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 일식하는 것과 낮에 월식하는 것도 중외에 고하게 하다
의정부(議政府)에 전지하기를,
"일식(日食)과 월식(月食)은 천변(天變)으로서 큰 것이다. 《주례(周禮)》 고인(鼓人)에, ‘일월(日月)을 구(救)하려면 왕고(王鼓)를 조(詔)한다.’ 하였고, 《좌전(左傳)》에, ‘일월(日月)이 상(傷)한 것이 아니면 북을 울리지 않는다.’ 하였으니, 구식(救食)이라는 법은 오래 된 것이다. 그러나 태양이 밤에 먹히는 것과 달이 낮에 먹히는 경우, 예전에 구식(救食)한다는 문헌이 없었고, 우리 나라에서도 또한 중외(中外)에 효유(曉諭)하지 않은 것이 여러 해가 되었다. 지난 무신년 4월 초1일에 일식(日食)을 당하였는데, 일관(日官)이 밤에 있는 일식이라 하여 고하지 않았다. 그때에 홍려시 승(鴻臚寺丞) 조천(趙泉)과 병부 원외랑(兵部員外郞) 이약(李約)이 평양(平壤)에 도착하여 아침밥을 먹는데, 평양부 사람이 일색(日色)이 이지러졌다고 고하였다. 조천(趙泉) 등이 그제서야 일식인 줄 알고 밥 먹던 것을 걷어치우고 분주하게 뜰에 나가서 구식(救食)하였다.
이 뒤에 대신(大臣)이 의논하여 말하기를, ‘비록 태양이 밤에 먹히고 태음이 낮에 먹히더라도, 또한 중외(中外)에 효유(曉諭)하여 조시(朝市)를 정지하고 형륙(刑戮)을 하지 말아야 한다. ’고 하였다. 의논하는 자가 말하기를, ‘일월(日月)이 서로 먹히는 날에 조시(朝市)를 정지하고 형륙(形戮)을 않는다는 글이 비록 경전(經傳)에는 보이지 않았으나, 우리 나라에서 의(義)로써 일으켰으니, 가히 바꿀 수 없는 아름다운 법이라 하겠습니다. 근자에 역자(譯者)에게 들으니, 「중국에서는 해가 밤에 먹히는 것과 달이 낮에 먹히는 것은 천하(天下)에 포고(布告)하지 않는다.」 하고, 또 《교식통궤(交食通軌)》에 이르기를, 「일식이 야각(夜刻)에 있는 것과 월식이 주각(晝刻)에 있는 것은 곧 먹히지 않는 것과 같으니, 반드시 추산(推算)할 것도 없다.」 하였으니, 그렇다면, 지하(地下)에서 먹히는 것도 또한 조시(朝市)를 정지하면, 이것은 예(禮)로서 무거(無據)한 것이고 지나친 것이다.’ 하고, 혹은 말하기를, ‘만일 무신년에 미리 중외(中外)에 포고하여, 4월 초1일의 일식이 대생광(帶生光)이라는 것을 알게 하였다면, 평양부 사람들이 미리 일식을 구(救)하고, 조천(趙泉) 등에게 고하여 해가 복원(復圓)되기를 기다려서 아침밥을 먹게 하였을 것이다. 이렇게 하였다면, 조천 등이 반드시 우리 나라에 예를 아는 사람이 있다고 말하였을 것이다.
대생광(帶生光)이라고 하면 중외에 포고하여, 조시를 정지하고 형륙을 하지 않는 것이 모두 행하여야 할 일인데, 그때에 고하지 않은 것은 일관(日官)의 과실이다.’ 하고, 혹은 말하기를, ‘그날에 교식(交食)이 있는 것을 알지 못하였다면 할 수 없지마는, 이미 알았다면 비록 지하(地下)에서 일식을 하더라도 처사(處事)하는 것은 평일과 다름이 없을 수 없다. 《춘추(春秋)》에도 또한 밤에 일식하는 것을 기록하였으니, 하늘을 공경하고 재앙을 두려워하는 일은 비록 지나치게 삼가더라도 어찌 의(義)에 해롭겠는가.’ 하면, 답변하기를, ‘해가 먹힘을 당하고 있는데, 빽빽한 구름이 끼어 나타나지 않으면, 옛사람이 오히려 길한 상소[吉祥]로 여겼거늘, 하물며 지하에 있는 것이겠는가. 해가 먹힘을 당하여도 달이 혹 피하는 수가 있으니, 먹히고 안 먹히는 것도 또한 기필할 수가 없다. 《춘추(春秋)》에 말한 야식(夜食)이란 것은 소위 대생광(帶生光)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전(傳)에 말하기를, 「해가 처음 나올 때에 이지러지고 상한 곳이 있다.」고 하였다. 하늘을 공경하고 재앙을 두려워하는 일은 더욱 예가 아닌 것으로써 행할 수 없다.’ 하였다.
