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발의 아들 이윤을 흥안군 이제의 후사로 삼게 하다
상참을 받고 경연에 나아갔다. 임금이 이르기를,
"흥안군(興安君) 이제(李濟)는 태조 때의 개국 원훈(開國元勳)으로서 후일에 비록 죄를 받았으나, 내가 일찍이 태종의 말씀을 직접 들었는데, ‘개국할 때에 이제의 공로가 컸으므로 그후 태조의 묘정(廟庭)에 배향할 사람을 의논할 때에, 내가 여러 의논을 물리치고 드디어 결정하였다.’ 하셨다. 불행하게 아들이 없어 공신(功臣)의 노비를 일찍이 나라에 이속시켰고, 흥안군과 공주의 제사마저 받들 사람이 없으니 매우 슬픈 일이다. 지금은 양자하는 법이 있은즉, 이것은 국가에서 특명으로 주장하여야 할 일이므로, 지금 이제의 아우 이발(李發)의 아들 이윤(李閏)을 〈흥안군의〉 후사로 삼고자 하는데, 그 가재(家財)와 노비[臧獲]는 이미 다른 사람에게 넘겨 졌으니 되돌릴 수 없으매, 본래 정한 공신전과 노비의 수효에 준하여 특히 전토 1백 60결과 노비 아울러 20명을 주고, 적장(嫡長)의 예에 따라 사당을 세워서 제사를 주장하도록 하며, 인하여 충의위(忠義衛)에 붙이는 것이 어떠한가, 정부와 예조에서 같이 논의하여 아뢰라."
하니, 모두가 말하기를,
"지당합니다."
하므로,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25책 80권 29장 A면【국편영인본】 4책 135면
- 【분류】인물(人物) / 인사-관리(管理) / 가족-가족(家族)
○己亥/受常參, 御經筵。 上曰: "興安君 李濟, 太祖開國元勳。 後雖獲罪, 予嘗親聞太宗之敎曰: ‘開國之時, 李濟之功爲大。’ 故後議配享之際, 予排群議而遂定, 不幸無嗣, 其功臣奴婢, 已曾屬公。 興安君及公主, 皆無奉祀之人, 甚可哀也。 今旣有立後之法, 則此正國家特命主之者也。 今欲以李濟之弟李發之子李閏爲後, 其家財、臧獲, 已爲他人所傳, 不可追還。 今準元定功臣田奴婢之數, 特給田一百七十, 給奴婢幷二十口, 依嫡長例, 立廟主祀, 仍屬忠義衛何如? 惟爾政府禮曹同議以啓。" 僉曰: "允當。" 從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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