흥천사·흥덕사의 일은 두 절에 추문할 교지를 받들어 처리하게 하고, 이졸이 절문 안에 들어가는 것을 금하다
사간원 좌정언 이예장(李禮長)이 아뢰기를,
"어제 전교하기를, ‘승도(僧徒)가 절에 있으면서 송경(誦經)하였을 따름이요 불사를 함이 아니었다. 효령이 왕래함이 무엇이 의리상 해로우냐, 하물며, 효령이 종실의 어른[長]으로서 비록 사사(寺社)에 왕래한들 내 어찌 강제로 제지할 수 있겠느냐. ’고 하였는데, 신 등이 그윽이 듣건대, 승도들의 흥천사에 모임이 단지 송경함만이 아니옵고, 크게 안거회(安居會)를 베풀어 곡식을 허비하였습니다. 효령이 이를 위하여 주장하매, 중외 신민(中外臣民)이 소문을 듣고 다투어 달려가서 부자는 기꺼이 재물을 기울이고, 가난한 자는 애써서 따라가옵니다. 하물며 이제 해마다 흉년이 들어 백성들은 얻어먹기가 어려우매, 만약 부자에게 권하여 재물을 나누게 하면, 가히 어려운 백성들을 구제할 수가 있겠사오나, 유용한 재물을 무익한 일에 허비(虛費)함을 신 등은 매우 애통히 여깁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효령이 흥천사에 한 섬의 곡식도 내지 않았거늘, 어찌 주장한다고 할 것이냐. 그리고 승도도 역시 나의 백성인지라, 이미 나의 백성이 되었으면 만일 그 중에 굶주리는 자가 있다면 국가가 어찌 모른 척하고 구원하지 않겠느냐. 민중이 다투어 서로 공양(供養)하는 것을 나는 해로울 것이 없다고 생각한다. 하물며 흥천사는 조종(祖宗)께서 창건(創建)하신 절이므로, 내가 유심(留心)한 바였다. 이 절에 사는 자들을 내 이미 진념(軫念)하던 터인즉, 나라 사람들의 공양함이 진실로 마땅하다."
하였다. 예장이 다시 아뢰기를,
"효령이 종친의 어른으로서 앞장서서 불사(佛事)를 숭상하옵는데, 주상께옵서 금지하지 않으시면 나라 사람들이 숭상하여 믿는 것을 어찌 금할 수 있으며, 또 승도가 비록 우리 나라 백성이기는 하오나, 실상은 모두 놀고 먹는 무리로서 국가에 무익한 자들입니다. 놀고 먹는 자들을 공양하는 물건으로써 궁핍(窮乏)한 자들을 진휼하게 되오면, 백성의 재물을 가지고 무익한 일에 허비하는 것보다 낫지 아니하겠습니까. 마땅히 엄격히 금지하시기를 비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효령이 흥천사에서 일찍이 불사(佛事)를 행한 일이 없었는데, 너희들이 효령이 주장한다고 말하니 불가하지 않으냐. 근거 없는 말로 나에게 와서 간하는 것을 나는 그르다고 여긴다. 그러나 다만 그 간하는 성의를 아름답게 여기어, 비록 재삼(再三)에 이르러도 오히려 또 너그럽게 용납한다. 대저 신하가 임금에게 말할 때에는 반드시 자세히 듣고 익히 살핀 다음에 와서 간할 것이지, 근거 없는 말로 끌어 붙여서 강청(强請)하는 것은 부당하니, 다시는 그 말을 하지 말라."
하였다. 때마침 사헌부에서, 흥천사에서 안거회(安居會)를 베푼다는 말을 듣고, 승도(僧徒) 40여 인을 잡아다가 그 사유를 국문(鞫問)한다는 말을 임금님이 듣고, 지평(持平) 정효강(鄭孝康)을 불러 이르기를,
"너희들이 효령 대군이 흥천사에서 안거회를 베푼다고 함을 듣고 사간원과 더불어 파하게 하기를 청하다가, 마음대로 파회(罷會)를 시키고자 하여 승인(僧人)을 억지로 잡아다가 국문하는 것은 무슨 짓이냐."
