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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84권, 세종 21년 윤2월 2일 경진 3번째기사 1439년 명 정통(正統) 4년

통례문 봉례랑인 매우가 일향의 적을 내려주기를 상언하다

통례문 봉례랑(奉禮郞)인 매우(梅佑)가 상언(上言)하기를,

"신의 아비 원저(原渚)는 일찍 죽은데다 또 집에는 문적(文籍)이 없사와 할아버지 군서(君瑞)중국에서 나온 근본 이유는 자세히 알지 못하오나, 신의 할아버지가 처음에 고려 때에 벼슬하여 관직이 행성제공(行省提控)에 이르렀고, 신의 아비도 또한 우리 태종 때에 벼슬하여 편벽되게 성은(聖恩)을 입사와 관직이 가선 의주 목사(嘉善義州牧使)에 이르렀습니다. 신도 또한 성은을 입사와 이름이 사판(仕版)에 있사오니 할아버지 때부터 신에 이르기까지 이제는 이미 3대에 이르렀으나, 본관(本貫)은 아직도 중국이라 칭하오니 심히 민망하게 여기옵니다. 엎드려 바라옵건대, 일향(一鄕)의 적(籍)을 내려 주시어 외로운 신하의 소원을 이루게 하옵소서."

하매, 이조에 내렸는데, 이조에서 아뢰기를,

"예전 제왕들은 다른 지방의 풍속이 다른 사람들이 우러러 사모하고 오면, 혹 성(姓)을 내려 주고 혹 씨(氏)를 내려 주어 회유하는 뜻을 보였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도 고려(高麗) 때에 판삼사사(判三司事) 설장수(偰長壽)의 애비 손(遜)원나라에서 나왔는데, 관향을 경주(慶州)로 주었고, 상산군(尙山君) 이민도(李敏道)도 또한 원나라에서 나왔사온데, 우리 태종 때에 이르러 관향을 경주로 주었습니다. 이제 매우(梅佑)의 할아버지 군서(君瑞)가 처음으로 왔고, 아비 원저(原渚)도 청렴하고 근신한 것으로 벼슬하여 관직이 목사에 이르렀으며, 매우에 이르기까지 양대가 본국에 복무하였사오니, 청하옵건대, 그전 예(例)에 의하여 관향을 하사하게 하옵소서."

하니, 충주(忠州)로 관향을 내려 주었다.


  • 【태백산사고본】 27책 84권 21장 B면【국편영인본】 4책 189면
  • 【분류】
    역사-고사(故事) / 왕실-사급(賜給) / 가족-성명(姓名)

○初, 通禮門奉禮郞梅佑上言曰:

臣父原渚早歿, 且家無文籍, 大父君瑞中原出來根由, 未得詳知。 然臣大父始仕高麗, 官至行省提控, 臣父亦仕我太宗朝, 偏蒙聖恩, 官至嘉善、義州牧使, 臣又蒙聖恩, 名在仕版。 自大父至臣, 今已三世矣, 而本貫則尙稱中原, 深以爲悶。 伏望賜籍一鄕, 以遂孤臣之願。

下吏曹。 吏曹啓曰: "古昔帝王, 殊方異俗之人, 仰慕而來, 或賜姓, 或賜氏, 以示懷綏之義。 在我東方, 高麗之時, 判三司事偰長壽之父, 自朝出來, 賜鄕慶州; 尙山君 李敏道亦自出來, 及我太宗, 賜鄕慶州。 今梅佑之祖君瑞始來, 而父原渚廉謹從仕, 官至牧使, 至于梅佑二代, 服勤本朝, 請依舊例賜鄕。"

從之, 遂賜鄕忠州


  • 【태백산사고본】 27책 84권 21장 B면【국편영인본】 4책 189면
  • 【분류】
    역사-고사(故事) / 왕실-사급(賜給) / 가족-성명(姓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