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지중추원사 박연이 제악에 대해 건의하다
첨지중추원사 박연(朴堧)이 상언(上言)하기를,
"제악(祭樂)은 천신(天神)을 제사할 경우 강신(降神)함에 4궁(宮)을 쓰는데, 악(樂)은 6성(成)으로 변합니다. 육변(六變)을 쓰는 것은 천제(天帝)가 진(震)에서 나옴을 취함이요, 진은 묘위(卯位)에 자리 하였으니, 묘(卯)의 수는 여섯인 것입니다. 따라서 환종궁(圜鍾宮)을 사용하여야 하니, 즉 협종(夾鍾) 2성(成), 황종각(黃鍾角)·고세궁(姑洗宮) 2성, 태주치(太簇徵)·남려궁(南呂宮) 1성, 고선우(姑洗羽)·대려궁(大呂宮) 1성이요, 송신(送神)에는 협종궁(夾鍾宮) 1성을 사용합니다. 지기(地祗)를 제사할 경우, 강신(降神)함에 4궁을 쓰는데, 악(樂)은 8성으로 변합니다. 팔변(八變)을 쓰는 것은 곤(坤)이 만물을 기르는 것을 취함이요, 곤은 미위(未位)에 자리하였으니, 미(未)의 수는 여덟인 것입니다. 따라서 함종궁(函鍾宮)을 사용하여야 하니, 즉 임종(林鍾) 2성, 태주각(太簇角)·유빈궁(蕤賓宮) 2성, 고선치(姑洗徵)·응종궁(應鍾宮) 2성, 남려우(南呂羽)·유빈궁(蕤賓宮) 2성이요, 송신(送神)에는 임종궁(林鍾宮) 1성을 사용합니다.
인귀(人鬼)를 제향할 경우 강신(降神)함에 4궁을 쓰는데, 악(樂)은 9성(成)으로 변합니다. 구변(九變)을 쓰는 것은 금(金)의 수를 취함이요, 금의 물건됨이 잘 화(化)하되 변하지 않으니 귀신도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황종궁(黃鍾宮) 3성, 대려각(大呂角)·중려궁(仲呂宮) 2성, 태주치(太簇徵)·남려궁(南呂宮) 2성, 응종우(應鍾羽)·이칙궁(夷則宮) 2성을 사용합니다. 이상과 같이 제사할 때마다 4궁에 강신함과 악무(樂舞)가 변하는 수는, 각각 의거한 바가 있어 망령되게 손익(損益)을 가함은 불가한 것이온데, 우리 나라에서 이 앞서 제사할 때마다 강신(降神)함에 황종(黃鍾) 3성을 사용하고, 송신(送神)에도 황종 1성을 통용하였으니, 고제(古制)에 어긋난 것입니다. 신이 선덕(宣德) 2년간에 모두 다 개혁하였사오나, 종묘에 친히 제향하는 날을 당하여 강신(降神)하는 악무(樂舞) 6성을 권도로 감하여 3성으로 사용하시오매, 4궁이 불비하고 변수(變數)마저 결여되어 온당하지 못한 듯하옵니다.
신이 이제 다시 전대(前代)를 상고하오니, 당(唐)나라 태종(太宗) 때에, 태상시(太常寺)에 조칙을 내려, ‘천신(天神)을 제사하고, 지기(地祗)를 제사하고, 종묘를 제향함에 궁(宮)의 가등(加等)은 강신할 때마다 사곡(四曲), 송신 때는 일곡(一曲)을 연주한다.’ 하였으니, 바라옵건대 이제부터는 종묘에 강신하는 악무인 9성을 감하게 한다면, 당제(唐制)에 의거하여 각각 1성을 4성으로 하는 것이 근거가 있을 듯합니다. 더구나 4의 수는 또한 금(金)의 생수(生數)이오라, 귀신을 제향함에 있어서 바로 합하는 것이옵고, 4는 금의 생수이요, 9는 금의 성수(成數)이오니, 9성을 감할 경우는 마땅히 4성을 사용하여야 하오며 3성을 사용함은 불가한 것입니다. 제악고(祭樂鼓)는 《주례(周禮)》의 지관(地官) 고인조(鼓人條)에, ‘뇌고(雷鼓)는 신사(神祀)에 쳐서 천신(天神)을 제사한다.’ 하였고, 정 사농(鄭司農)은 이르기를, ‘팔면고(八面鼓)이다.’ 하였으나, 진양(陳暘)은 육면(六面)의 영고(靈鼓)라고 고쳤습니다. 사제(社祭)에 치는 것은 지기(地祗)를 제사함인데, 정씨는 ‘육면(六面)이다.’ 하였으나, 진씨는 팔면(八面)이라고 고쳤습니다. 노고(路鼓)는 귀신에게 치는 것으로 인귀(人鬼)를 제향함인데, 정씨와 진씨가 다 같이 이르기를, ‘사면(四面)의 진고(晉鼓)로 금주(金奏)를 치게 되면 주악이 시작되니, 〈금주(金奏)는〉 편종(編鍾)을 치는 것이다.’ 하였습니다.