혹은 말하기를, ‘음양(陰陽)의 바뀜이 비록 초하루와 보름에 있으나, 각(刻)과 분(分)의 차가 혹간 있어서, 낮으로 정하였어도 혹 밤에 먹히기도 하고, 밤으로 정하였어도 혹 낮에 먹히기도 하니, 미리 먼저 포고(布告)하는 것을 폐할 수 없다. 어찌 이미 이루어진 법을 고칠 필요가 있겠는가.’ 하면, 답변하기를, ‘《예기(禮記)》에, 「조두(俎豆)를 이미 베풀었어도 제사(祭祀)를 마치지 못하고, 제후(諸侯)가 여럿이 천자를 뵙는 데도 예를 마치지 못한다.」한 것은, 한결같이 일에 임하여 예를 행하다가 일식을 보면 구식(救食)하는 것을 말한 것이다. 성인(聖人)의 말씀이 이미 저와 같으니, 지금 비록 미리 고하지 않더라도 나타나는 바에 따라 분주하게 구식(救食)하면, 어찌 불가할 것이 있는가. 어찌 반드시 무거(無據)한 예(禮)를 행할 것인가. 정조(正朝)·동지(冬至)의 하례(賀禮)와 사신을 접대하는 날을 당하여, 어찌 하늘에 있는 정하기 어려운 변(變)으로 미리 대례(大禮)를 폐할 수 있는가. 옛사람이 말하기를, ‘지나치는 것은 불급(不及)하는 것과 같다.’ 하였으니, 이제부터 태양이 밤에 먹히는 것과 태음이 낮에 먹히는 것을, 한결같이 중국의 제도에 의하여 중외(中外)에 포고(布告)하게 하지 말고 또 조시(朝市)를 정지하지 마는 것이 편리하고 유익할 것이라.’ 하니, 두 가지 말 중에 어느 것이 옳은가를 의논하여 아뢰라."
하였다. 의정부에서 여러 사람이 의논하고 아뢰기를,
"태양이 밤에 먹히는 것과 태음이 낮에 먹히는 것을 미리 중외(中外)에 고하는 것은 우리 나라의 이미 이루어진 법이오니, 비록 중국에서 행하는 것은 아니라도, 이것은 하늘을 삼가고 재앙을 두려워하는 뜻이오니, 어찌 의리에 해로울 것이 있습니까. 신 등은 생각하옵건대 예전대로 하는 것이 편할까 합니다."
하니,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27책 86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4책 229면
- 【분류】과학-역법(曆法) / 출판-서책(書冊) / 역사-고사(故事) / 역사-전사(前史)
○丁丑/傳旨議政府:
日月食, 天變之大者也。 《周禮》 《鼓人》: "救日月則詔王鼓。" 《左傳》: "非日月眚, 弗鼓。" 其救食之法尙矣。 然大陽之夜食, 大陰之晝食, 古無救食之文, 而我國亦不諭中外, 許多年矣。 去戊申歲四月朔日當食, 日官以爲夜食不告。 其時鴻臚寺丞趙泉、兵部員外郞李約到平壤値朝食, 府人告日色虧, 泉等乃知日食, 徹飯奔走, 出庭救之。 是後大臣議以謂: "雖陽之夜食、陰之晝食, 亦令曉諭中外, 停朝市去刑戮。" 議者曰: "日月交食之日停朝市去刑戮之文, 雖不見於經傳, 然我國以義起之, 可謂不易之美法也。 近者聞諸譯者云: ‘中國日之夜食、月之晝食, 不布告於天下。’ 又《交食通軏〔交食通軌〕 》云: ‘日食之在夜刻者、月食之在晝刻者, 卽同不食, 亦不必推算。’ 然則地下之食, 亦停朝市, 此禮之無據而過者也。" 或曰: "儻於戊申歲, 預告中外, 使知四月朔食, 是帶生光, 則平壤府人預救其食, 而告于趙泉等, 待其復圓乃饋朝食。 如是則泉等必謂我國有知禮者矣。" 曰: "帶生光, 則布告中外, 停朝市去刑戮, 皆所當行也。 其時不告, 日官之過也。" 或曰: "不知其日之有交食則已, 旣曰知之, 則雖在地下, 而處事不可與平日無異。 《春秋》亦記夜食敬天畏災之事, 雖曰過愼, 何害於義?" 曰: "日當食而密雲不現, 古人猶以爲吉祥, 況在地下乎? 日當食而月或避之, 食與不食, 亦未可必。 《春秋》之夜食, 所謂帶生光者也。 故《傳》曰: ‘日始出而有虧傷之處, 敬天畏災之事, 尤不可以非禮行之。’" 或曰: "陰陽之交, 雖在朔望, 而刻分之差, 亦或有之。 定晝而或食於夜, 定夜而或食於晝, 預先布告之法, 不可廢也。 何必改已成之法乎?" 曰: "《禮記》: ‘俎豆旣設, 不得終祭; 諸侯旅見, 不得終禮者。’" 一曰: "臨事行禮而見日食, 則救之也。 聖人之言旣如彼, 今雖不預告, 而隨其所見, 奔走救之, 何不可之有? 豈可必行無據之禮乎? 當正朝冬至之賀、使臣接待之日, 豈可以在天難定之變, 預廢大禮乎! 古人云: ‘過猶不及。’ 自今陽之夜食、陰之晝食, 一遵中國之制, 無令曉告中外。 且勿停朝市便益。" 二說孰是? 擬議以聞。
議政府僉議啓曰: "大陽之夜食、大陰之晝食, 預告中外, 我國家已成之法。 雖非中國之所行, 然此謹天畏災之義也, 何害於義? 臣等竊謂仍舊便。" 從之。
- 【태백산사고본】 27책 86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4책 229면
- 【분류】과학-역법(曆法) / 출판-서책(書冊) / 역사-고사(故事) / 역사-전사(前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