하니, 효강(孝康)이 아뢰기를,
"신 등은 흥천사에서 크게 안거회를 베푼다고 함을 들었삽고, 누가 주장하는지를 알지 못하옵기로, 그 사연을 물어 보고자 하여 중들을 잡아왔을 뿐이옵니다. 어찌 감히 저희들의 마음대로 그 회를 파하려 함이었겠습니까. 만일 효령이 주장한다고 들었으면 직접 효령을 탄핵할 것이지, 어찌 중들을 잡아왔겠습니까."
하였다. 임금이 이르기를,
"앞서 말한 것은 나의 억측[臆料]이거니와, 이제 너희들의 말을 듣고 보니 그 실상을 알겠다. 그러나 중들이 절에서 살면서 아니 먹을 수는 없은즉, 사람들이 중을 공양하는 것을 어찌 통금(通禁)할 수가 있겠느냐. 모름지기 속히 풀어놓아 보내도록 하라."
하니, 효강이 다시 아뢰기를,
"서울 안에서 행하는 불사를 이제 만약 금하지 아니하면 외방의 중들이 구름 모이듯하여, 평등·무차·안거·송경(平等無遮安居誦經) 등 갖가지 이름으로 다투어 모이어서 절마다 그러하지 않은 곳이 없을 것인즉, 어찌 능히 금하겠습니까. 청하건대, 금일의 회를 파하게 하여 타일(他日)의 폐단을 막게 하소서."
하매, 임금이 말하기를,
"흥천사는 다른 절에 비할 바가 아니다. 곧 나의 조종(祖宗)께서 처음 세우시고 수호하시던 절이다. 하물며, 오늘날의 회는 중들을 크게 모아서 안거회를 행하는 것이 아니었으니, 내 어찌 강제로 중지시키게 하겠느냐. 또 중들도 역시 사람인데, 어찌 먹지 않고 살아 가겠느냐."
하고, 인하여 승정원(承政院)에 전지하기를,
"흥천사·흥덕사 두 절에 부녀(婦女)와 유생(儒生)들의 유람(遊覽)하는 것과 모든 국법에 어그러지는 일들은, 일찍이 사헌부로 하여금 조사해서 금단하게 하였다. 이제부터는 두 절에 관한 고핵(考劾)과 승인(僧人)을 국문할 일은 마음대로 함부로 하지 못하게 하라."
하니, 좌부승지(左副承旨) 허후(許詡)가 아뢰기를,
"국가의 법은 비록 종친 대신이라도 만약에 범죄함이 있으면, 취지한 뒤에 탄핵하는 일이 일찍이 없었사온데, 이제 이 법을 새로 세운다면 사람들이 장차 어떻다고 하겠사옵니까. 또 중들은 본래 국법을 알지 못하는 자로서 헌부(憲府)가 비록 임의로 규찰(糾察)할지라도 오히려 방헌(邦憲)을 범하는 자가 있을 것이옵니다. 이제 헌부로 하여금 자유로이 함을 얻지 못하게 하면, 중들의 범법하는 자가 반드시 많아져서 제어하기 어렵게 될 것입니다. 청하건대, 그전대로 시행토록 하시고, 만약에 고신(考訊)해야만 할 것은 취지하게 함이 합당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네가 아뢰는 바를 내 알지 못함이 아니다. 그러나 이 절은 조종께서 소중히 하시던 바였으므로 소홀히 할 수 없다. 더욱이 궐내(闕內)에서 모든 직무[諸務]를 맡은 자는 반드시 위에 아뢴 뒤에야 추문(推問)하는 것인즉, 이 절의 중이 오히려 궐내의 사람만 같지 못하겠느냐."
