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제가 사율원 등 송사를 담당하는 기관의 문제점과 도망 노비의 추쇄에 대해 상소하다
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권제(權踶)가 상소하기를,
"신이 엎드려 보건대, 금년에 가뭄이 더욱 심하오매 전하께서 진념하시어 기우제를 지내시고 죄인을 석방하사, 무릇 하늘에 순응(順應)하고 백성에게 부지런히 하는 도리를 극진히 하지 아니함이 없었사오나, 하늘이 또한 비를 내리지 아니하옵니다. 신은 그윽이 생각하건대, 재변이 이르는 것은 비록 어떤 일에 응한 것임을 지적해 말할 수 없사오나, 하늘이 정한 운명에 귀착(歸着)시켜서 감응(感應)으로 이르는 것이 아니라고 이를 수도 없습니다. 효부(孝婦)를 죽여서 3년 동안 가물고, 죄 없는 사람을 죽여서 6월에 서리가 내렸음은 전사(前史)에 실려 소연(昭然)하게 상고할 수 있사오니, 형벌을 쓸 즈음에 심히 두려울만 하옵니다. 방금 성상께서 위에 계시어 여러 어진 신하를 등용(登用)하였사오매, 어찌 죄 없는 사람을 지나치게 형벌하여, 화기(和氣)를 손상시켜 재앙(災殃)을 이루게 함이 있겠사옵니까. 그러하오나, 가뭄이 이처럼 심하오니 어찌 원인이 없이 그렇겠습니까. 신이 이제 좁은 소견으로 그 조목을 뒤에 나열하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성상께서는 굽어살피옵소서.
1. 경외(京外)의 대벽(大辟)050) 은 형조의 상복사(詳覆司)051) 에서 자세히 살펴서 의정부에 전보(轉報)하면, 의정부에서 의의(擬議)한 뒤에 계문(啓聞)하여 삼복법(三覆法)을 시행하오니, 가히 정밀하다 이르겠습니다. 그러나 그 나머지 도류형(徒流刑) 이하의 죄는 경외관(京外官)이 다만 차비 검률(差備檢律)로 하여금 법률에 비추어 재결을 받고, 또 법률에 바른 조문(條文)이 없으면 비의(比擬)하여 논단(論斷)하는 것이 반이 넘습니다. 무릇 검률(檢律) 한 사람에게 맡겨서 고찰(考察) 검속(檢束)하고 비의하게 하오니, 어찌 잘못됨이 없겠습니까. 죄가 법률에 해당되지 아니하오면, 비록 한 대의 매를 맞을지라도 어찌 억울함이 없겠습니까. 또 경외관이 혹 검률의 조율(照律)한 바를 쓰지 아니하고 제 마음대로 조율하여 결단하고, 검률이 옳지 못하다고 고집하여도 이기지 못하는 것도 많이 있습니다. 하물며 경외관이 다스리는 바는 옥사(獄事)를 판결하는 것만이 아니라, 모든 사무가 복잡하여 혹 정밀하기를 기약할 겨를이 없는 것이 허다하옵니다. 삼가 당(唐)·송(宋)의 제도를 상고하옵건대, 형부(刑部)·대리시(大理寺)·심형원(審刑院) 등 형벌을 의논하는 관리가 하나만이 아니옵니다. 이제 사율원(司律院)은 모두 과거 출신으로 별로 하는 바가 없으며, 제조(提調)와 제거(提擧)·별좌(別坐) 등이 있사옵니다. 외방에는 어려운 형세에 있사오니, 원컨대, 형조·사헌부·한성부·의금부에서 판결하는 문부(文簿)를 사율원에 보내어서 〈사율원에서〉 법률을 상고해 논단(論斷)하여 각각 그 본사(本司)로 통보(通報)하면, 각각 그 사(司)에서는 그 상례(常例)에 의하여 시행하는 것이 거의 자세하고 극진함을 얻을 것이며, 형벌을 조심하고 가엾게 여기는 어진 덕을 더욱 넓힐 것입니다.
1. 형조·사헌부·한성부·도관(都官) 등이 소송을 맡은 자가 원고(原告)·피고(被告)가 모두 이르러 고복(考覆)052) 하기가 어렵지 아니하온데, 그 사(司)의 사무가 복잡함을 인연하여 세월이 오래도록 미결로 있어 억울함을 이루게 하는 것이 간혹 있습니다. 원컨대, 각사로 하여금 우선 다른 일을 멈추고, 위의 오래 미결된 소송을 모두 즉시 판결하여 억울함을 펴고 원망을 해소하게 하소서.
