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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93권, 세종 23년 9월 21일 갑인 3번째기사 1441년 명 정통(正統) 6년

현덕빈의 지문(誌文)과 명(銘)

현덕빈(顯德嬪)을 옛 안산읍(安山邑) 와리산(瓦里山)에 장사지냈다. 그 지문(誌文)에 이르기를,

"삼가 상고하건대, 빈(嬪)의 성(姓)은 권씨(權氏)로서, 먼 조상[遠祖] 김행(金幸)신라(新羅)의 대성(大姓)이었다. 복주(福州)를 지키고 있었는데, 고려 태조(高麗太祖)신라를 공격할 때에 가다가 복주에 이르니, 행(幸)이 고을을 가지고 항복하였으므로, 태조가 말하기를, ‘행(幸)은 가위(可謂) 권도(權道)를 안다 하겠다.’ 하고, 인하여 ‘권(權)’ 이라고 사성(賜姓)하였는데, 벼슬이 태사(太師)에 이르렀다. 이로 인하여 김씨가 처음으로 권씨가 되었는데, 대대로 현철(賢哲)한 이가 많이 나서 영성(榮盛)하기가 비할 데 없었다. 증조(曾祖)의 휘(諱)는 정평(正平)이니, 증 통정 대부 공조 참의 행 통직랑 판도 정랑(贈通政大夫工曹參議行通直郞版圖正郞)이요, 조(祖)의 휘(諱)는 백종(伯宗)이니, 가선 대부(嘉善大夫) 검교 한성 윤(檢校漢城尹)으로 중추원 부사(中樞院副使)에 증직(贈職)되었고, 부(父)의 휘(諱)는 전(專)이니, 지금 자헌 대부 중추원 사(資憲大夫中樞院使)가 되었다. 어머니 최씨(崔氏)고려(高麗)의 대유(大儒) 중서령(中書令) 문헌공(文憲公) 휘(諱) 최충(崔沖)의 12세 손(孫)인 서운 부정(書雲副正) 휘(諱) 최용(崔鄘)의 딸이니, 영락(永樂) 무술 3월 임신(壬申)에 빈(嬪)을 홍주(洪州) 합덕현(合德縣)의 사제(私第)에서 낳았다. 빈(嬪)은 나면서 정숙하고 아름다워 외화(外華)가 보통과 다르고, 말과 행실이 예절에 합하였다. 선덕(宣德) 신해(辛亥)에 뽑혀서 세자궁(世子宮)에 들어와 승휘(承徽)가 되었고, 얼마 아니 되어 양원(良媛)으로 승격되었다. 정통(正統) 정사(丁巳) 2월에 빈(嬪) 봉씨(奉氏)가 부덕(不德)함으로 인하여 폐위(廢位)되매, 드디어 책봉(冊封)되어 빈(嬪)이 되었다. 공경히 양궁(兩宮)을 받들매 화(和)한 마음으로 기쁘게 받들고, 좌우(左右)의 잉시(媵侍)들에게는 항상 얼굴빛을 부드럽게 하여, 삼가고 화합하는 미풍을 조성하였다. 신유년 7월 23일 정사에 몸을 풀어서 원손(元孫)이 탄생되니, 양궁(兩宮)께서 매우 기뻐하시고, 온 나라 신민(臣民)들이 서로 축하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이날 임금께서 근정전(勤政殿)에 나아가시어 교서(敎書)를 반강(頒降)하여 나라 안에 대사(大赦)하게 하시고, 또 장차 원손의 탄생한 예(禮)를 거행하려 하시었는데, 이튿날 무오(戊午)에 갑자기 병이 나시어 동궁(東宮) 자선당(資善堂)에서 운명하셨으니, 춘추(春秋)가 스물 넷이다. 의원이 미처 약을 쓰지 못하였고, 기도(祈禱)도 신명(神明)에 두루 하지 못하여, 양궁께서 슬퍼하며 애석하게 여기시고, 나라 사람들도 슬퍼하지 않는 이가 없었다. 아아, 슬프도다. 양궁께서 대공(大功)으로 5일간 복입으셨고, 세자께서는 기복(期服)으로 30일간 복입으셨다. 9월 초7일에 시호(諡號)하기를 현덕(顯德)이라 하고, 예(禮)를 갖추어 안산군(安山郡)의 고읍(古邑) 산에 장사하였다. 빈(嬪)은 타고난 성품이 한정(閑靜)하시어 입궁(入宮)하여서도 칭찬이 많아, 능히 동궁(東宮)에 짝이 되어 이 원손(元孫)을 낳으셨으니, 일국(一國)의 경사이었다. 어찌하여 한 병으로 갑자기 고치지 못하게 되었는가. 아아, 슬프도다. 빈(嬪)은 일남 일녀(一男一女)를 낳으셨으니, 여아는 이미 젖을 떼었고, 남아는 곧 원손(元孫)이다."

