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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78권, 세종 19년 7월 27일 을묘 4번째기사 1437년 명 정통(正統) 2년

평안도 도절제사 이천의 상언대로 새로이 완구를 만들게 하다

평안도 도절제사 이천(李蕆)이 상언하기를,

"대완구(大碗口)가 너무 무거워서 싣고 부리기에 어려워서 실제로 쓸모가 없고, 오직 중완구(中碗口)가 성을 공격하는 데 편리하지만, 소에게 실을 수 없으며, 소완구(小碗口)는 너무 작은 것 같습니다. 만약에 중완구와 소완구의 중간 정도쯤 되게 다시 만든다면 말에 싣는 데 편리할 것입니다. 신이 본도에서 감독해서 만들려 하오나 도내에서 철물이 없사오니, 청하건대, 유사(有司)에게 명하여 두 개만 만들어 보내 주소서."

하니, 즉시 공장(工匠)을 평양에 보내어 이를 만들게 하였다. 이효로(李孝老)로 호군(護軍)을 삼으니, 효로이천의 아들인데, 그 동생 이충로(李忠老)와 함께 죄를 지어 직첩을 빼앗기었다가, 이때에 와서 함께 돌려받았다. 인해서 에게 교유하기를,

"서울에 올라와 사은(謝恩)하지 말게 하고, 그대로 거느리고 부방(赴防)하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5책 78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4책 93면
  • 【분류】
    군사-군기(軍器) / 군사-부방(赴防) / 인사-관리(管理)

    平安道都節制使李蕆上言:

    大碗口至重, 難以駄載, 實爲無用, 唯中碗口便於攻城, 然可以牛載, 不可以馬駄, 小碗口則似小, 若量中小之間改鑄之, 可便於載馬。 臣欲於本道監鑄, 然道內無鐵物, 請命有司, 鑄送二枚。

    卽遣工于平壤, 鑄之。 以李孝老爲護軍。 孝老, 之子也。 與其弟忠老俱以罪收奪職牒, 至是竝還給, 仍諭曰: "勿令赴京謝恩, 仍率赴防。"


    • 【태백산사고본】 25책 78권 16장 B면【국편영인본】 4책 93면
    • 【분류】
      군사-군기(軍器) / 군사-부방(赴防) / 인사-관리(管理)