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실록 77권, 세종 19년 6월 27일 을유 1번째기사
1437년 명 정통(正統) 2년
세총통·피령전 등의 군기를 평안도에 보내다
평안도 절제사에게 전지하기를,
"전일에 아뢰기를, ‘정탐꾼은 비록 몸이 작은 총통(銃筒)을 지니고 있을지라도 창졸간에 쉽게 쏘지 못하니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고 하였으나, 군기감에서 만든 세총통(細銃筒)으로 시험하니 지니기와 쏘기에 모두 편리하였다. 비록 정탐꾼이 쓰기에 합당하지 못할지라도 적과 서로 마주하여 싸울 적에는 말[馬] 위에서 많이 가지고 각자가 쏘면 매우 편리하고 유익하며, 위급할 즈음에는 어린이와 여자라도 가지고 쏠 수 있기 때문에, 이제 세총통 1백 50개와 피령전(皮翎箭) 1천 개, 철전(鐵箭) 1천 5백 개를 보내니, 마땅한 대로 쓰고, 피령전은 모방하여 만드는 것이 좋겠다."
고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4책 77권 43장 A면【국편영인본】 4책 84면
- 【분류】군사-통신(通信) / 군사-군기(軍器)
○乙酉/傳旨平安道都節制使:
前啓: "體探人雖齎體小銃筒, 倉卒之間, 未易放射, 不須造作。" 然以軍器監所造細銃筒試之, 齎持放射, 竝擧便易。 雖不合於體探人之用, 對敵相戰, 馬上多齎, 各自放射, 甚爲便益。 危急之際, 雖兒童婦女, 可執以放, 故今送細銃筒一百五十、皮翎箭一千、鐵箭一千五百, 隨宜用之。 皮翎箭則可依樣作造。
- 【태백산사고본】 24책 77권 43장 A면【국편영인본】 4책 84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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