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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86권, 세종 21년 7월 21일 정묘 2번째기사 1439년 명 정통(正統) 4년

사간원에서 농정의 계책을 상소하다

사간원(司諫院)에서 상소하기를,

"백성은 나라의 근본이요, 먹는 것은 백성의 하늘이니, 백성에게 취하는 제도가 만일 혹시라도 중도(中道)를 잃으면, 백성이 그 폐단을 받는 것입니다. 은(殷)나라의 조법(助法)과 주(周)나라의 철법(徹法)이 공사(公私)가 모두 넉넉하여, 많으니 적으니 하는 이의가 없었던 것은 그 백성에게 취하는 제도가 중도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내려와서 후세(後世)에 이르러 노공(魯公)이 흉년이 들어 재용(財用)이 부족한 것에 대하여 물으니, 유약(有若)이 대답하기를, ‘어찌 철법(徹法)을 행하지 않는가.’ 하였으니, 백성을 넉넉하게 하는 뜻으로서, 이는 만세(萬世)에 나라 가진 사람의 귀감(龜鑑)이 될 것입니다. 전국 시대(戰國時代)에 이르러서 맹자(孟子)등(藤)나라 임금에게 인정(仁政)을 행하고자 하여 고(告)하되, 용자(龍子)의 말을 인용하여 말하기를, ‘땅을 다스리는 것은 조법(助法)보다 더 좋은 것이 없고, 공법(貢法)보다 더 좋지 않은 것이 없으니, 공법(貢法)이라는 것은 수년 동안을 비교하여 일정한 것을 만들어서, 풍년이 들어 쌀이 흔전만전하여 많이 거두워도 가혹한 것이 되지 않더라도 적게 취하고, 흉년이 들어 그 밭을 싹 쓸어도 부족하여도 반드시 수에 차도록 거두니, 백성의 부모가 되어서 백성으로 하여금 힘에 겹도록 1년 내내 노고하고도 그 부모를 봉양하지 못하게 하고, 또 곡식을 빌려 주어 이익을 취하므로, 늙은이와 어린이로 하여금 구학(溝壑)에 뒹굴게 하니, 백성의 부모된 보람이 어디 있는가. ’하였으니, 대개 맹자의 뜻이 반드시 용자의 말을 옳게 여기어, 조법(助法)과 철법(徹法)을 행하고자 한 것입니다.

우리 태조(太祖)께서 창업(創業)하시어 대통(大統)을 전하고, 상경(常經)을 세우고 기강(紀綱)을 베풀어, 은나라주나라의 조법과 철법의 뜻을 참작하여 토전(土田)의 손실법(損實法)을 세워, 수전(水田) 1결(結)마다 조미(造米) 30두(斗)를 거두고, 한전(旱田) 1결마다 잡곡 30두를 거두고, 또 밭 1결에 베[布] 한 필을 거두어 일대(一代)의 성헌(成憲)을 만들고, 처음부터 공법(貢法)의 의논이 없었습니다. 태종(太宗)께서 계승하시어 답험(踏驗)의 법을 세워 공사(公私)가 모두 유족하였는데, 어찌하여 지금에 이르러 갑자기 공법(貢法)을 시행하십니까, 선유(先儒)가 말하기를, ‘예전 것보다 이롭기가 10배가 되지 않으면 고칠 것이 아니다. ’고 하였사오니, 어찌 지극히 정당한 의논이 아닙니까. 지금 이 공법을 행하는 것이 그 폐단이 여러가지입니다. 신 등이 아직 귀로 듣고 눈으로 본 것으로 천총(天聰)을 더럽히겠습니다. 우리 나라의 땅은 산천이 엇갈리고 평지와 습지(濕地)가 꾸불꾸불하여, 중국 땅의 평탄하고 광활한 것에 비할 수 없습니다. 비옥한 땅은 항상 적고 척박한 땅은 항상 많사오니, 이 법이 행하여지매 비옥한 밭을 얻은 자는 기뻐하고, 척박한 밭을 얻은 자는 기뻐하지 않습니다. 비옥한 밭은 소출이 많아서 납공(納貢)하면 전보다 감하여지니, 이것은 적게 거두워 나라에 해되는 것이요, 척박한 밭은 소출이 적어서 납공(納貢)하면 전보다 배나 되니, 이것은 많이 거두워 백성에게 해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기뻐하는 자는 적고 기뻐하지 않는 자는 많을 것입니다. 〈은(殷)나라의〉 이윤(伊尹)이 말하기를, ‘한 사람이라도 살 곳을 얻지 못하면 이것은 나의 허물이다.’ 하였사오니, 한 사람이 얻지 못하는 것도 오히려 염려가 되거늘, 하물며 기뻐하지 않는 자가 많은 것이겠습니까.

