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 행호를 대자암에 머물게 하다
임금이 도승지 김돈에게 이르기를,
"내 마음을 네가 이미 알았을 것이다. 효령 대군이 오랫동안 병으로 앓고 있었는데, 이제 비록 조금 나았다 하더라도 한 번 몸과 마음을 움직이면 병이 반드시 다시 발작할 것이다. 내가 지난 겨울에 동교(東郊)에서 대군에게 들렸더니 한밤 중에 몸이 잠시 편치 못하였는데, 필시 나를 보고 몸을 움직인 까닭이었다. 그러나 나를 공경하는 마음을 품고서 나로 하여금 알지 못하게 하였는데, 내가 다른 사람으로 인하여 알았다. 뒤에 또 종친을 사정전(思政殿)에 모으고 내가 대군을 보매 말하는 기운이 화평하더니, 오후에 현기(眩氣)가 나서 가마에 떠메어져 집으로 돌아갔으니, 역시 몸을 움직인 까닭으로 그러한 것이다. 내가 형님이 늙고 병든 것을 민망히 여겨 조정의 반열(班列)에 나오지 못하게 하고, 나를 볼 적에도 반드시 날이 늦어서 보도록 하였다. 동교에서 서로 만나던 날에 늙은 형님이 내게 청하기를, ‘중 행호(行乎)가 산중에 숨어 있는 것을, 신이 상감을 번거롭게 하여 청해온 지 이제 여러 달이 되었습니다. 가사(袈裟)·선봉(禪棒)·불자(拂子)·수정 염주(水精念珠) 등의 법물(法物)을 만들어 주고자 하나, 다만 재력이 부족하여 한스럽습니다. ’고 하였다.
내가 생각하기를, 늙은 형님이 병중에서 청하는 말을 들어 주지 아니할 수 없으나, 수정 염주는 비용이 자못 많이 들므로 상의원(尙衣院)으로 하여금 은으로 염주를 만들게 하였더니, 비용이 20냥쭝에 불과하였다. 아울러 선봉·불자 및 가사를 만들 재료를 늙은 형님에게 보내 드렸으나 금으로 꾸미지는 아니하였다. 성균관 학생들이 상서(上書)하기를, ‘내가 주었다. ’고 이르니, 참으로 헛된 말이다. 내가 사람을 시켜 대군에게 물으니, 역시 금으로 꾸민 것이 없다고 한다. 집현전 유생의 말은 성균관 학생과 같이 말을 꾸며서 만들지는 아니하였으나, 성실하지 못한 말임은 면하지 못할 것이다. 대간에서도 역시 상서(上書)하여 말하기에, 나도 이미 행호를 산으로 돌려 보내기를 허락하였으나, 대군이 근래에 부처를 매우 좋아하여, 병중에서 꿈에 부처를 보고 청하기를, ‘내 병이 만약 나을 수 있거든 팔을 들어 보이고, 만약 영영 낫지 못하겠거든 팔을 들지 마소서.’ 하고 청하였더니, 그제서야 부처가 한 팔을 들어 보이었는데, 이때부터 병이 점점 나았다고 하며, 행호를 지독하게 사랑하여 ‘참부처[眞佛]’라고 생각하고 또 공경하는 예(禮)를 다하고 있다.
근래에 유생들의 상소로 인하여, 사람을 시켜 대군에게 묻기를, ‘행호를 산으로 돌려보내고자 하는데 어떠합니까.’ 하니, 대군이 대답하기를, ‘부득이하다면 산으로 돌려보내도 가합니다.’ 하였다. 이제 듣건대, 대군이 말하기를, ‘노승(老僧)이 깊은 산중에서 숨어 살면서, 이름이 드러남과 영달(榮達)을 구하지 아니하였는데, 내가 병중에서 퍽 만나 보고 싶어 하여서, 지난해 여름에 상감을 번거롭게 하여 행호가 무더위를 무릅쓰고 서울에 이르렀거늘, 지금 또 유생들의 배척으로 인하여 무더위가 한창 성한데 재촉하여 산으로 돌아가게 하면, 노승이 길에서 병이 날까 염려스럽다. ’고 하며, 늙은 형님이 깊이 근심하니, 나는 늙은 형님이 애를 써서 병이 다시 발작할까 두렵다. 그러나 내가 이미 대간(臺諫)들에게 허락하기를, ‘장차 행호를 산으로 돌아가게 하겠다. ’고 하였는데, 이제 만약 머물러 두면 대간에서 나를 무엇이라고 이르겠느냐. 사라(紗羅)·저포(紵布)를 대군에게 보내 주어서 대군으로 하여금 행호에게 주어 전송하게 하여, 늙은 형님의 마음을 위로하고자 하는데 어떨까. 너도 유학자이므로 반드시 부처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나, 밖에 있는 다른 유학자들에게 비할 바가 아니니 이미 내 마음을 알았을 것이다. 행호가 서울에 이른 것이 이제 이미 오래 되었으나, 내가 한 번도 서로 보지 아니하였다. 내가 어찌 부처를 좋아하겠는가. 네가 다시 잘 생각하여 아뢰라."
