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지돈녕부사 권담의 전·후처 사이의 상속 문제에 대해 시비를 가리다
사헌부에서 아뢰기를,
"죽은 동지돈녕부사(同知敦寧府事) 권담(權聃)의 아내 박씨는 난신(亂臣)의 딸이므로, 태종께서 명하시어 이혼(離婚)을 시켰사온데, 담(聃)이 몰래 박씨와 간통하여 딸 권영금(權英今)을 낳고, 먼저 아내의 딸이라고 하여 노비(奴婢)를 나누어 주었는데, 사패(賜牌)한 노비까지도 또한 주고서, 이미 문권[契券]을 작성하고 숙부(叔父)인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권제(權踶)와 소윤(少尹) 권준(權蹲)으로 증인을 삼으려고, 문권을 가지고 서명(署名)하기를 청하였는데, 제(踶)와 준(蹲)이 의(義)를 들어서 책(責)하지 아니하고, 도리어 담(聃)의 비의(非義)의 청(請)을 좇아서 문권에 서명하여 증인이 되었고, 담(聃)의 아우 권총(權聰)은 방금 대간(臺諫)의 탄핵을 받고 있사온데, 제(踶)가 그 집에 불러다가 가만히 음모(陰謀)를 사주(使嗾)하였고, 또 정연(鄭淵)더러 세력을 믿고 교만하다고 한 것은 매우 불가하옵니다. 공조 판서 정연(鄭淵)은 담(聃)이 죽은 지 겨우 두어 달이 지났는데 관가에 노비(奴婢)로 송사하였고, 또 거짓 처모(妻母)를 칭탁하고서 주장관(主掌官)에 진소(陳訴)하지 아니하고 사삿일을 직접 계달(啓達)하였으며, 또 애매하고 증거도 없는 일을 가지고 제(踶)를 얽어서 죄를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제(踶)나 연(淵)이나 다 일시(一時)의 이름 있는 신하들로서, 의리가 마땅히 화협(和協)하여야 할 것이온데, 서로 헐뜯고 욕하여 다 대신(大臣)의 체통을 잃었사오며, 총(聰)은 그 형(兄)의 옳지 않은 일을 보고서 조금도 충고하고 간(諫)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증인으로〉 이름을 써서 그 과실을 길러 주었고, 담(聃)이 죽은 뒤에 와서는 그 형수의 죄악을 들추어 모아서 까닭 없이 고소하였으니, 역시 옳지 못하옵니다. 제(踶)·준(蹲)·연(淵)·총(聰)을 법대로 논죄하게 하시고, 담(聃)은 비록 이미 죽었사오나, 인신(人臣)으로서 군상(君上)에게 비록 〈의(義)를 위하여〉 몸을 버리고 생명을 끊는다 하여도 의리에 사양하지 못할 것이온데, 담(聃)은 태종께 의리가 군부(君父)를 겸하였거늘, 교명(敎命)을 좇지 않고 다시 박씨(朴氏)와 통하여 자식까지 낳는 데에 이르렀사와, 제멋대로 탐내고 거리낌이 없사오니, 신자(臣子)의 절조(節操)가 하나도 없습니다. 이제 비록 죽었사오나, 그러하오나 몸은 존몰(存沒)에 관계없이 왕법(王法)으로 용서하지 못할 것이옵니다. 청하옵건대, 고신(告身)을 추탈(追奪)하고 충의위(忠義衛)에서 삭적(削籍)하여 뒤에 오는 자를 경계하게 하옵시고, 그 노비(奴婢)들은 유사(攸司)로 하여금 구처(區處)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제(踶)가 연(淵)에게 이르기를, ‘세력을 믿고 교만하다.’ 하였다 하니, 소위 세력이라는 것은 무엇을 가리켜서 말한 것이냐. 의리를 알지 못하는 자는 책(責)할 것이 없겠지만, 제(踶)는 고금(古今)의 일을 통해 알고, 임무가 문묵(文墨)을 겸하였는데, 그 말이 이와 같은 것은 어찌해서이냐. 하물며 담(聃)의 먼저 아내는 태종께서 이미 이혼시키셨는데, 담이 몰래 통하여 딸을 낳았고, 그 노비(奴婢)를 나누어 줄 적에 선·후처(先後妻)라고 말한 것은 마땅히 심찰(審察)하여야 할 것인데, 제(踶)가 가장(家長)으로서 문권[文契]에 서명(署名)까지 하였으니, 어찌 대신(大臣)의 체통이겠느냐. 연(淵)이 또 제(踶)에게 이르기를, ‘박씨가 재산이 넉넉함으로 인하여 고의로 아부한다. ’고 하였으니, 매우 하지 못할 말이다. 이것은 대신(大臣)의 말이 아니라 곧 시정(市井)의 비부(鄙夫)의 말이다."
하고, 명(命)하여 연(淵)·준(蹲)·총(聰)은 파직(罷職)시키고, 제(踶)는 강원도 원주(原州)로 귀양보내고, 담(聃)은 추론(追論)하지 말고 노비(奴婢)는 아뢴 바에 따라 시행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8책 87권 21장 B면【국편영인본】 4책 254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 가족-가산(家産) / 정론-정론(政論) / 윤리(倫理)
○司憲府啓: "卒同知敦寧府事權聃之妻朴氏, 乃亂臣之女, 太宗命使離婚, 而聃潛通朴氏, 生女英今, 稱先妻之女, 分與奴婢, 以至賜牌奴婢, 亦與之。 旣成契券, 以叔父知中樞院事權踶、少尹權蹲爲證, 持契券請署名, 踶、蹲不擧義責之, 反從聃非義之請, 著名契券, 以爲之證。 聃之弟聰方被臺劾, 踶乃招致其家, 潛嗾陰謀, 且以鄭淵爲恃勢驕慢, 甚爲不可。 工曹判書鄭淵則聃卒後纔過數月, 訟奴婢於官, 又假托妻母, 不陳訴於主掌官, 私自啓達, 且以曖昧無證之事, 羅織踶罪。 踶、淵皆一時名臣, 義當和協, 交相詆毁, 皆失大臣之體。 聰見其兄不義之事, 略不規諫, 反爲着名, 養成其過, 及聃卒, 捃摭其嫂氏罪惡, 無因告訴, 亦爲不可。 踶、蹲、淵、聰, 請論如法。 聃雖其身已死, 然人臣之於君上, 雖捐軀殞命, 義所不辭。 聃於太宗, 義兼君父, 不從敎命, 復通朴氏, 至於生子, 恣欲無忌, 臣子之節掃地。 今雖已死, 然身無存沒, 王法所不赦, 請追奪告身, 削籍忠義衛, 以戒後來, 其奴婢, 令攸司區處。"
上曰: "踶謂淵曰: ‘恃勢驕慢。’ 所謂勢者, 何所指而言耶? 不識義理者, 無足責也, 踶識達古今, 任兼文墨, 其言如此, 何耶? 矧聃之先妻, 太宗已曾離婚, 聃潛通生女, 其分與奴婢, 稱爲先後妻, 則所當審察也。 踶以家長, 着名文契, 豈大臣之體乎? 淵又謂踶曰: ‘以朴氏饒資産, 故阿其旨意。’ 甚無謂之辭也。 非大臣之言, 乃市井鄙夫之語也。" 命罷淵、蹲、聰職, 貶踶于江原道 原州。 聃其勿追論, 奴婢, 從啓施行。
- 【태백산사고본】 28책 87권 21장 B면【국편영인본】 4책 254면
- 【분류】사법-탄핵(彈劾) / 가족-가산(家産) / 정론-정론(政論) / 윤리(倫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