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와 육조 판서에게 전폐와 미포를 사용할 방책을 논의하게 하다
정부와 육조 판서, 좌의정으로 치사(致仕)한 맹사성(孟思誠)을 불러들여 전폐(錢幣)와 미포(米布)를 사용할 방책(方策)을 논의하게 하니, 조계생(趙啓生)·최사강(崔士康)이 의논하기를,
"동전은 쓰지 말고 철전(鐵錢)만 쓰면서 미포도 겸용할 것입니다."
하고, 심도원(沈道源)은 의논하기를,
"미포나 동전이나 백성들이 원하는 바를 따를 것입니다."
하고, 맹사성·성억(成抑)·정연(鄭淵)·황보인(皇甫仁)은 의논하기를,
"동전도 오히려 쓰기를 좋아하지 않았는데, 하물며 쇠돈이겠습니까. 저화(楮貨)는 더구나 시행하기가 어려울 듯하니, 마땅히 민심에 순응하여 다시 닷세 베[五綜布]를 쓰도록 하소서. 어떤 이는 말하기를, ‘닷세 베를 쓰도록 한다면 이권(利權)이 하민(下民)에 있게 된다. ’고 하오나, 기타의 명주[絲紬]나 정포도 모두 민간에서 나오는 것인데, 유독 닷세 베만 이권이 하민에게 된다고 함은 아마 옳지 못할 것입니다."
하고, 하연은 말하기를,
"이 앞서 돈을 사용하자는 논의를 할 때에 신도 참여하였고, 그때에 논의한 모든 신하들이 모두 영구히 좋은 계책이라 하였는데, 어찌 오늘날에 이런 폐단이 있을 줄 알았겠습니까. 지금 비록 쇠돈을 부어 만든다 하더라도 반드시 이용하기를 좋아하지 않을 것이며, 지난 일이 벌써 그러한데 장래에 있을 폐단을 어찌 의심하지 않겠습니까. 마땅히 예전의 습속을 따라 다시 닷세 베를 사용하게 하소서."
하고, 허조(許稠)·안순(安純)·신개(申槪)·이맹균(李孟畇)은 의논하기를,
"돈[錢貨]이란 것은 국가의 보배이온데, 구리와 쇠는 본국에 산출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라의 쓰임에는 한이 없는데, 동전을 쓰게 되면 반드시 잇대기가 어려울 것이며, 무쇠는 본국에서 생산되는 것이니 쇠돈을 쓰는 것이 마땅하겠습니다."
하였다. 또 승정원에서도 논의했는데, 신인손은 말하기를,
"쇠돈이나 저화는 고쳐 만드는 번거로움과 백성을 수고롭게 하는 폐단이 있으나, 닷세 베를 쓰면 한 사람의 노역도 한 되의 곡식도 허비하지 않을 터이니, 장차 집마다 넉넉하고 사람마다 풍족하게 될 것이며, 만년을 지나더라도 다시 고쳐야 할 폐단이 없습니다."
하고, 이견기(李堅基)·김돈(金墩)·이계주(李季疇)·성염조(成念祖)는 말하기를,
"우리 동방이 중국과 풍속이 아주 달라서 물화가 모인 곳에 동전[錢]이나 지폐[鈔]가 모두 유통되고 있는데, 종말에 가서는 모두 폐단이 생기게 되어, 세대마다 변혁이 있었습니다. 국초에는 고려 때의 구습(舊習)으로 인하여 닷세 베를 사용하였으나 폐단을 보지 못했는데, 논의하는 자는 이권(利權)이 하민에게 있다는 것을 염려하여 저화를 쓰도록 청하였고, 또 저화는 백성들이 잘 쓰지 않을까 걱정하여 동전으로 바꾸었는데, 지금은 동전의 폐단을 염려하여 쇠돈을 쓰기로 논의하였은즉, 수십년도 되지 않는 사이에 여러 번 고쳤고 폐단도 따랐습니다. 이는 동전이나 저화나 종말에는 폐단이 있으되, 포화는 만년토록 폐단이 없음을 알 수 있는 것이니, 무쇠 그릇은 비록 가마와 솥 같은 큰 물건이라도 조금만 부서지면 달리 쓸모가 없지마는 포목은 비록 헐었다 하더라도 모두 쓸 수 있으며, 또 관청에서 감독하는 수고가 없고 백성도 즐겨서 쓰는 이익이 있습니다. 지금 쇠돈을 부어 만들려면 반드시 돈 짓는 장소를 많이 설치하여야 할 것이니, 백성을 괴롭히고 재물을 없애는 것도 또한 적지 않을 것입니다. 경중과 외방에 닷세 베를 쓰도록 허가해서 잘 유통될 때까지는 동전도 임시로 사용하게 하고, 동전 녹이는 것을 금하는 영을 조금 늦추면 동전은 저절로 없어지고 베가 점차로 흥왕하게 될 것입니다."
