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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92권, 세종 23년 4월 29일 을미 1번째기사 1441년 명 정통(正統) 6년

황우의 변에 대해 승정원에 전지하다

임금이 승정원(承政院)에 이르기를,

"이제 황우(黃雨)의 변(變)을 들었으니, 대가를 맞이하는 여러가지 일은 모두 정파(停罷)하게 하라."

하니, 도승지 조서강 등이 아뢰기를,

"정부와 예조에서 자세히 분별한 것도 아니온데, 안평 대군의 아룀이 이와 같으오니, 어찌 갑자기 재이(災異)라고 하겠습니까. 사인(使人)을 경중(京中)에 보내어, 그것이 참인지 망령된 것인지를 변정(辨正)하게 한 연후에 정파하셔도 늦지 않을 것입니다."

하매, 임금이 말하기를,

"만일 하늘에서 내린 것이 아니라면 그만이지만, 하늘에서 내린 것이라면 그것이 재앙이 됨을 실로 헤아릴 수 없는데, 어찌 괄연(恝然)047) 히 스스로 근심하고 두려워하지 않겠느냐. 정부에서 이미 황우(黃雨)로 여겼으니, 연소(年少)한 자제(子弟)의 말을 믿는다는 것도 옳지 못하였다. 더구나 비가 내린 지 여러 날이 되어 실험할 도리가 없는데, 어찌 그 진위를 변정할 수 있겠느냐."

하니, 하연(河演)·정연(鄭淵) 등이 아뢰기를,

"만일 재변이 있다면 진실로 전하께, 공구 수성(恐懼修省)하시기를 청함이 마땅하옵지만, 만일 하늘에서 견고(譴告)한 것이 아닌데도 사람이 스스로 변이라 여기면 또한 상서롭지 못합니다. 근자에 우양(雨暘)048) 이 제때에 와서 풍년을 기약할 수 있사오니, 비록 하늘이 실지로 황우를 내렸다 하더라도 황색은 바로 상서의 빛이오라 또한 괴상하다고 가리킬 수 없습니다. 대가를 맞이하는 것은 큰 예식[大禮]이오니, 청하옵건대 정파하지 말게 하옵소서."

하므로, 임금이 말하기를,

"경 등의 말이 옳다. 그러나 일이 요상(妖詳)049) 에 관계된 것인데, 내가 어찌 염려하지 않을 수 있겠느냐. 어제 환자(宦者) 김충(金忠)을 파견하여 그 상황을 묻게 하였으니, 환자의 말이라 비록 믿을 만한 것이 못된다 하더라도, 내 마땅히 도성(都城) 사람의 말을 가지고 결정하겠다."

하였다. 이날 저녁에 김충이 돌아왔다. 또 안평 대군이 바치는 건황설(乾黃屑) 한 봉(封)을 올리니 모두 송화이었다. 이에 승정원에 이르기를,

"옛날의 대신(大臣)들이 이변(異變)이 있게 되면, 반드시 깊이 근심하고 길게 생각하여 끝까지 구명(究明)하고 따진 것은, 국보(國步)050) 의 궁액함을 싫어함에서였다. 오늘날은 그렇지 아니하여 내가 즉위(卽位)하였을 때로부터는 혹은 풀씨[草實]의 비가 오고, 혹은 나뭇잎[木葉]의 비가 오며, 혹은 곡종(穀種)의 비가 와 그 일이 같지 아니하였으나, 옛사람이 이르기를, ‘풍운(風雲)이 나무 위로 지나가면 나뭇잎이 따라 날아가서 비 때문에 내려온다. ’고 하였으니, 대체로 물건으로 가벼운 것은 바람을 따라 날려 가기를 수십 리에 이르게 되고, 버들개지[柳絮]와 같이 날아가기를 마지 아니하니, 혹은 먼 곳의 버들이 없는 곳까지 이르러 가는데, 하물며 송화의 가볍고 작음에 있어서이겠느냐.

근년 이래로 세자가 가뭄을 근심하여, 비가 올 때마다 젖어 들어 간 푼수[分數]를 땅을 파고 보았었다. 그러나 적확하게 비가 온 푼수를 알지 못하였으므로, 구리를 부어 그릇을 만들고는 궁중(宮中)에 두어 빗물이 그릇에 괴인 푼수를 실험하였는데, 이제 이 물건이 만일 하늘에서 내렸다면 하필 이 그릇에 내렸겠는가. 또 이 물건이 지샛물[簷溜]이 많이 흘러 모여 들어가는 곳에 있는 것도, 또한 송화가 기왓고랑[瓦溝]에 흩어져 있었기 때문에 비를 따라 내려온 것이다. 또 이 물건이 모래와 돌이 유창(流蕩)하는 곳에 있지 아니하고 오로지 점밀(黏密)051) 한 검은 땅에만 있었으니, 그것은 송화임을 알 수 있다. 그러나 대신들이 이미 황우(黃雨)라고 아뢰었으니, 어찌 젊은 자제들의 철없는 말을 옳다고 하겠느냐. 옛날 고려 때에, 문랑(門廊) 위에 홀연히 연기가 있었는데, 사람들이 말하기를, ‘모기와 등에[蚊虻]가 날아온 것이지, 연기가 아니다. ’

