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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78권, 세종 19년 9월 9일 병신 3번째기사 1437년 명 정통(正統) 2년

귀순하는 야인의 접대 문제를 의논하게 하다

예조에 전지하기를,

"홀라온은 예로부터 우리 나라와는 통하지 아니하여서 변방에서 도둑질하고 노략질했으나, 우리 나라에서는 하찮은 좀도둑으로 도외시(度外視)하고, 혹 변경을 범하게 되면 쳐서 쫓아 버려 징계나 하였을 뿐 서로 교통을 하지 않았음은 옳은 것이었다. 저들이 비록 교통하고자 하나 서로 왕래하게 하여 우리의 허실을 알게 함은 마땅한 계책이 아니겠고, 또한 역로(驛路)만 시끄럽게 하여 무엇을 한없이 달라고 하는 폐단도 없지 않을 것이므로 모두 우리 나라에 이로운 것이 아니다. 그들의 추장 도독 내요곤(乃要昆)과 도독 벌아가(伐兒哥) 등으로 하여금 각각 부하 6인씩을 보내게 해서 귀순한다는 명목으로 처음으로 와서 통호(通好)하게 하였으나, 나의 생각으로는 저들이 기미만 엿보고 항상 배신하니 신의로써 대접하기는 어렵겠다. 이번에 귀순하는 것은 그 성심 여부를 다 알 수 없으니, 가령 성심이라 하더라도 어찌 오랫동안 보전해서 변함이 없겠느냐. 또 우리 나라에서 접대한 예도가 비록 넉넉하고 두터웠다 하더라도, 대저 오랑캐의 마음은 이익을 탐내는 것이 한이 없어, 비록 열 가지를 극히 두텁게 했다 하더라도 한 가지 일만 조금 박하게 하면, 전날에 후대하던 열 가지 일은 잊어버리고 도리어 원망과 틈이 생기는 것이 오랑캐의 상정(常情)인즉, 비록 오늘날 후대했다 하더라도 또한 어찌 끝까지 그들의 마음을 한없이 감동하게 하겠느냐. 그러므로 오지 않거든 반드시 교통하지 않음이 옳을 것이요, 왔더라도 반드시 후대하지 않는 것이 옳은 것이다. 그러나 예전부터 통하지 않던 오랑캐가 처음으로 와서 성심으로 복종하였으니, 그 뜻이 가히 취할 만하고 기쁜 일이다. 비록 그 참 마음은 알지 못한다 하더라도 이름으로 귀순한다 하고 근사하게 속이게 되면, 어른으로서 작은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어찌 지나간 허물을 뒤따라 죄주고 장래의 거짓을 억측하여 박대하겠는가. 비록 뒷날에 왕래가 분주하고 졸리는 폐단이 있다 하더라도 남의 물건을 훔치고 도둑질하는 해로움과는 진실로 비교가 되니 않을 것이니, 접대하는 예도는 당연히 넉넉하고 후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느냐. 그것을 정부와 함께 의논하여 아뢰라."

하니, 이때에 여러 종류의 야인이 귀순하여 온 것이 날로 많아서 장차 접대하기 어려웠으므로 이러한 분부가 있었다. 황보인은 말하기를,

"미천한 자는 도절제사가 접대해서 돌려보내고 추장이 보낸 것은 한꺼번에 올려 보내되, 만약에 〈수효가〉 많거든 그 중에 우두머리 되는 자만 올려 보내는 것이 옳겠습니다."

하고, 권제는 말하기를,

"비록 추장이 친히 온다 하더라도 서울에 올려 보내는 수효는 10인을 넘기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하고, 최사강(崔士康)은 말하기를,

"4인을 넘기지 않는 것이 옳습니다."

하고, 황희·노한·허조·신개 등은 말하기를,

"도절제사로 하여금 그 부족(部族)의 강하고 약한 것과, 대접하기를 후하게 하겠느냐 박하게 하겠느냐를 적당하게 살펴서 마땅히 후대할 사람만 10인을 넘기지 말고 올려 보내고, 그 나머지는 도절제사가 후하게 대접하고 선물을 주어 돌려보내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의논한 말을 기록하도록 명하고, 도절제사에게 전지하기를,

"대신들의 의논이 이러하니, 비록 그들이 조회하러 오는 것도 가상하겠으나, 서울에서는 그들을 접대할 수 있겠지만 오히려 역로(驛路)가 피폐하여져 장차 감당하지 못할 것이니 염려되지 않을 수 없다. 경이 이 뜻을 알고 적당하게 계책을 정하는 것이 옳겠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5책 78권 38장 B면【국편영인본】 4책 105면
  • 【분류】
    외교-야(野)

○傳旨禮曹:

忽剌溫, 自古不通我國, 而寇掠邊疆, 我國以蕞爾醜虜, 置之度外, 苟犯邊境, 則擊而逐之, 使之懲艾而已, 不相交通可也。 彼雖欲交通, 使得往來, 識我虛實, 非策之宜。 且煩擾驛路, 誅求無厭, 不無將來之弊, 皆非我國之利。 今其酋長都督乃要昆及都督伐兒哥等各遣麾下六人, 以歸順爲名, 始來通好。 予意彼人狙詐反覆, 難以信義待之, 今之歸順, 其誠心與否, 皆不可知。 假使誠心, 安能保其久而無替乎? 且我國接待之禮, 雖從優厚, 大抵戎狄之心, 貪利無已, 雖十事極厚, 一事稍薄, 則頓忘前日十事之厚, 而反生怨隙, 此戎狄之常情, 則雖今日厚待, 亦安能終感其心於無窮乎? 故不來則不必交通可也, 來則不必厚待亦可也。 然曠古不通之夷, 始來納款, 其志可取而可喜也。 雖不知其實心, 名爲歸順, 欺以其方, 則以大字小之心, 豈可追咎旣往之愆, 逆計將來之詐而薄待乎? 雖後日有煩擾誅求之弊, 與剽竊寇盜之害, 固有間矣。 接待之禮, 當從優厚何如? 其與政府同議以啓。

時諸種野人來者日衆, 慮將難待, 故有是命。 皇甫仁曰: "微者則都節制使待之送還, 酋長所遣則竝皆上送, 若多則其中爲首者上送可也。" 權踶曰: "雖酋長親來, 送京之數, 不過十人可也。" 崔士康曰: "不過四人可也。" 黃喜盧閈許稠申槪等曰: "令都節制使審其部族强弱及待之厚薄之宜, 當厚者不過十人上送, 其餘都節制使厚接之, 贈物遣還。" 上命錄擬議之辭, 傳旨都節制使:

大臣之議如此, 雖其來朝可嘉, 然京中則猶可供給, 驛路彫弊, 將不能堪, 不可不慮。 卿知此意, 量宜畫策爲可。


  • 【태백산사고본】 25책 78권 38장 B면【국편영인본】 4책 105면
  • 【분류】
    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