하니, 돈이 대답하기를,
"대군의 마음이 이미 이와 같사오매 위로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전하께서 비록 행호를 산으로 돌아가기를 허락하였을지라도 아직 길을 떠날 날짜를 정하지 아니하였사오니, 잠정적으로 여름 달에는 머물러 두었다가 서늘한 가을철이 되기를 기다려 떠나게 하여, 예전 산사(山寺)로 돌아가게 함이 가할 것입니다. 만약 영영 머물러 두고 돌려보내지 아니하오면, 이는 대간에게 신의를 잃는 것입니다. 의복의 재료를 주는 일은 성상의 재결(裁決)에 있사옵니다."
하였다. 임금이 돈에게 이르기를,
"네가 내 마음을 잘 안다. 내가 네 말을 듣고서 내 계책을 결정하였다. 대자암(大慈庵)도 역시 산이니 행호로 하여금 서울 안에 있지 말고 대자암에 있게 하여, 여름 달을 지내고 서늘한 때를 타서 산으로 돌아가게 함이 가하지 않겠는가. 내가 마땅히 이와 같이 처치하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7책 85권 16장 A면【국편영인본】 4책 206면
- 【분류】사상-불교(佛敎) / 왕실-종친(宗親)
○戊戌/上謂都承旨金墩曰: "予心, 爾旣知之矣。 孝寧大君久患沈痾, 今雖小愈, 一動身心, 病必復作。 予於前冬, 自東郊過大君, 夜半氣暫違和, 必是見我動身之所致也。 然心懷敬予, 不令予知之, 予因人乃知。 後又會宗親于思政殿, 予見大君, 辭氣和平, 午後眩暈, 肩輿還家, 亦是動身之致然也。 予憫兄老且病, 令不赴朝列, 須見我之時, 亦須日晏。 自東郊相過之日, 老兄請予曰: ‘僧行乎隱居山中, 臣煩上請來, 今已累月矣。 欲造袈裟禪棒佛子水精念珠等法物以贈之, 但以財力不敷爲恨耳。’ 予意以爲老兄病中之請, 不可不聽也。 水精念珠, 功費頗多, 令尙衣院造銀念珠, 所費不過二十兩。 幷造禪棒佛子及袈裟材, 送于老兄耳, 不是以金飾也。 成均館生上書謂予賜之, 眞虛語也。 予使人問於大君, 亦無金飾也。 集賢殿儒生之言, 雖不至於館生之造飾, 亦未免浮華之語。 臺諫亦上書言之, 予亦已許行乎還山矣。 然大君近來頗好佛, 病中夢見佛, 請云: ‘我病若可愈, 則擧臂以示之, 若不永痊, 則請不擧臂。’ 於是佛擧一臂以示之, 自是病乃漸瘳, 酷愛行乎, 以爲眞佛, 且致敬禮。 近因儒生上疏, 使人問於大君曰: ‘欲令行乎還山, 何如?’ 大君答云: ‘不得已則可令還山。’ 今聞大君以爲: ‘老僧穩居深山, 不求聞達, 我於病中, 頗欲相見, 去年夏煩上, 令行乎觸熱到京。 今又因儒生之斥, 炎熱方熾, 促令還山, 老僧在途, 慮生疾病。’ 老兄深以爲憂, 予恐老兄心勞而疾復作也。 然予已許臺諫曰: ‘將令行乎還山矣。’ 今若留之, 則臺諫謂予何? 欲以紗羅紵布遺大君, 令大君贈行乎以送之, 以慰老兄之心, 何如? 爾亦儒者也, 必不好佛。 然非他在外儒者之比, 已知予心, 行乎到京, 今已久矣, 予一不相見, 予豈好佛也哉? 爾更商確以啓。" 墩對曰: "大君之心旣如此矣, 不可不慰 殿下雖許行乎以還山, 今未定發程之日, 姑留夏月, 以待秋涼, 發還舊山可矣。 若永留不還, 則是失信於臺諫也。 如給衣服之材, 在聖上所裁耳。" 上謂墩曰: "爾能知予心矣。 予聞爾言, 予計決矣。 大慈庵, 亦是山也。 使行乎不在京中, 而在大慈以過夏月, 乘涼還山, 無乃可乎? 予當如此處置耳。"
- 【태백산사고본】 27책 85권 16장 A면【국편영인본】 4책 206면
- 【분류】사상-불교(佛敎) / 왕실-종친(宗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