하였는데, 후세에 와서는 간사하고 옳지 아니한 말로 여겼다. 또 병진년에 흥천사(興天寺)의 사리각(舍利閣) 위에서, 그리고 흥복사(興福寺)의 옥상(屋上)에서도 또한 모기와 등에가 날아와 모였는데,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보고 서기(瑞氣)라고 하였으나, 내가 승지 김돈(金墩)을 보내어 가 보게 하였더니, 실은 모기와 등에였었다. 고려 때의 일을 지금까지 내려오면서 의심하니 참으로 가소(可笑)롭다."

하니, 서강(瑞康) 등이 아뢰기를,

"송화의 일은 신 등만이 아는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모두 아는 것인데, 대신(大臣)만이 유독 살피지 못하였을 뿐입니다. 이제 만일 가리지 못한다면 후세에 누가 망령됨을 알겠습니까."

하매, 임금이 말하기를,

"나도 또한 진짜 송화로 여기노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9책 92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4책 340면
  • 【분류】
    과학-천기(天氣) / 과학-생물(生物) / 역사-고사(故事)

○乙未/上謂承政院曰: "今聞黃雨之變, 迎駕諸事, 其悉停罷。" 都承旨趙瑞康等啓: "政府禮曹不能詳辨, 而安平所啓如是, 何可遽以爲災異乎? 請使人京中辨其眞妄, 然後停之, 未晩也。" 上曰: "若非天所降, 則已矣, 如天所降, 則其爲災, 實未可測也。 何可恝然不自憂懼? 政府旣以爲黃雨, 不宜以年少子弟之言爲信。 況下雨日久, 無迹可驗? 安能辨其眞僞也?" 河演鄭淵等啓: "若有災變, 固當請殿下恐懼修省也, 如天無譴告, 而人自以爲變, 亦不祥也。 近者雨暘時若, 豐稔可期, 雖天實黃雨, 黃乃祥色也, 亦不可指以爲怪。 迎駕, 大禮也, 請勿停罷。" 上曰: "卿等言是矣。 然事關妖祥, 予安敢不慮? 昨已遣宦者金忠, 問其狀。 (官)〔宦〕 者之言, 雖不足信, 予當以都人之說爲定。" 是夕, 還, 安平大君又以乾黃屑一封上之, 皆松花也。 乃謂承政院曰: "古者大臣凡於變異, 必深憂長慮, 極究明辨者, 爲惡國步之窮厄也, 今則不爾矣。 自予在位之時, 或雨草實, 或雨木葉, 或雨穀種, 其事不同。 古人有云: ‘風雲行於樹上, 木葉隨飛, 因雨而下。’ 凡物之輕者, 隨風飛轉至數十里, 如柳絮飄颺不已, 或遠至無柳之處, 而況於松花之輕細乎? 近年以來, 世子憂旱, 每當雨後, 入土分數, 掘地見之。 然未可的知分數, 故鑄銅爲器, 置於宮中, 以驗雨水盛器分數。 今此物若天所降, 則何必降於此器乎? 又此物多在簷溜會注處者, 亦以松花散在瓦溝, 因雨而下也。 又此物不在沙石流蕩之地, 而專在黏密黑壤, 則其爲松花, 斷可知矣。 然大臣旣以黃雨啓之, 何可以子弟少不更事之言爲是耶? 昔在高麗, 門廊之上, 忽有烟氣, 人言蚊虻飛出, 實非烟氣也。 後世以爲姦詐不直之言。 歲在丙辰, 興天寺舍利閣上與興福寺屋上, 亦有蚊虻飛集, 人皆駭見, 以爲瑞氣, 予遣承旨金墩往觀之, 乃實蚊虻也。 高麗之事, 至今傳疑, 誠可笑也。" 瑞康等啓: "松花之事, 不獨臣等知之, 人皆知之, 大臣獨未察耳。 今若不辨, 則後世孰知其妄也?" 上曰. . "予亦以爲眞松花也。"


  • 【태백산사고본】 29책 92권 24장 B면【국편영인본】 4책 340면
  • 【분류】
    과학-천기(天氣) / 과학-생물(生物)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