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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93권, 세종 23년 8월 27일 신묘 1번째기사 1441년 명 정통(正統) 6년

민의생 등이 안산의 무덤 혈을 살펴보고 목효지의 글을 논단하다

민의생·조서강 등이 안평 대군 이용(李瑢)과 같이 가서 안산(安山)의 장혈(葬穴)을 살펴보고 목효지의 글을 축조(逐條)해서 논단(論斷)하였는데, 그에 이르기를,

"내룡(來龍)이 얕고 약하며, 길[路]로 끊어진 곳이 많기가 10여 곳에 이른다 하였으 나 내룡은 안산(安山) 신군(新郡)의 주산(主山)에서 왔는데, 혹 일어나[起]고 혹 엎드려[伏]서 형세(形勢)에 기(氣)가 있으니, 얕고 약한 것이 아니다. 비록 얕고 약하다고 말하여도, 지리서(地理書)에 우단사련(藕斷絲連)107) 이라는 말이 있은즉, 어찌 내맥(來脈)이 얕고 약하다 하여 산기(山氣)가 단절(斷絶)되었겠는가. 길[路]로 끊어졌다는 말에 이르러서는, 도성(都城)의 주산인 백악(白嶽)제릉(齊陵)은 길로 끊어진 곳이 많은데, 어찌 방해(防害)된다 이르겠는가. 만약 길로 끊어진 것을 흉(凶)하다 하면, 《청오경(靑烏經)》의 주(注)에 이르기를, ‘혹 자연(自然)으로 이루어졌고 혹 인력(人力)으로 되었다.’ 하였고, 《출식가(出式歌)》에 이르기를, ‘높은 것이 도로 높고 얕은 것이 도로 얕으면, 길[路]을 막아 기(氣)를 기르는 것이 무슨 어려움이 있을까.’ 하였고, 말하기를, ‘건해산(乾亥山)이 변하여 계좌정향(癸坐丁向)이 되었고, 물이 사지(巳地)의 장생방(長生方)을 깨었다.’ 하였으나, 이제 주산 내맥(主山來脈)과 낙혈(落穴)된 곳에서 효지(孝智)와 더불어 살펴보니, 산맥이 임방(壬方)에서 왔고, 또 주산의 잡목을 다 벌채하고 안산(案山)에 올라가서 본즉, 주혈(主穴)이 산의 중앙에서 떨어졌으므로, 주산으로 돌아가서 다시 이를 살펴보니, 특히 임산(壬山)만이 아니라, 혈(穴)이 감방(坎方)에서 떨어졌으므로, 다시 그곳에 혈을 정해서 점(點)을 찍었고, 말하기를, ‘혈이 천관에 있다.’ 하는데, 대개 명당(明堂)의 물이 주산(主山)의 낙혈(落穴) 아래에서 나온 것이라면 그러하지만, 함께 명당(明堂)의 수원(水源)을 탐색하니, 한 근원은 백호산(白虎山) 북쪽에서 나오고, 한 근원은 주산(主山) 골짜기의 근원에서 나온즉, 혈(穴)이 천관(天關)에 있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이다. 말하기를, ‘청룡(靑龍)이 물을 띄고 곧게 달렸[直走]다.’ 하고, 또 이르기를, ‘좌산(左山)과 우수(右水)가 곧은 것은 흉(凶)하다.’ 하였는데, 이제 효지(孝智)와 더불어 함께 산마루[山頂]에 올라가서 이를 보니, 효지는 비록 제이 청룡(第二靑龍)이 물을 띄고 곧게 내려갔다고 말하나, 그러나 그 산맥은 곧게 달려온 것이 아니고 수구(水口)에 이르러 안으로 향하여 둘러안았[回抱]고, 또 그 내룡의 물이 주산(主山)의 동변(東邊) 골짜기 근원에서 나와서 동구(洞口)로 흘러 내려가 명당수(明堂水)와 합하여 바다로 흘러 들어가니, 어찌 가히 청룡이 물을 띄고 곧게 달렸다고 하겠는가. 그 좌산(左山)·좌수(左水)가 곧은 것이라는 설(說)은 더욱이 망령된 말이니, 지리서(地理書)에 좌산·우수가 곧고, 우산(右山)·좌수(左水)가 곧다는 말은 있어도, 좌산(左山)·좌수(左水)라는 말은 없으니, 그 망령된 말이라는 것은 변명을 기다리지 아니하고도 명백한 것이다. 말하기를, ‘동궁(東宮)이 달려가 서궁(西宮)을 지났[竄過]다.’ 하였는데, 대개 동궁은 청룡(靑龍)을 말함이요, 서궁은 백호(白虎)를 이름인데, 이 산(山)의 안(案)이 백호(白虎)에 연속되어 있기 때문에, 효지가 안산(案山)을 서궁(西宮)이라 하니, 그 허탄하고 망령됨이 더욱 심합니다. 말하기를, ‘고현(古縣)은 산가(山家)의 꺼리는 바라.’ 하였는데, 지리서(地理書)에 이르기를, ‘성곽(城郭)의 구허(丘墟)로서 인정(人情)에 불합(不合)하는 곳은 쓰지 않는다.’ 하였으나, 이 땅은 비록 고현(古縣)이라고 말하지만, 대단(大段)한 성곽의 구허와는 비교가 아니 되고, 잠시 소보를 쌓았을 뿐이다. 하물며 지리서에 ‘성(城)이 끊고 길[路]이 끊어서 기(氣)를 상(傷)한 곳은 쓰지 않는다.’ 하였는데, 이 산은 비록 고현(古縣)에 있으나, 그 주산(主山)의 혈(穴)은 성(城)이 끊은 곳이 아니고 온전한 땅이니, 써서 무엇이 해로우랴 하여, 이로써 힐책(詰責)하니, 효지(孝智)가 말이 막히어 대답하지 못하나, 마음속으로는 그대로 불복(不服)하였다. 처음에 주산(主山) 동쪽 가까이 혈(穴)을 정하고, 다시 안산(案山)에 올라 그 산맥을 살펴보고 조금 서쪽에다 고쳐서 혈을 정하였는데, 최양선이 고쳐 정한 곳에 광(壙)을 파지 아니하고 처음에 정한 곳에다 광을 팠으므로, 민의생(閔義生)이 이를 힐책하니, 양선(揚善)이 망령되게 말하기를, ‘내가 마음대로 옮긴 것이 아니라 실로 공(公)이 정한 바이다. ’라고 하였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30책 93권 25장 A면【국편영인본】 4책 357면
  • 【분류】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출판-서책(書冊)