하고, 드디어 사헌부와 사간원에 전지하기를,
"이 뒤에는 흥천사·흥덕사 두 절에 만일 추문할 일이 있거든, 즉시 위에 아뢰어 교지를 받게 하고, 이졸(吏卒)로 하여금 바로 절문 안에 들어가지 못하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7책 85권 3장 A면【국편영인본】 4책 200면
- 【분류】사상-불교(佛敎) / 왕실-종친(宗親) / 정론-정론(政論)
○(己酉)〔己丑〕 /司諫院左正言李禮長啓: "昨日傳敎曰: "僧徒住寺, 誦經而已, 非爲佛事也。 孝寧之往來何害於義? 矧孝寧以宗室之長, 雖往來於寺社, 吾何强止?" 臣等竊聞僧徒之會於興天, 非但誦經, 大設安居之會, 糜費穀粟。 孝寧爲之主張, 中外臣庶聞風競趨, 富者傾財而樂爲, 貧者勉從。 況今連年飢饉, 民尙艱食, 若勸分富者之財, 則可賑窮民矣。 今以有用之財, 妄費於無益之用, 臣等深切痛之。"
上曰: "孝寧於興天, 未嘗有一石之費, 豈爲之主張哉? 然僧徒亦吾民也。 旣爲吾民, 而若有飢者, 則國家豈肯恝然不救哉? 民庶之爭相供養, 予謂無傷也。 況興天, 祖宗創造之寺, 予所留心者也? 住於此寺者, 予旣軫念, 則國人供養, 固其宜矣。" 禮長更啓曰: "孝寧以宗親之長, 首崇佛事, 而上不之禁, 則國人崇信, 何以禁諸? 且僧徒雖是我國之民, 實皆遊手之徒, 無益於國家者也。 以供養遊手之物, 賑恤窮乏, 則不有愈於虛費民財者, 乞宜痛禁。" 上曰: "孝寧於興天, 未嘗有佛事也, 而爾等以孝寧爲主張, 無乃不可乎? 以無稽之言來諫, 予以爲非, 但嘉其來諫之意, 雖至再三, 而尙且優容。 大抵人臣言於君上, 必詳聞熟察, 然後可以來諫, 不當以無稽之言, 牽合而强請也。 其勿復言。" 時司憲府聞興天設安居會, 拘執僧徒四十餘人, 鞫問其由, 上聞之, 召持平鄭孝康謂曰: "爾等聞孝寧大君於興天寺設安居, 與司諫院請罷之, 擅欲罷會, 勒令拘執僧人鞫之, 何耶?" 孝康啓曰: "臣等聞興天寺大設安居之會, 不知誰爲之主張, 欲問其由, 拘致僧徒耳, 豈敢擅欲罷會而然也? 若聞孝寧爲之主張, 則直劾孝寧, 何必拘致僧徒哉?" 上曰: "前言乃臆料耳。 今聞爾等之言, 得知其實。 然僧徒住寺而不可無食, 則人之齋僧, 何以痛禁? 須速釋之。" 孝康更啓曰: "京中佛事, 今若不禁, 則外方僧徒雲集競會, 平等無遮安居誦經等會, 無寺不然矣, 何以能禁? 請罷今日之會, 以杜他日之弊。" 上曰: "興天非他寺比也, 乃我祖宗創修之寺也。 況今日之會, 非大集緇流, 設爲安居也, 吾何强止之哉? 且僧徒亦人耳, 何以不食而生爲?" 仍傳旨承政院曰:
興天、興德兩寺婦女儒生遊覽及凡所非違之事, 曾令司憲府考劾禁斷。 自今凡干兩寺考覈及僧人鞫問, 一皆取旨, 毋得擅便。
左副承旨許詡啓曰: "國家之法, 雖宗親大臣, 若有所犯, 未嘗先取旨而後劾之。 今立此法, 則人將以爲何如? 且僧徒, 本不知法者。 憲府雖任意糾察, 尙有干邦憲者。 今使憲府不得自專, 則僧徒之犯法者必多, 難以制矣, 請依舊施行。 若當考訊, 則取旨爲便。" 上曰: "爾之所啓, 予非不知, 然此寺, 祖宗所重, 不可忽也。 況闕內供諸務者, 必須啓達, 然後推問, 則此寺之僧, 尙不如闕內人乎?" 遂傳旨司憲府司諫院曰:
今後興天、興德二寺, 如有推問之事, 隨卽啓達取旨, 毋得使吏卒直入寺門。
- 【태백산사고본】 27책 85권 3장 A면【국편영인본】 4책 200면
- 【분류】사상-불교(佛敎) / 왕실-종친(宗親) / 정론-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