하고, 권채(權採)는 말하기를,
"있는 것으로 없는 것을 서로 무역하는 것은 백성이 서로 이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포백은 한 자[尺] 한 치[寸]씩 잘라서 만들 수 없고, 곡식도 한 말[斗] 한 되[升]라도 헛되게 축낼 수 없는 까닭에 선왕께서 돈을 만들어서 쓸데없는 물건으로써 쓸모 있는 물건을 융통하도록 하였으며, 형편에 따라 거두었다가 흩었다 하여 빈부를 고르게 하였으니 법을 세운 뜻이 진실로 심원(深遠)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 돈쓰는 법을 폐지하고 닷세 베만 쓰기로 하여 백성들이 하는대로 놓아두면 이권이 사방으로 흩어져서 국가에서 전연 관리할 수 없게 될 것이니, 신은 절대로 옳지 못하다고 여겨집니다. 하물며 돈쓰는 법이 시행된 지 벌써 오래였고, 백성들도 모두 습관이 되어 마음이 정해져 있는데, 또 새법으로 변경한다면 백성은 반드시 떠들썩할 것이니 쇠돈을 부어 만들어 동전에 보충해 쓰도록 할 것이며, 대장간을 크게 벌려서 백성을 번거롭게 부여시킬 필요는 없습니다. 다만 옛날 사섬서(司膽署)에서 돈 만들던 예와 같이 점차 쇠돈을 만들어서 동전과 아울러 유통하게 하고, 부세를 거두거나 속전을 거둘 때에 쇠돈을 위주로 하면 동전은 저절로 없어지고 모두 쇠돈으로 될 것이니, 이렇게 하면 법을 변경하는 번거로움이 없고 백성이 돈을 녹여서 물건을 만드는 걱정도 없어질 것입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5책 80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4책 131면
- 【분류】금융-화폐(貨幣)
○召政府及六曹判書左議政致仕孟思誠, 議用錢幣米布之策。 趙啓生、崔士康議曰: "勿用銅錢, 用鐵錢而兼用米布。" 沈道源議: "米布銅錢, 從民情願。" 孟思誠、成抑、鄭淵、皇甫仁議: "銅錢尙不樂用, 況鐵錢乎? 楮貨尤似難行, 宜順民心, 復用五綜布。 倘曰利權在下, 其餘絲紬正布, 皆出於民間, 獨以五綜布爲利權在下, 恐亦未可也。" 河演曰: "前此用錢之議, 臣亦與焉。 其時獻議諸臣, 皆以爲: ‘永世良策。’ 焉知今日有此弊乎? 今雖鑄鐵錢, 必不樂用。 旣往之事已然, 將來之弊何疑? 宜從舊俗, 復用五綜布。" 許稠、安純、申槪、李孟畇議曰: "錢貨, 國家之寶; 銅鐵, 非本國之産。 國家用度無窮, 而銅錢勢必難繼。 水鐵, 本國之産, 宜用鐵錢。" 又議于承政院, 辛引孫曰: "錢楮有更改之煩、勞民之弊, 用五綜布則國無一人之役、一升之費, 將家給人足, 歷萬歲而無更改之弊。" 李堅基、金墩、李季疇、成念祖曰: "吾東方, 與中國風俗頓異, 物貨所聚, 有錢有鈔, 皆可通行。 然皆弊生於終, 代有沿革。 國初, 因高麗之舊, 用五綜布, 未見其弊, 獻議者慮利權之在下, 而請用楮貨, 又患楮貨之民不興用, 而代以銅錢, 今又慮銅錢之弊, 而議用鐵錢, 不數十年間屢更而弊隨之, 是知錢楮之皆終有弊而布貨之萬歲無弊也。 鐵器雖如釜鼎之大物, 小有破毁, 則他無可用, 布則雖極破壞, 皆可用也。 且官無監督之勞, 民有樂用之利。 今鑄鐵錢則必廣置鼓鑄之所, 勞民傷財, 亦且不少矣。 許令中外用五綜布, 限其興行, 權用銅錢, 弛其銷鎔之禁, 則銅錢自無, 布自漸興矣。" 權採曰: "懋遷有無, 民生所資, 然布帛不可以尺寸分製, 穀粟不可以斗升糜費, 故先王制爲錢幣, 以無用之物, 通有用之物, 以權斂散, 以均貧富, 立法之意, 誠深遠矣。 今廢錢法, 用五綜布, 縱民自爲, 利權四散, 國家專無管攝, 臣竊以爲不可。 況錢法之行久矣, 民皆熟習, 心志已定, 又變新法, 民必浮動! 請鑄鐵錢, 以補銅錢之用, 不必大張治所, 煩民督役, 但如異時司贍署鑄錢之例, 漸次鑄造, 兼行銅錢, 於收稅收贖之時, 以鐵錢爲主, 則銅錢自盡, 而皆爲鐵錢, 法無變更之煩, 民無銷鑄之患。"
- 【태백산사고본】 25책 80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4책 131면
- 【분류】금융-화폐(貨幣)