  • [註 107]
    우단사련(藕斷絲連) : 겉으로는 끊어졌으나 중심(中心)은 이어졌다는 말.

○(辛亥)〔辛卯〕 /閔義生趙瑞康等, 與安平大君 往審安山葬穴, 以孝智書逐條論斷:

其曰: "來龍低弱, 路斷之處, 多至十餘。" 然來龍自安山新郡主山來, 或起或伏, 形勢有氣, 非低弱也。 縱曰(紙)〔低〕 弱, 地理書有藕斷絲連之語, 則豈來脈低弱而山氣斷絶乎? 至若路斷之說, 都城主山白嶽齊陵, 多有路斷之處, 豈可謂之防害哉? 若以路斷爲凶, 則《靑烏經》注云: "或自然而成, 或人力爲之。" 出式歌曰: "高還高低還低, 則防路養氣, 何難之有?" 曰: "乾亥山, 變爲癸坐丁向, 水破巳地長生方。" 今於主山來脈及落穴處, 與孝智相之, 山脈自壬而來。 且盡伐主山雜木, 登案山看之, 主穴落於山之中央, 故還主山更相之, 不特壬山穴落於坎。 更定點穴於其處曰: "穴在天關。" 蓋明堂水出於主山落穴之下則然矣。 共探明堂水源, 一源出於白(虒)〔虎〕 山之北, 一源出於主山洞之源, 則不可謂穴在天關也。 曰: "靑龍帶水而直走。 《門》云: ‘左山(右)〔左〕 水直者凶。’" 今與孝智共登山頂觀之, 孝智雖曰第二靑龍帶水直下, 然其山脈, 非是直走來, 至水口內向回抱。 又其來龍之水, 出於主山東邊洞源, 流下洞口, 與明堂水合流入海, 豈可謂靑龍帶水而直走乎? 其左山左水直者之說, 尤是妄說。 地理書有左山右水直右山左水直之文, 無左山左水之文, 則其爲妄說, 不待辨而明矣。 曰: "東宮走竄過西宮。" 蓋東宮則靑龍之謂也, 西宮則白(虒)〔虎〕 之謂也。 此山之案, 連續白(虒)〔虎〕 , 故孝智以案山爲西宮, 其爲誕妄尤甚矣。

曰: "古縣, 山家之忌也。" 地理書云: "城郭丘墟不合人情之處不用。" 則此地雖云古縣, 不是大段城郭丘墟之比也。 暫築小保而已。 況地理書, 城斷路絶傷氣處不用, 則此山雖在古縣, 其主山之穴, 不是城斷之處, 乃是全地, 用之何防? 以此詰責之, 孝智語塞不答, 心猶不服。 初點穴於主山近東, 更登案山, 審其山脈, 改點穴於稍西。 崔揚善不於改點處穿壙, 乃於初定處穿壙, 閔義生詰責之, 揚善妄曰: "非我擅移, 實公所定也。"


  • 【태백산사고본】 30책 93권 25장 A면【국편영인본】 4책 357면
  • 【분류】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출판-서책(書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