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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90권, 세종 22년 8월 21일 경인 4번째기사 1440년 명 정통(正統) 5년

전 중추원 사 황자후의 졸기

전 중추원 사 황자후(黃子厚)가 졸(卒)하였다. 자(字)는 선양(善養)이며 충청도 회덕현(懷德縣) 사람이다. 당초에 음직(蔭職)으로 관직에 보임되어 여러 번 내직과 외임을 지냈고, 계사년 가을에 형조 좌참의로 제수되었는데, 그 해 겨울에 호패법(戶牌法)을 건의하여 마련하였다. 호조 참의로 전입되었다가 개성 유후사 부유후(開城留後司副留後)로 승진되었고, 을미년에 공안부 윤(恭安府尹)으로 전임되어 동전(銅錢)을 사용하는 법을 시행하도록 청하였다. 병신년에 죄로써 회덕현에 귀양갔고, 신축년 가을에 좌군 총제(左軍摠制)로 임명되었으며, 임인년에는 충청도 도관찰사로 되었다가, 또 죄를 얻어 진주(晉州)에 귀양갔다. 갑진년 가을에 사면(赦免)되어 나주 목사(羅州牧使)가 되었고, 임자년 가을에 자헌 대부(資憲大夫)로 승진, 중추원 부사가 되었다. 정사년 여름에 건의하여 침구(針灸)를 전문으로 하는 업종(業種)을 창설(創設)하였고, 가을에 중추원 사로 승진하였다. 자후는 의약(醫藥)에 밝아 항상 전의감(典醫監) 제조(提調)로 있었는데, 무신년 여름에 노병(老病)으로 인하여 벼슬에서 물러나기를 청하였는데, 이때에 이르러 죽으니 나이 78세이다. 부음이 들리자 하룻 동안 조회를 정지하고, 조문(弔問)하고 부의(賻儀)를 내렸다. 시호(諡號)를 혜의(惠懿)라 하니, 백성을 사랑하고 주기를 좋아함이 혜(惠)이고, 온유(溫柔)하고 현선(賢善)함이 의(懿)이다. 아들로는 황유(黃柳)가 있었다.


  • 【태백산사고본】 29책 90권 31장 A면【국편영인본】 4책 313면
  • 【분류】
    인물(人物) / 인사-관리(管理)

○前中樞院使黃子厚卒。 字善養, 忠淸道 懷德縣人。 初以蔭補官, 累歷中外, 至癸巳秋, 授刑曹左參議。 冬, 建言立號牌之法, 遷戶曹參議, 陞開城留後司副留後。 乙未, 再遷恭安府尹, 請行銅錢之法。 丙申, 以罪貶于懷德縣。 辛丑秋, 拜左軍摠制, 壬寅, 出爲忠淸道都觀察使, 以罪又貶晋州。 甲辰秋, 賜環, 判羅州牧事。 壬子秋, 陞資憲、中樞院副使。 丁巳夏, 建言設針灸專門之業, 秋, 陞中樞院使。 子厚曉醫藥, 常提調典醫。 戊申夏, 以老病乞骸骨, 至是卒, 年七十八。 訃聞, 輟朝一日, 致弔致賻。 諡惠懿, 愛民好與惠, 溫柔賢善懿。 有子曰


  • 【태백산사고본】 29책 90권 31장 A면【국편영인본】 4책 313면
  • 【분류】
    인물(人物)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