이상에서 말한 뇌고·영고·노고는 제사에 따라 각각 쓰이지만, 진고(晉鼓)로 말하면 여러 곳에 통용되며 모두 도고(鼗鼓)에 있어 조(兆)로써 고(鼓)를 연주하는 것입니다. 또 뇌도(雷鼗)·영도(靈鼗)·노도(路鼗)는 북의 면상(面上)에 모두 자루[柄]가 있고 방이(旁耳)가 있습니다. 진고(晉鼓)의 제도는 《주례(周禮)》의 동관(冬官) 운인조(韗人條)에 자세하게 기재되었으나, 한(漢)나라·진(晉)나라·수(隋)나라·당(唐)나라의 북 제도는 상고할 만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당나라 개원(開元) 연간에 사산고(四散鼓)를 궁현(宮懸)의 네 모퉁이에 설치하여 절악(節樂)한 바 있고, 송(宋) 태조(太祖) 건덕(乾德) 4년에, 윤졸(尹拙)이 상언(上言)하기를, ‘산고(散鼓)는 고제를 상고하여도 명문이 없사온데, 뇌고·영고·노고를 쳐도 소리를 이루오니, 이 여러가지 북을 만들게 하시되, 사산고(四散鼓)는 없애는 것이 옳겠습니다.’ 하였으며, 경우(景祐) 연간에 인종(仁宗)이 일찍이 말하기를, ‘종(鍾)과 경(磬)의 소리가 옛 법에 맞지 아니하니, 두 제도를 한데 모아 태상(太常)과 음률을 아는 자가 상고하여 정하라.’ 하고, 또 ‘새로이 진고(晉鼓) 셋을 만들어 예기(禮器)의 결함을 보충하라.’ 하였는데, 이조(李照) 등이 건의하기를, ‘산고(散鼓)를 없애 버리시고 진고(晉鼓)를 만들어서 금주(金奏)를 치게 하소서.’ 하였습니다. 또 신종(神宗) 원풍(元豊) 2년 7월 12일에 상정의주서(詳定儀注書)에서 상언하기를, ‘악가(樂架) 안에 진고(晉鼓)를 설치하여 금주(金奏)를 치게 하옵소서.’ 한 바 있으니, 이로써 고찰하게 되면 악(樂)에 진고를 사용함은 고제(古制)에 있음이 분명합니다. 그러나 역대의 궁현(宮懸)은 모두 사산고(四散鼓)를 써 왔고, 고(鼓)는 궁현의 네 모퉁이에다 설치하여 절악하였으므로, 송나라에 이르러서는 고제를 복구하여 진고를 사용하였으되, 절악(節樂)은 진고(晉鼓)004) 로써 하오매, 그 매다는 수도 넷을 쓴 것이 아닌가 합니다. 따라서 제후(諸侯)의 헌가(軒架)는 그 수를 감함이 옳사오나, 그러나 증험할 문헌이 없으니, 우리 나라의 제악(祭樂) 안에서 절악하는 고(鼓)를 이 앞서에 대고(大鼓) 하나만으로 사용한 것도, 반드시 산고(散鼓)나 진고(晉鼓)의 유법(遺法)인가 하옵니다. 그러나 제작한 지 오래 되지 아니하였으므로, 신의 생각으로는 주관(周官)005) 운인조(韗人條)의 진고의 제도를 가져다가 그 결점을 바로잡아, 그전대로 제사하는 곳마다 각각 그 중의 하나만을 사용하게 하되, 천신(天神)의 제사에 있어서는 뇌고(雷鼓) 세 틀[三架]과 《진양도설(陳暘圖說)》에 의하여 육면고(六面鼓)인 뇌도(雷鼗)도 같은 수로 만들게 하고, 지기(地祇)의 제사에 있어서는 영고(靈鼓) 세 틀과 《진양도설》에 의하여 팔면고(八面鼓)인 영도(靈鼗)도 같은 수로 만들게 하며, 인귀(人鬼)의 제향에 있어서는 노고(路鼓) 세 틀과 진씨·정씨의 설[陳鄭說]에 의거하여 사면고(四面鼓)인 노도(路鼗)도 같은 수로 만들게 하시기를 바라옵니다."