1. 우리 나라 노비(奴婢)의 법은 비록 중국과 공통되지 아니하오나, 예의 염치(禮義廉恥)의 풍속이 실로 이로 말미암거늘, 금년 이래로 노비의 도망한 자를 서로 숨기는 법에 얽매어, 비록 그 부모 형제가 공공연히 숨겨 두고도 도리어 그 주인을 욕하는데도 감히 대항하지 못하오니, 세가(世家) 자손으로 빈궁(貧窮)하여 스스로 떨치지 못하는 자가 원한을 품음이 더욱 깊습니다. 지금 추쇄색(推刷色)에서 공처(公處)의 노비에게는 이 법을 쓰지 아니하옵니다. 또 율문(律文)의 본뜻을 자세히 살피면, 범죄한 바가 있어 죄를 지은 자를 가리켜 말한 것이며, 도망한 노비를 찾는 것은 죄지은 경우가 아닙니다. 그러하온데, 이 율문으로 논하는 것은 아마 적당하지 못할까 하옵니다. 비옵건대, 사사 노비의 도피한 자도 공처 노비의 예에 의하옵고, 이 율문을 쓰지 말게 하사 세가(世家)를 우대해 구휼하며, 예의를 돈독히 하고 염치를 장려하여 국가의 기맥(氣脈)을 보호하고 노주(奴主)의 명분을 엄하게 하소서. 신은 은혜를 받자옴이 가장 우악(優渥)하오나 보답할 길이 없으므로, 어리석은 생각을 다하여 만분의 일이라도 보답할까 하오니, 엎드려 바라옵건대, 성자(聖慈)께서 말을 들어 시행하옵시면 하늘을 두려워하고 백성을 사랑하시는 정치에 반드시 도움이 없지 아니할 것입니다."
하니, 의정부(議政府)에서 내려 주어 의논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7책 85권 23장 B면【국편영인본】 4책 210면
- 【분류】과학-천기(天氣) / 사법-행형(行刑) / 신분-천인(賤人) / 역사-고사(故事)
- [註 050]대벽(大辟) : 사형에 해당하는 큰 죄인.
- [註 051]
상복사(詳覆司) : 형조의 분장의 하나로서 중죄인을 심사하던 곳.- [註 052]
고복(考覆) : 특히 사형(死刑)에 해당하는 죄를 지은 사람에 대해 반복해서 심사하는 것.○知中樞院事權踶上疏曰:
臣伏覩今年旱暵尤甚, 殿下軫慮, 禱祀肆眚, 凡所應天勤民之道, 靡所不至, 而天且不雨。 臣竊念災變之來, 雖不可以指言某事之應, 亦不可以歸諸天數而謂無感召也。 殺孝婦而三年槁旱, 戮無罪而六月飛霜, 前史所載, 昭然可考, 用刑之際, 甚可畏也。 方今聖上在上, 群彦登庸, 安有濫刑無辜而傷和致災者乎? 然旱乾如此, 豈無所因而致然歟? 臣今以管見, 條列于後, 伏惟聖慈垂察。
一, 京外大辟, 刑曹詳覆司詳審, 傳報議政府擬議, 然後啓聞三覆施行, 可謂精矣。 其餘徒流以下之罪, 京外官只令差備檢律照律定奪, 又律無正條, 比擬論斷者過半。 夫委一檢律, 考檢比擬, 豈無差失? 律不當罪, 雖受一笞, 豈無冤抑? 又京外官或不用檢律所照, 任自照斷, 檢律固執不可而不勝者, 亦多有之。 況京外官所治, 非獨斷獄, 庶務蕞冗, 或未暇致精者, 比比而是? 謹考唐、宋之制, 有刑部大理寺審刑院, 議刑之官非一。 今司律院, 皆出業之人, 別無所職, 有提調有提擧別坐, 若外方則勢有難者。 乞將刑曹司憲府漢城府義禁府所決文簿, 送于司律院, 按律論斷, 各報本司, 各其司依常例施行, 庶得詳盡, 而益廣欽恤之仁。
一, 刑曹司憲府漢城府都官等司訴訟者, 元隻俱造, 考覈不難, 而緣其司事務煩劇, 年久未決, 以致冤抑者或有之矣。 乞令各司姑停他事, 盡將上項年久未決者, 剋日決了, 以伸冤屈, 以消憤怨。
一, 我國奴婢之法, 雖不通中國, 然我國禮義之俗、廉恥之風, 實由於此, 而比年以來, 奴婢逃避者拘於相爲容隱, 雖其父母兄弟, 公然容接, 反辱其主, 而莫敢誰何, 世家子孫貧窮不自振者, 抱恨尤深。 今推刷色於公處奴婢, 旣不能用此律, 又詳律文本意, 指有所犯, 而將罪者言之也, 推逃奴婢, 非罪之也, 論以此律, 恐或未便。 乞私奴婢逃避者, 依公處奴婢例, 不用此律, 優恤世家, 敦禮義而勵廉恥, 以壽國家之脈, 以嚴奴主之分。 臣蒙恩最渥, 末由報効, 庶竭一得之愚, 仰答萬分之一。 伏望聖慈, 擧而措之, 其於畏天恤民之政, 未必無補。
下議政府議之。
- 【태백산사고본】 27책 85권 23장 B면【국편영인본】 4책 210면
- 【분류】과학-천기(天氣) / 사법-행형(行刑) / 신분-천인(賤人) / 역사-고사(故事)
- [註 05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