지금 그 법에 말하기를, ‘완전히 묵은 밭[全陳田]과 한 호(戶)에서 경작하는 밭이 모두 전손(全損)인 것은 진고(陳告)하게 하여, 그 조세(租稅)를 면제한다.’ 하였사오니, 이것은 한 호(戶)에서 경작하는 것이 거의 전손에 이르러도 조세의 전수량을 받는 것이요, 1결(結)의 밭이 거의 다 묵었어도 또 전수량을 받는 것이오니, 서민(庶民)의 원망이 대개 이에서 깊어지는 것입니다. 기유년에 밭을 측량할 때에 유사(有司)가 혹 적합한 사람이 아니어서, 비옥하고 척박한 것이 적당함을 잃고, 좋고 나쁜 것이 중도를 잃었으며, 또 개간한 밭의 옆에 있는 척박(塉薄)한 한지(閑地)를 경작할 수 있는 밭이라 칭하여, 모두 다 측량하여 결(結)과 복(卜)으로 매어 놓아 후일(後日)의 경작을 기(期)하였사오니, 백성들이 모두 고르지 못하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후일에 급손급진(給損給陳)의 혜택을 받을 수 있기 때문에 깊이 걱정하지 않았었는데, 지금 가을걷이[秋成]를 당하여 드디어 손실(損實)의 법을 고친 연후에 전날 밭을 측량할 때의 균평(均平)하지 못하다는 탄식이 더욱 깊어졌습니다. 또 말하기를, ‘비록 흉년을 당하여 혹시 조금 중(重)하다는 의논이 있기는 하나, 풍년에 거두는 것이 경(輕)하니, 또한 이것으로 저것을 보충할 수 있다. ’고 하였는데, 신 등이 매양 보건대, 백성의 생업이 비록 풍년을 만났더라도 전년(前年)의 꾼 것을 다 갚고 나면 겨우 그 해의 굶주림을 면하게 되는데, 무슨 남은 곡식이 있어서 다음해의 빈곤을 보충할 수 있겠습니까. 하물며 근년 이래로 수재와 한재가 서로 겹치어, 풍년은 적고 흉년은 많은 것이겠습니까.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전하께서는 한결같이 조종(祖宗)의 성헌(成憲)을 좇으시어 일국의 백성들을 기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지금 큰 법을 세우고자 하는데 너희들이 어찌 이렇게 번거롭게 청하는가."

하고 드디어 윤허(允許)하지 아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7책 86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4책 228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과학-천기(天氣) / 재정-전세(田稅) / 농업-농작(農作) / 역사-고사(故事) / 역사-전사(前史)

    ○司諫院上疏曰:

    民惟邦本, 食爲民天, 取民之制, 苟或失中, 則民受其弊。 助、徹之法, 公私俱足, 而無多寡之異辭者, 以其取民之制得中也。 降及後世, 魯公有年饑用不足之問, 有若對盍徹足民之義, 此萬世有國之龜鑑也。 至戰國時, 孟子君以欲行仁政而引龍子之言曰: "治地莫善於助, 莫不善於貢。 貢者, 較數歲之中以爲常。 樂歲粒米狼戾, 多取之而不爲虐, 則寡取之, 凶年糞其田而不足, 則必取盈焉。 爲民父母, 使民盻盻, 焉將終歲勤動而不得養其父母, 又稱貸以益之, 使老稚轉于溝壑, 惡在其爲民父母也?" 蓋孟子之意必以龍子之言爲是, 而欲行助徹之法也。 惟我太祖創業垂統, 立經陳紀, 酌助徹之意, 立土田損實之法, 每水田一結取造米三十斗, 旱田一結收雜穀三十斗, 又田一結收布一匹, 以爲一代之成憲, 而初無貢法之議。 太宗繼述, 仍立踏驗之法, 公私俱裕, 何至於今遽行貢法歟? 先儒以爲: "利於其舊不什, 則不可改已。" 此豈非至正之論乎? 今玆貢法之行, 其弊多端, 臣等姑以耳聞目擊者, 仰瀆天聰。 我國之地, 山川阻隔, 原濕回互, 非中土平衍之可比, 沃土常少, 塉地常多。 玆法之行, 得肥田者悅, 得塉田者不悅。 肥田所出多, 而納貢則減於舊, 是寡取而害於公也; 塉田所出少, 而納貢則倍於舊, 是多取而害於民也。 然則悅者少, 而不悅者衆矣。 伊尹曰: "一夫不獲, 則是予之辜。" 一夫之不獲, 猶以爲慮, 況不悅者衆乎? 今其法有曰: "全陳之田及一戶所耕皆全損者, 許令陳告, 免其租稅。" 是則一戶所耕, 幾至全損, 而必取盈焉; 一結之田, 幾至全陳, 而又取盈焉, 庶民之怨, 蓋深於此。 歲在己酉量田之時, 有司或不得人, 膏塉失宜, 高下失中。 且以墾田之傍塉薄閑地, 稱爲可耕之田, 竝皆打量, 係以結卜, 以期後日之耕, 民皆有不均之歎, 然猶蒙後日給損給陳之惠, 未深爲慮。 今當秋成, 遂革損實, 然後前日量田之時不均之歎, 益深矣。 又曰: "雖當歉年, 或有稍重之議。 豐年所收旣輕, 則亦可以此而償彼。" 臣等每見民之生業, 雖値豐年, 盡償前歲之稱貸, 僅免其年之饑饉, 安有餘粟可償後年之貧乏乎? 況近年以來, 水旱相仍, 豐年少、歉年多乎? 伏惟殿下, 一遵祖宗之成憲, 以悅一國之民庶。

    上曰: "今欲立大法, 而汝等何煩請如是乎?" 遂不允。


    • 【태백산사고본】 27책 86권 12장 A면【국편영인본】 4책 228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과학-천기(天氣) / 재정-전세(田稅) / 농업-농작(農作) / 역사-고사(故事) / 역사-전사(前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