하고, 명(銘)에 이르기를,

"부드럽고 지혜로운 덕(德)과 아름답고 고운 용모가 양궁(兩宮)에게 사랑을 받아, 그 책봉(冊封)하심을 받았고, 의식대로 빈(嬪)의 법도를 닦으시어 미덥게도 원량(元良)의 짝이 되셨도다. 원손(元孫)이 탄생되어 울음소리 황황(皇皇)하니, 종팽(宗祊)에 경사가 넘쳤고 기쁨이 조야(朝野)에 가득하였는데, 하늘이여, 어찌하여 나이[年]마저 안 주셨나. 자는 듯 세상을 떠나시매 복을 누리지 못하셨도다. 슬픈들 어이하리 말씀이나 돌에 새기리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0책 93권 37장 A면【국편영인본】 4책 363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의식(儀式) / 어문학-문학(文學) / 가족-성명(姓名)

○葬顯德 于古安山 瓦里山。 其誌文曰:

謹按嬪姓權氏, 遠祖金幸, 新羅大姓也, 守福州高麗 太祖新羅, 行至, 擧邑以降, 太祖曰: "可謂有權矣。" 因賜姓曰, 官至太師。 由是金氏始爲, 世多賢哲, 榮盛莫比。 曾祖諱正平, 贈通政大夫二曹參議、行通直郞、版圖正郞; 祖諱伯宗嘉善大夫、檢校漢城尹, 贈中樞院副使; 父諱, 今爲資憲大夫、中樞院使, 母崔氏, 高麗大儒中書令文憲公之十二世孫, 書雲副正諱之女也。 以永樂戊戌三月壬申, 生嬪于洪州 合德縣之私第。 嬪生而淑懿, 姿相異常, 言行中節。 宣德辛亥, 選入世子宮, 爲承徽, 未幾陞良媛。 正統丁巳二月, 嬪奉氏以不德廢, 遂冊封爲嬪。 肅承兩宮, 怡愉奉歡, 左右媵侍, 常蒙假與顔色, 克成肅雝之美。 歲辛酉七月二十三日丁巳免身, 元孫乃生, 兩宮喜甚, 一國臣民莫不交賀。 是日, 上御勤政殿, 頒降敎書, 大宥境內, 又將擧元孫生之禮, 翌日戊午, 忽疾發終于東宮資善堂, 春秋二十有四。 醫不及施其藥, 禱不得徧于神, 兩宮軫悼, 國人莫不悲焉。 嗚呼痛哉! 兩宮服大功五日, 世子服期三十日。 以九月初七日, 諡曰顯德。 以禮葬于安山郡治之古邑山。 嬪天姿閑靜, 入宮多譽, 克配東宮, 生此元孫, 一國之慶。 夫何一疾, 遽至莫醫? 嗚呼痛哉! 嬪生一男一女, 女旣齕, 男卽元孫也。 銘曰: 柔惠之德, 婉孌之容。 媚于兩宮, 受厥冊封。 式修嬪則, 允配元良。 元孫乃生, 其泣皇皇。 慶衍宗祊, 喜溢朝野。 天乎何故, 年不之假? 奄然辭世, 莫以享福。 悲哉奈何? 刻詞于石。


  • 【태백산사고본】 30책 93권 37장 A면【국편영인본】 4책 363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의식(儀式) / 어문학-문학(文學) / 가족-성명(姓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