첨지중추원사 고득종이 대마 도주 종정성이 부탁한 바를 아뢰다
첨지중추원사(僉知中樞院事) 고득종(高得宗)이 아뢰기를,
"종정성(宗貞盛)이 신에게 이르기를, ‘본도(本島)는 산에 돌이 많고 척박하여 경작할 만한 땅이 없는 것은, 대인(大人)이 눈으로 보는 바입니다. 본도의 인민들은 오로지 고기 낚는 것으로 생업을 삼기 때문에, 매년 혹은 4, 50척, 혹은 7, 80척씩 고초도(孤草島)에 가서 고기를 낚아 자급(自給)합니다. 그러므로 두세 번 굳이 청하여 마지못하는 바입니다. 본도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여기서 굶어 죽는 것보다는 죽기를 무릅쓰고 저곳에 가서 낚시질하는 것이 낫다.」고 합니다. 만일 이 섬에서 고기를 낚다가 변장에게 해를 당하여 본도 사람이 혹 피하지 못하게 되면 반드시 서로 살해할 것이니, 만일 그렇게 된다면 수호(修好)하는 뜻에 어긋날까 두렵습니다. 만일 이 섬에서 고기를 낚도록 허락하여 준다면 생계가 넉넉하여지니, 영구히 들어가 도둑질할 마음이 없어질 것입니다. 청하건대 부디 계달하여 주십시요.’ 하였습니다. 신이 대답하기를, ‘우리 나라에서 이미 부산포(富山浦)·내이포(乃而浦)·염포(鹽浦) 등 각포에 호시(互市)를 통하여 그 생활을 이바지하도록 허락하였는데, 지금 또 고초도(孤草島)를 허락하면, 고기 낚는 것을 가탁(假托)하고 그 섬에 머물러 살 것이니, 혹 변경을 노략질하는 일이 있을까 염려된다. 지금 우리 나라의 소금 굽고 고기 낚고 해산물을 채취하고 하는 사람들이 여러 섬에 흩어져 있는데, 귀도(貴島)의 사람들이 어찌 다 족하(足下)의 마음을 본받겠는가. 만일 어쩌다 서로 만나면 반드시 살해할 뜻이 생길 것이니, 이것이 작은 일이 아니다. ’라고 하였습니다. 정성(貞盛)이 대답하기를, ‘고기 낚는 사람이 반드시 내 문인(文引)을 받아 가지고 가고, 귀국에서도 역시 사람을 보내어 감사 증험하여 만일 문인이 없으면 적으로 논하고, 문인을 받은 자가 만일 난을 꾸미면 처자까지 죽여도 좋으니, 우선 1, 2년만 허가하여 시험하여 보아서, 만일 혹시라도 약속을 어기거든 도로 빼앗는 것이 또 무엇이 어렵겠습니까.’ 하였습니다. 정성(貞盛)이 또 말하기를, ‘지금 부산포(富山浦)에 사는 사람을 모두 쇄환(刷還)하게 하였는데, 청하옵건대, 전과 같이 머물기를 허락하여 주소서.’ 하였습니다. 종무직(宗茂直)이 또 사람을 시켜 신에게 이르기를, ‘지난번에 고초도(孤草島)에 고기를 낚고자 하여 이미 일찍이 친히 주달하였는데, 지금 내가 박다(博多)에 들어와 살고 있으나, 나의 인민으로 이 섬에 있는 자가 생계가 심히 어려우니, 청하옵건대, 자세히 계달하여 고기 낚는 것을 허가하여 주기를 바랍니다.’ 하고, 또 말하기를, ‘귀국에서 우리의 사자를 접견하지 않으시니 본도의 사람들이 마음속으로 실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엎드려 귀국의 후한 은혜를 입었으니 감사하고 받드는 마음을 이기지 못하겠습니다. 근일에 들으니, 귀국의 변장(邊將)이 풀을 묶어 왜인의 상을 만들어 놓고 이를 쏘게 하여, 목을 맞힌 자는 상등이 되고 가슴을 맞힌 자는 다음이 되어 차례로 상을 논한다 하는데, 그 상(像)이 바람에 떠밀리어서 본도에 이르렀기에, 우리들이 얻어서 간직하고 있습니다. 왜인이 귀국에 대하여 무슨 죄악이 있기에 이렇게까지 하십니까. 마음이 아프고 마음 아프옵니다. 내가 친히 귀국에 입조하여 주달하고자 합니다. 또 변장을 보면 싸움을 하여서 그 까닭을 물어 보고 싶습니다. 내가 만일 군사를 일으키면 이 섬사람이 누가 나를 따르지 않겠습니까. 내가 마땅히 승전하고 돌아오겠습니다. 하물며 일본(日本) 어소(御所)도 역시 왜(倭)입니다. 내가 어소(御所)에 주달하고자 하는데, 어소의 마음에 어떻다고 생각하겠습니까. 이미 사자를 보내어 화호(和好)를 통하고, 또 변장을 시켜 풀을 묶어 왜인의 상을 만들어서 활쏘는 것을 익히게 하니, 이것이 무슨 뜻입니까. 본도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요즈음 조선이 본도(本島)에 대하여 다른 마음이 있다. 본도에서 보낸 배와 각포(各浦)에 거류하는 사람을 모두 다 돌려보내고, 연해(沿海)에 병선을 많이 모으고, 또 왜인의 상을 만들어서 쏘니 반드시 다른 생각이 있다.」고 합니다. 본도 사람들이 사인(使人)을 구류하자고 의논하였으나, 내가 홀로 말하기를, 「사신은 연전에 이미 〈조선에서〉 배를 떴으니 근일의 일을 어떻게 알겠는가. 또 타향에 손이 되어 거의 두 해가 되었으니, 어찌 고향을 생각하는 마음이 없겠는가. 죄 없는 사람을 구류하고자 하니 이것이 무슨 뜻인가.」 하여, 이 때문에 여러 사람의 의논이 조금 가라앉았습니다. ’고 하였습니다. 신은 생각하건대 이속(異俗)의 사람을 대접하는 방법이 은혜와 신의로 무수하고, 옷과 밥으로 급한 것을 구제하여야만 진심으로 복종시킬 수 있는 것입니다. 신이 정성(貞盛)을 마주 대하여 말을 들어보고 얼굴빛을 보매, 겸허하고 공손하고 사정이 긴박하였으니, 그 섬의 생활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원컨대, 정성의 청에 따라서 정성과 약속하기를, ‘만일 약속을 배반한다면 도로 금하고 막아서 고기를 낚지 못하게 하겠다.’ 하면, 그 이익을 잃어버릴까 두려워하여 거의 도둑질할 마음이 없을 것입니다. 또 대마도 사람이 비록 들어와 도둑질하고 싶은 마음이 있으나, 기해037) 의 변을 징계하여 감히 못할 것입니다. 지금 부산포(富山浦)에 와서 사는 사람을 모두 강제로 돌려보내면 정성이 반드시 의심하는 마음을 품을 것이니, 청하옵건대, 적당히 수효를 정하여 도로 주접(住接)하도록 허가하는 것이 어떠합니까."
