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93권, 세종 23년 9월 12일 을사 1번째기사
1441년 명 정통(正統) 6년
동지중추원사 유은지의 졸기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유은지(柳殷之)가 졸(卒)하였다. 은지의 초명(初名)은 유은지(柳隱之)인데, 황해도 문화(文化) 사람이며, 찬성사(贊成事) 유만수(柳曼殊)의 아들이었다. 음관(蔭官)으로 보직되어 여러 번 옮겨, 이조(吏曹)·병조(兵曹)의 정랑(正郞)이 되었고, 여러 벼슬을 지나 중추원 사(中樞院使)에 이르렀다. 은지의 성품은 호사(豪奢)하여 응견(鷹犬)과 성색(聲色)을 좋아하였으며, 불학무술(不學無術)하여 가도(家道)가 바르지 아니하였다. 처음에 신우(辛禑)가 평리(評理) 왕흥(王興)의 딸을 들여서 비(妃)를 삼았었는데, 우(禑)가 폐(廢)하게 되니, 은지가 맞아들여 아내를 삼았으므로, 유사(有司)가 논핵(論劾)하여 이혼하게 하였었다. 이에 이르러 졸(卒)하니, 72세이었다. 시호(諡號)를 황호(荒胡)라 하였으니, 음악을 좋아하고 정치를 게을리 한 것을 황(荒)이라 하고, 나이가 많도록 수(壽)하고 강녕한 것을 호(胡)라 하였다. 아들 유강(柳江)·유서(柳溆)·유수(柳洙)가 있었다.
- 【태백산사고본】 30책 93권 28장 A면【국편영인본】 4책 358면
- 【분류】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