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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86권, 세종 21년 9월 29일 갑술 5번째기사 1439년 명 정통(正統) 4년

학교에 학령을 세우지 말도록 하다

처음에 겸 성균 주부(兼成均注簿) 송을개(宋乙開)가 상서(上書)하여 각 관(官)의 학교로 하여금 밝게 학령(學令)을 세우기를 청하였다. 명하여 예조(禮曹)에 내려 성균관(成均館)과 더불어 의논하게 하니, 성균관에서 의논하기를,

"삼가 상고하옵건대, 주 문공(朱文公)순희(淳熙) 연간에 남강(南康)에 있을 때에 조정에 청하여 백록동 서원(白鹿洞書院)을 짓고 학규(學規)를 만들었는데, 그 대략에 이르기를, ‘부자유친(父子有親)·군신유의(君臣有義)·부부유별(夫婦有別)·장유유서(長幼有序)·붕우유신(朋友有信)’ 이라 하였으니, 위가 오교(五敎)의 조목입니다. 요(堯)·순(舜)설(契)로 하여금 사도(司徒)를 삼아서 오교를 편 것이 곧 이것이니, 배우는 자는 이것을 배울 뿐입니다. 이것은 다만 그 대강(大綱)을 말한 것뿐입니다. 뒤에 《소학(小學)》 서(書)를 편차할 때에 명륜(明倫) 뿐 아니라, 입교(立敎)로써 첫머리를 하고 경신(敬身)으로써 끝마쳐서, 수신(修身)의 대법(大法)이 갖추지 않은 것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허 노재(許魯齋)136) 가 배우는 사람을 모아 놓고 이르기를, ‘지금 비로소 진학(進學)하는 차서(次序)를 들을 것이다. 만일 반드시 서로 따르려거든 전날에 배운 장구(章句)의 버릇을 다 버리고 소학(小學)에 종사(從事)하고, 그렇지 않거든 마땅히 다른 스승을 구하라.’ 하였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모두 말하기를, ‘좋다.’ 하였습니다. 선생이 또한 아침저녁으로 정송(精誦)하여 쉬지 않고 독지 역행(篤志力行)하여, 몸소 솔선하여 비록 심한 추위와 성한 더위에도 폐하지 않았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주 문공허 노재의 고사(故事)에 의하여 성균관과 사부 학당(四部學堂)으로부터 향교(鄕校)에 이르기까지 모두 소학으로 학령을 삼으소서."

하니, 명하여 의정부·제조(諸曹)와 예문관·춘추관·집현전으로 하여금 함께 의논하여 아뢰라 하니, 의정부에서 함께 의논하여 아뢰기를,

"《소학(小學)》은 천하 만세(天下萬世)가 함께 높이는 글인데 학령(學令)이라고 일컫는 것은 불가하니, 청하옵건대, 거행하지 마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27책 86권 42장 A면【국편영인본】 4책 243면
  • 【분류】
    사상-유학(儒學) / 역사-고사(故事)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

  • [註 136]
    허 노재(許魯齋) : 원대(元代)의 주자학자(朱子學者) 허형(許衡).

○初, 兼成均注簿宋乙開上書, 請令各官學校明立學令, 命下禮曹, 與成均館議之。 成均館議曰:

謹按朱文公 淳熙間在南康, 請于朝, 作白鹿洞書院, 爲學規。 其略曰: "父子有親, 君臣有義, 夫婦有別, 長幼有序, 朋友有信。 右五敎之目。 使爲司徒, 敬敷五敎, 卽此是也。 學者, 學此而已。" 此但言其大綱耳。 後編次《小學》書, 非獨明倫, 首之以立敎, 終之以敬身, 修身大法, 無所不備。 是故許魯齊聚學者而謂之曰: "今始聞進學之序。 若必欲相從, 當悉棄前日所學章句之習, 從事於《小學》。 不然, 當求他師。" 衆皆曰: "唯。" 先生亦朝夕精誦不輟, 篤志力行, 以身先之, 雖隆寒盛暑, 不廢也。 伏望依朱文公許魯齋故事, 成均四部學堂以至鄕校, 皆以《小學》爲學令。

命令議政府諸曹及藝文館春秋館集賢殿同議以聞。 議政府僉議啓曰: "《小學》乃天下萬世所共尊仰之書, 稱爲學令不可, 請勿擧行。" 從之。


  • 【태백산사고본】 27책 86권 42장 A면【국편영인본】 4책 243면
  • 【분류】
    사상-유학(儒學) / 역사-고사(故事) / 교육-인문교육(人文敎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