사(道士)로서 죽은 사람의 혼백을 불러 올 수 있다 하여, 이에게 명하여 양귀비의 혼백이라도 다시 만나기를 바랐다고 함.

○上命戶曹參判李宣、集賢殿副修撰朴彭年、著作郞李塏等曰: "古人圖 明皇楊妃之事者頗多, 然不過以爲戲玩之資耳。 予欲採開元天寶成敗之跡, 圖畫以觀。 昔時乘輿幄坐屛風, 畫醉踞(姐己)〔妲己〕 作長夜之樂, 豈非令世主鑑前轍以自戒耶? 明皇號稱英主, 而晩年沈於女色, 以至於敗, 終始之異, 未有如此者也。 至若遊月宮見龍女、楊通幽等事, 極爲誕妄, 似不足書也。 然朱子《綱目》, 亦書帝聞空中神語, 以見明皇好怪之實。 凡此等語, 亦有國家者之所宜深戒也, 爾等其纂之。" 等承命撰集, 先圖其形, 後紀其實, 或附以先儒之論, 或係以古今之詩。 書旣成, 賜名曰《明皇誡鑑》

世宗莊憲大王實錄卷第九十三終


  • 【태백산사고본】 30책 93권 39장 A면【국편영인본】 4책 364면
  • 【분류】
    역사-고사(故事) / 출판-서책(書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