하니, 예조에 내려 이를 의논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9책 92권 2장 A면【국편영인본】 4책 329면
- 【분류】예술-음악(音樂) / 역사-고사(故事)
○僉知中樞院事朴堧上言:
祭樂。 祀天神, 降神四宮樂變六成。 用六變者, 取帝出乎震, 震爲卯, 卯之數六也。 圜鍾宮卽夾鍾二成, 黃鍾角姑洗宮二成, 太簇徵南呂宮一成, 姑洗羽大呂宮一成, 送神夾鍾宮一成。 祭地祇, 降神四宮樂變八成。 用八變者, 取坤養萬物, 坤居未, 未之數八也。 函鍾宮卽林鍾二成, (六)〔太〕 簇角蕤賓宮二成, 姑洗徵應鍾宮二成, 南呂羽蕤賓宮二成, 送神林鍾宮一成。 享人鬼, 降神四宮樂變九成。 用九變者, 取金之數。 金之爲物, 能化而不能變, 鬼亦如之。 黃鍾宮三成, 大呂角仲呂宮二成, 太簇徵南呂宮二成, 應鍾羽夷則宮二成。 右每祭降神四宮及樂變之數, 各有所據, 不可妄有損益。 我國前此每祭降神, 泛用黃鍾三成, 送神亦通用黃鍾一成, 有違古制。 臣於宣德二年間, 悉皆改革。 然當宗廟親享之日, 降神之樂, 權減九成爲三成, 四宮不備, 變數有欠, 似爲未穩。 臣今更考前代唐 太宗時詔太常, 祀天神祭地祇享宗廟, 宮加等, 每奏降神四曲、送神一曲。 乞自今宗廟降神之樂, 若減九成, 則依唐制, 四宮各一成爲四成, 似爲有據。 況四數, 亦金之生數, 於鬼享正合也。 四爲金之生數, 九爲金之成數, 若減九成, 則當用四成, 不可用三。 祭樂鼓, 《周禮》 《地官》 《鼓人》: "雷鼓鼓神祀祀天神。" 鄭司農云: "八面鼓。" 陳賜改六面。 靈鼓, 鼓社祭祭地祇。" 鄭云: "六面。" 陳改八面。 "路鼓, 鼓鬼享人鬼。" 鄭氏 陳氏皆云: "四面, 晉鼓, 鼓金奏, 樂作擊編鍾也。" 已上雷鼓靈鼓路鼓則隨祭各用, 晉鼓則諸處通用, 皆有鼗鼓以兆奏鼓雷鼗靈鼗路鼗鼓面, 上同有柄有旁耳。 晉鼓制度, 《周禮》 《冬官》 《韗人》詳載。 漢、晋、隨〔隋〕 、唐之鼓, 未有可考。 唐 開元中, 以四散鼓, 設宮懸四隅以節樂。 宋 太祖 乾德四年, 尹拙上言: "散鼓, 於古無文。 雷靈路鼓, 擊之成聲。 宜作諸鼓, 罷四散鼓。" 景祐中, 仁宗嘗曰: "鍾磬之音, 未合古法。 其集兩制太常與知音者考定。 又新作晉鼓三, 以補禮器之缺。" 李照等建白, 罷去散鼓, 作晉鼓以鼓金奏。 神宗 元豊二年七月十二日, 詳定儀注所上言: "請樂架內設晉鼓, 以鼓金奏。" 按此則樂用晉鼓, 古制明矣。 但歷代宮懸, 皆用四散鼓, 設於宮懸四隅, 以節其樂, 至宋始復古制, 用晉鼓節樂, 則懸晉鼓之數, 恐亦用四, 諸侯軒架, 當減其數, 然無左驗之文。 我國祭樂內節樂之鼓, 前此只用一大鼓, 此必散鼓晉鼓之遺法也。 然制作不古, 故臣以《周官》 《韗人》晉鼓之制, 改正其失而依舊, 每祭所各用其一。 其於天神之祀, 雷鼓三架, 依陳賜圖說造六面, 鼓雷鼗亦同。 地祇之祭, 靈鼓三架, 依陳賜圖說造八面鼓, 靈鼗亦同。 人鬼之享, 路鼓三架, 依陳、鄭說, 造四面鼓, 路鼗亦同。
下禮曹議之。
- 【태백산사고본】 29책 92권 2장 A면【국편영인본】 4책 329면
- 【분류】예술-음악(音樂)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