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덤의 광중을 파는 법에 관한 민의생과 정인지의 상소문
풍수학 제조(風水學提調) 예조 판서(禮曹判書) 민의생(閔義生)·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정인지(鄭麟趾) 등이 아뢰기를,
"《착맥부(捉脈賦)》에 범인(范麟)이 말하기를, ‘〈무덤의〉 광중(壙中)을 파는 법은 깊이 감추는 것을 요구하나니, 1장(丈)100) 의 깊이 이하는 우습(雨濕)이 능히 이르지 못하는 바이요, 한기(旱氣)도 침입하지 못하는 바라. ’고 하였고, 사마온공(司馬溫公)이 말하기를, ‘광중을 파는 것은 마땅히 깊어야 할 것이니, 깊으면 도적이 가까이 하기 어렵다.’ 하였고, 이수약(李守約)이 말하기를, ‘무릇 발굴(發堀)하는 것은 모두 얕게 장사(葬事)한 까닭이니, 만약 깊이가 1, 2장(丈)이 된다면 자연히 그런 근심은 없을 것이다.’ 하였사온데, 복주(福州) 사람이 옛 무덤을 파 옮기는데, 조금 깊은 것은 물이 있는 것이 없지 아니하니, 얕게 장사(葬事)하는 것은 대개 물을 방지하려 함일 뿐이었습니다. 북방(北方)의 토지는 깊고 두터워서 깊이 장사하는 것도 무방합니다. 《문헌통고(文獻通考)》에 이르기를, ‘산(山)을 경영하는 용지(用地)가 7경(頃)101) 인데, 방중(方中)의 용지(用地)가 1경(頃)으로, 깊이가 13장(丈)이라.’ 하였고, 당(唐) 태종(太宗)을 소릉(昭陵)에 장사지내는데 깊이가 75척이라 하였으며, 《호씨연길서(胡氏涓吉書)》에 이르기를, ‘장혈(葬穴)의 얕고 깊은 것은 토규척(土圭尺)을 사용하되, 그 자[尺]는 1척 5촌이 된다. ’고 하였습니다. 이것으로 보면, 고인(古人)의 광중(壙中)을 파는 제도는 깊은 것으로써 귀(貴)함을 삼지 않은 것이 없사오며, 그 얕게 장사(葬事)한 것은 다만 수환(水患)을 피하려고 한 것뿐입니다. 의논하는 자가 말하기를, ‘광중을 파는 제도는 마땅히 주척(周尺)을 써야 한다. ’고 하오나, 본국(本國)의 장사지내는 것은 대개 높고 큰 언덕을 사용하므로, 비록 깊이 판다 하더라도 수환(水患)은 없을 것 같사온데, 만약 주척(周尺)을 사용하게 되면, 비단 고인(古人)의 깊이 장사하는 뜻에 어긋날 뿐 아니라, 주척으로 땅을 판다는 것도 옛 문헌에는 없습니다. 만약 《호씨연길서》의 구성(九成) 법칙을 참용(參用)하기에 이른다면, 광중을 파는 것의 얕은 것이 혹은 5척에 이를 것이오니, 그 법의 불가함이 명백하옵니다. 본국(本國)의 산릉(山陵)에 광중을 파는 데에는 모두 영조척(營造尺)을 사용하도록 이미 격례(格例)가 있사온데, 이제 주척(周尺)으로 영조척(營造尺)을 계산하오면 그 길이가 1척 5촌으로, 토규척(土圭尺)의 1척 5촌이라는 문헌과 서로 합치됩니다. 청하옵건대 이제부터는 능실(陵室)의 광중을 파는 것은 마땅히 범인(范麟)의 1장(丈)이라는 설(說)을 쓰고, 조종(祖宗)께서 이미 실행한 구례(舊例)를 따라 영조척을 써서 깊이 1장(丈) 이하로 파게 하여 일정한 법식으로 정하고, 만약 흙이 박(薄)하고, 물이 얕은 땅이면 임시(臨時)하여 척수(尺數)를 요량하여 감하게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30책 93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4책 356면
- 【분류】도량형(度量衡) / 풍속-예속(禮俗) / 역사-고사(故事)
○甲申/風水學提調禮曹判書閔義生、知中樞院使鄭麟趾等啓: "《捉脈附〔捉脈賦〕 》, 范麟云: ‘穿壙之法, 須要深藏。 自一丈之深以下, 雨濕之所不能至, 旱氣所不能侵’。 司馬溫公云: ‘穿壙宜深, 深則盜難近也’。 李守約云: ‘凡發堀者, 皆淺葬之故。 若深一二丈, 自無此患。 福州人擧移舊墓, 稍深者不無有水, 淺葬, 蓋防水耳。 北方土地深厚, 深葬不防’。 《文獻通考》云: ‘營山用地七頃, 方中用地一頃, 深十三丈。 唐 太宗葬昭陵, 深七十五尺’。 胡氏涓吉書云: ‘葬穴淺深, 用土圭尺。 其尺尺五寸’。 由是觀之, 古人穿壙之制, 莫不以深爲貴, 其淺葬者, 只避水患。 議者曰: ‘穿壙之制, 當用周尺’。 然而本國葬, 率用高陵大阜, 雖深鑿, 似無水患矣。 若用周尺, 則非惟戾於古人深葬之義, 以周尺穿地, 亦無古文矣。 至若胡氏涓吉書, 參用九成之法, 則開壙之淺, 或至五尺, 其法之不可明矣。 本國山陵穿壙, 皆用營造尺, 已有格例。 今以周尺計營造尺, 其長一尺五寸, 與土圭尺尺有五寸之文相合矣。 乞自今陵室穿壙, 宜用范麟一丈之說, 遵祖宗已行舊例, 用營造尺, 鑿深一丈之下, 以爲定式。 若於土薄水淺之地則當臨時量減尺數。"
從之。
- 【태백산사고본】 30책 93권 22장 B면【국편영인본】 4책 356면
- 【분류】도량형(度量衡) / 풍속-예속(禮俗)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