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국 지도에 유의손의 지문을 적어 바치다
예조에서 일본국 지도(地圖)를 바치었다. 당초에 검교 참찬(檢校參贊) 박돈지(朴敦之)가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가 지도를 구해 가지고 돌아온 후에, 그 지도 끝에다 지문(誌文)을 적어서 예조 판서 허조에게 주므로, 조(稠)가 드디어 공인을 시켜 장황(粧䌙)하여 바쳤던 것인데, 이때에 와서 예조에 명하여 그 지도를 본떠서 바치도록 하고, 인하여 응교 유의손(柳義孫)에게 지문을 쓰도록 명하였다. 박돈지의 지문은,
"건문(建文) 3년 봄에 내가 일본에 사신으로 갔다가 비주수(肥州守) 원상조(源詳助)라는 사람이 그 나라의 명사라는 것을 듣고, 가서 보고 싶은 뜻이 있었는데, 원이 먼저 와서 보기를 요청하고 위로하기를 매우 후하게 하는 것이었다. 내가 인하여 그 나라의 지도를 보여주기를 청했더니, 원이 이 지도를 내어 주었는데, 상세하게 갖추어져서 완연한 한 지경의 방여도(方輿圖)였으나 오직 일기도(一岐島)와 대마도 두 섬이 빠졌으므로 이제 보충하여 거듭 모사(模寫)하였다."
고 하였고, 유의손의 지문은,
"일본 씨족이 바다 가운데에 나라를 세웠으나, 우리 나라와는 거리가 동떨어져서 그 나라 강역(疆域)의 자세한 것은 능히 알 수 없었다. 건문(建文) 3년 봄에 검교 참찬의정부사 신박돈지(朴敦之)가 그 나라에 사신으로 가서 그 나라 지도를 보기를 원하니, 비주수 원상조가 제집에 갈무리하였던 지도 한 벌을 내어 보였으나, 유독 대마와 일기 두 섬이 빠졌으므로, 돈지는 곧 보충하도록 한 다음 모사해 가지고 돌아왔다. 그후 영락 18년 경자에 예조 판서로 있었던 지금의 판중추원사 허조에게 기증(寄贈)하니, 허조는 이 지도를 보고 고맙게 여기고, 다음 해 신축년에 드디어 공인을 시켜 장황하여 바쳤는데, 그 그림이 세밀하여서 알아보기가 쉽지 않으므로 선덕 10년 여름 5월에 임금이 예조에 명하여 도화원(圖畫院)에서 고쳐 모사하도록 하고, 이어서 신에게 그 도본 밑에다 지문을 쓰도록 명하셨다. 신은 그윽이 생각하건대, 천하에 지도란 것은 역대로 중하게 여기던 것인데, 하물며 이웃 나라의 형세이리오. 지금 이 도본을 상고하니 비록 엉성한 듯하나, 안으로 나라와 고을, 밖으로는 여러 섬을 포치해 놓은 규모와 구역을 대개가 한 폭의 그림 사이에 요연하여, 직접 발로 밟고 눈으로 보기를 기다리지 않고도 다 상고할 수 있으니, 여기에서도 오늘날 왕화(王化)가 미치는 곳은 외방이 없다는 것을 볼 수 있는 바, 이것을 간수하여 영원한 세대까지 전하는 것이 마땅하다."
고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5책 80권 21장 A면【국편영인본】 4책 131면
- 【분류】과학-지학(地學) / 외교-왜(倭)
○禮曹進《日本圖》。 初, 檢校參贊朴敦之奉使日本, 求得地圖而還, 仍誌其圖下, 以贈禮曹判書許稠, 稠遂倩工粧䌙以進。 至是, 上命禮曹, 改模以進, 仍命應敎柳義孫誌之。 敦之誌曰:
建文三年春, 予奉使日本, 聞備州守源詳助, 國之名士, 有往見之志, 源先來請見, 勞慰甚厚。 予因請看其國地圖, 源出而與之, 圖頗詳備, 宛然一境之方輿, 唯一歧、對馬兩島闕焉, 今補之而重模云。
義孫志曰:
日本氏國于海中, 距我邦遼絶, 而其疆理之詳, 莫之能究。 建文三年春, 檢校參贊議政府事臣朴敦之奉使是國, 求見其地圖, 而備州守源詳助出視家藏一本, 獨對馬、一歧兩島闕焉, 敦之卽令補之, 模寫而還。 永樂十八年庚子, 持贈于禮曹判書今判中樞院事許稠, 稠見而幸之, 越明年辛丑, 遂倩工粧䌙以進。 第其爲圖細密, 未易觀覽。 宣德十年夏五月, 上命禮曹, 令圖畫院改模, 仍命臣誌其圖下。 臣竊惟天下圖籍, 固歷代之所重, 況隣國形勢乎? 今按此圖, 雖若疎闊, 然內而國邑, 外而諸島, 布置之規模、區域之大略, 暸然於一幅之間, 不待足履目覩而可考也, 于以見方今王化之無外也。 是宜藏之, 以傳永世云。
- 【태백산사고본】 25책 80권 21장 A면【국편영인본】 4책 131면
- 【분류】과학-지학(地學) / 외교-왜(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