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희롱한 생원 최한경에게 장형 80을 시행하게 하다
당초에 성균관(成均館) 문묘(文廟)에 전알(奠謁)하기 위하여 치재(致齋)하던 날에, 생원(生員) 최한경(崔漢卿)과 정신석(鄭臣碩)이 반수(泮水)에서 목욕하던 중, 한 앳된 부인이 편복 차림으로 여종 둘을 거느리고 도보로 반수의 길을 건너는 것을, 한경이 홀랑벗은 채 갑자기 뛰어나가 앳된 부인을 쓸어 잡고 희롱하며 욕을 보이었다. 부인이 완강히 항거하고, 그의 계집종이
"우리집 안주인이예요."
하고 크게 부르짖는 것을, 신석이 두 여종을 때려서 쫓아버리고는, 한경을 도와 힘으로 여자를 억눌렀었다. 뒤이어 부인의 입자[笠]을 빼앗아서 재실[齋]로 돌아왔었다. 두 계집종이 집으로 달려가 이 사실을 고하여 그집에서 사내종을 시켜 와서 본즉, 부인은 이미 풀려 나왔으나, 그 썼던 입자를 잃어버렸었다. 또 밤도 이미 깊었고 한경도 또한 벌써 가버렸었다. 그 사내종이 즉시 성균관직숙관(直宿官)036) 에게 고하기를,
"나는 홍여강(洪汝康)의 종입니다. 아직 출가하지 않은 여주인이 미복(微服) 차림으로 피병(避病)하여 어린 계집종을 거느리고서, 장차 그 대모댁(大母宅)으로 가려고 반수를 지나가다가, 불의의 두 유생에게 침핍(侵逼)을 당해서 옷을 벗기우고 강제로 욕을 당하였습니다. 어리석고 나이 어린 계집종들은 유생에게 두들겨 맞고 쫓겨서 집으로 달려와 이 사실을 고하였습니다. 그런 까닭으로 달려왔으나 미처 보지는 못하였습니다. 또 유생이 입자를 빼앗아 왔으니, 이를 찾아서 돌려주기를 바랍니다."
고 하였다. 정록(正錄)이 즉시 이를 재생(齋生)에게 물은즉, 한경·신석 두 사람이 함께 자복하기를,
"우리들은 다만 희롱만 했을 뿐입니다."
하는지라, 직숙관이 홍여강의 집 종을 불러서 다시 물으니, 대답하기를,
"다만 겁 주려고 한 말입니다. 사실은 여주인이 아니고 주인의 유모(乳母)의 딸입니다."
고 하는 것이었다. 정록 한 사람이 거짓 아는 척하고 말하기를,
"네 주인의 유모는 본래 딸이 없는데 어찌하여 이런 소릴 하느냐."
고 하니, 그 종은 다시 말을 바꾸어 말하기를,
"아닙니다. 바로 주인의 ‘비첩(婢妾)’입니다. ‘비첩’이란 소리가 싫어서 숨긴 것입니다."
고 하는 것이었다. 직숙관은 그 말이 세 번이나 변한 데에 의아해서 다시 묻기를,
"첩과 두 어린 계집종이 다 있느냐. 장차 대질시켜 물어 보려 하는데, 네가 불러 올 수 있겠느냐."
하니, 종이 말하기를,
"오늘 아침에 일이 있어서 모두 문밖으로 나갔으므로 지금은 집에 없습니다."
하여, 직숙관은 더욱 이를 의심하였었다. 이때에 이르러 이름이 여강의 아들인 우명(友明)의 첩 소앙(召央)이란 자가 사헌부에 고소하였는데, 처음에는 강간 미수(强奸未遂)라고 했다가, 나중에는 단지 희롱당했을 뿐이라고 하여, 당시 사람들이 이를 자못 의심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그 일이 사대부 집과 관련된 것이여서 아무도 감히 말하는 자가 없었는데, 이에 이르러 헌부에서 아뢰기를,
"우명의 사노(私奴) 원만(元萬)이가 처음에는 여주인이라 일컫다가, 다음에는 유모의 딸이라고 일컬었고, 그 다음에는 비첩이라 일컬었습니다. 말을 세 번 뒤바꾸어서 사람들의 귀를 혹란(惑亂)시켰습니다. 신석은 자신이 제향의 집사(執事)가 되어서 부인의 입자를 빼앗고 희롱하였으니 그 죄는 마땅히 태형[笞] 40대를 시행해야 하오며, 한경의 소앙을 강간하고자 하여 침핍(侵逼)한 죄는 장(杖) 80대에 해당하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들리는 바로는 단지 이에만 이르지는 않았다고 한다. 다시 진상을 조사하여 아뢰도록 하라."
하였다. 헌부에서 아뢰기를,
"이번 사건은 순전히 고소한 사람의 말로써 결단할 수밖에 없으므로, 거듭거듭 조사하고 추궁하여도 소앙의 말이 종시 이와 같아서 다시 그 이상의 죄상을 규핵(糾劾)할 수가 없습니다."
하니, 명하여 한경에게 장형 80대를 시행하도록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6책 82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4책 158면
- 【분류】사법-행형(行刑) / 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
- [註 036]직숙관(直宿官) : 숙직하는 관원.
○初, 成均館 文廟奠謁致齋之日, 生員崔漢卿、鄭臣碩浴於泮水, 有一幼婦便服率二婢, 步過泮水路, 漢卿不衣冠, 率然出搏幼婦以戲辱, 婦堅拒, 其女奴大叫曰: "我女主也。" 臣碩歐逐二婢, 乃助漢卿力制之, 仍奪婦笠, 歸于齋。 二女奴奔告其家, 其家使奴來視, 則婦已解而失其所着之笠。 又夜已深, 漢卿亦去矣。 奴卽告于館直宿官曰: "我, 洪汝康奴也。 未嫁女主微服避病, 率小婢將歸大母宅, 經由泮水, 不意爲二儒所侵逼, 脫裳强辱, 愚幼婢子爲儒所歐逐, 奔告于家, 故來而未及見也。 且儒生奪笠而來, 請推還之。" 正錄卽問齋生, 漢卿、臣碩二人, 俱自服曰: "我等但戲弄而已。" 官招洪汝康家奴問之, 答曰: "只欲恐之而已, 實非女主, 乃主之乳母女子也。" 正錄一人紿曰: "汝主乳母, 本無女子, 何爲是言乎?" 奴變曰: "非也, 乃主之婢妾也。 惡其聲而諱之耳。" 官疑其說之三變, 乃問曰: "妾與二小婢, 俱在乎? 將欲質問, 汝可招來。" 奴曰: "今朝因事皆出門外, 今不在家。" 官益疑之。 於是名爲汝康子友明妾召央者告憲府, 初以强奸未成, 後言但戲弄而已, 時人頗疑。 然事干縉紳之家, 無敢言者。 至是憲府啓曰: "友明奴元萬, 初稱女主, 次稱乳母女, 次稱婢妾, 三變其說, 惑亂人聽。 鄭臣碩身爲祭執事, 奪婦人笠以戲之, 罪當笞四十, 崔漢卿欲奸召央侵逼之, 罪杖八十。" 上曰: "所聞不至於此, 更劾以啓。" 憲府啓曰: "此事, 專以告者之言決之耳。 反覆覈之, 而召央之言如是, 不可更劾。" 命杖漢卿八十。
- 【태백산사고본】 26책 82권 13장 B면【국편영인본】 4책 158면
- 【분류】사법-행형(行刑) / 윤리-사회기강(社會紀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