하니, 예조(禮曹)에 내리었다. 고초도는 전라도 남해 가운데에 있어서 육지까지 30여 리이고, 여러 대 동안 비어 두어 사는 백성이 없으므로 왜인이 청한 것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28책 89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4책 290면
- 【분류】외교-왜(倭)
- [註 037]기해 : 세종 1년.
○僉知中樞院事高得宗啓: "宗貞盛謂臣曰: ‘本島山石磽确, 無土可耕, 大人目擊也。 本島人民專以釣魚爲生, 故每年或四五十艘或七八十艘, 往孤草島, 釣魚以自給, 故再三固, 請不獲已也。 本島之人, 皆以爲: 「與其餓死於此, 曷若冒死往釣於彼?」 儻釣於此島, 爲邊將所害。 本島之人, 或不得避, 則必互相殺害, 若然則恐違修好之意, 若許令釣魚於此島, 則生理有裕, 永無入寇之心矣。 請須啓達’。 臣答曰: ‘我國已於富山、乃而、鹽浦等各浦, 許通互市, 以資其生。 今又許孤草島, 則假托釣魚, 留居其島, 慮或有虜掠邊境矣。 今我國燔鹽釣魚海物採取之人, 散在諸島, 貴島之人, 豈盡體足下之心乎? 若幸相遇, 則必生殺害之意, 此非細故也’。 貞盛答曰: ‘釣魚之人, 必受吾文引以往, 貴國亦差人檢驗, 若無文引者, 以賊論, 受文引者若作亂, 則戮及妻孥可也。 姑許一二年以試之, 如或違約, 還奪又何難焉?’ 貞盛又曰: ‘今富山浦所居之人, 盡令刷還, 請依舊許留’。 宗茂直又使人謂臣曰: ‘前者欲於孤草島釣魚, 已曾親達。 今我雖入居博多, 我之人民在此島者, 生理甚艱。 請備細啓達, 許通釣魚爲望’。 又云: ‘貴國不接我使, 本島人心缺望。 然伏蒙貴國厚恩, 不勝感戴。 近日聞貴國邊將束草爲倭像, 使射之, 中項者爲上, 中胸者次之, 以次論賞。 其像爲風所漂到本島, 我輩得之以藏。 倭人於貴國, 有何罪惡, 至於如此? 痛心痛心。 我欲親朝貴國奏達, 又見邊將與戰, 欲問其故。 我若擧兵, 則此島之人, 誰不從我? 我當勝戰而還矣。 況日本御所, 亦倭也。 予欲達于御所, 御所之心以謂何如? 旣遣使者通好, 又令邊將束草爲倭像, 以習射御, 是何意耶? 本島之人, 皆以爲: 「近者朝鮮向本島有異心, 本島所遣船及各浦留居倭人, 竝皆遣還。 乃於沿海, 多聚兵船, 又作倭像射之, 必有異圖。」 本島人議欲拘留使人, 我獨以爲: 「使臣年前已發船, 何得與近日事? 且作客他鄕, 幾經二歲, 豈無思戀鄕土之心乎? 欲拘留無罪之人, 是何意也?」 由此衆議稍寢。 臣竊念待殊俗之道, 恩信以撫綏, 衣食以周急, 乃可以誠服’。 臣對貞盛, 聽言觀色, 謙恭情迫, 其島生理, 不可不慮。 願從貞盛之請, 與貞盛約曰: ‘如背約束, 還令禁遏, 使不得釣魚矣’。 則恐失其利, 庶無寇竊之心也。 且對馬之人, 雖欲有入寇之心, 懲己亥之變, 未敢耳。 今富山浦來居之人, 悉勒令還送, 則貞盛必心懷疑貳, 請量宜定數, 許令還接何如?"
下禮曹。 孤草島在全羅道南海中, 距陸三十餘里, 累代閑曠, 未有居民, 故倭人請之。
- 【태백산사고본】 28책 89권 23장 A면【국편영인본】 4책 290면
- 【분류】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