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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76권, 세종 19년 1월 12일 임인 1번째기사 1437년 명 정통(正統) 2년

각품의 과전을 차등 있게 감하다

임금이 승정원에 이르기를,

"천재와 지이(地異)의 있고 없는 것은 인력으로 할 수 없는 것이지마는, 배포 조치(配布措置)를 잘하고 못하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다할 수 있는 것이다. 내가 덕이 없는 사람으로서 큰 기업을 이어받아 능히 치평(治平)을 하지 못하여, 아래 백성들이 굶어 죽게 되었으니, 어찌할 바를 알지 못하여 장차 깊은 못에 떨어질 것만 같다. 자손이 번성하고 많은 것이 경사라고는 하지마는, 한갓 천록(天祿)을 허비하고 영선(營繕)이 또한 많아, 감응(感應)으로 부른 재앙이 있는가 생각되어 내가 심히 부끄럽다. 그 나머지 종성(宗姓)들의 과전은 갑자기 감할 수 없으므로 친아들·친손자의 과전(科田)을 감하려고 하는데, 여러 사람의 뜻은 어떠한가."

하니, 승지들이 아뢰기를,

"대군과 부마의 과전은 특별한 은전으로 주는 것이 아니라 국가에서 공도(公道)로 행하는 상전(常典)이니, 주공이 부하게 한 것처럼 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왕실의 의친(懿親)을 내려서 여러 과(科)와 같이 한다는 것은 참으로 온당치 못합니다. 만일 그렇다면, 각품의 과전을 일체 차등 있게 감하면 거의 사리에 합할 것입니다."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백관의 정1품 과전이 1백 50결인데 대군의 밭이 3백 결이니 너무 많은 것 같다. 비록 50결을 감하더라도 각품에 비교하면 오히려 백 결이 더하니, 어찌 차등이 없다고 하겠는가. 진양 대군(晉陽大君) 이유(李瑈)·안평 대군(安平大君) 이용(李瑢)·임영 대군(臨瀛大君) 이구(李璆)는 전에 받은 과전 3백 결에서 각각 50결을 감하고, 부마 연창군(延昌君) 안맹담(安孟聃)은 전에 받은 과전 2백 50결에서 역시 30결을 감하라. 금후로는 대군의 밭은 2백 50결에 지나지 말게 하고, 여러 군의 밭은 1백 80결에 그치게 하라. 이 토전(土田)을 감하는 것이 어찌 천견(天譴)에 답하고 백성의 굶주림을 구제할 수 있겠는가마는, 그러나 공경하고 두려워하기를 심하게 하매, 이렇게 하지 않을 수가 없다."

하고, 드디어 호조에 명하여 영구한 법으로 만들었다.


  • 【태백산사고본】 24책 76권 6장 B면【국편영인본】 4책 49면
  • 【분류】
    농업-전제(田制) / 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친(宗親)

○壬寅/上謂承政院曰: "災異之有無, 非人力之所致, 布置之得失, 固人爲之可盡。 予以否德, 嗣承丕緖, 不能治平, 以致下民之飢死, 罔知所措, 若將隕于深淵。 子孫蕃衍, 雖云慶事, 徒費天祿, 營繕亦多, 恐有感召之災, 予甚慙焉。 其餘宗姓科田, 未可遽減, 欲減親子親孫科田, 僉意何如?" 承旨等啓曰: "大君駙馬科田, 非特恩所與, 乃國家公行之常典, 周公之富宜矣。 以王室懿親, 下同於諸科, 誠爲未便。 若然則各品科田, 一切差減, 庶合於理。" 上曰: "百官正一品科田一百五十結, 大君之田三百結, 似乎過多。 雖減五十結, 比之各品, 猶過百結, 豈無差等乎? 晋陽大君 安平大君 臨瀛大君 , 前受科田三百結, 各減五十結; 駙馬 延昌君 安孟聃, 前受科田二百五十結, 亦減三十結。 今後大君之田, 毋過二百五十結, 諸君之田, 止一百八十結。 減此土田, 豈能答天譴而救民飢哉? 然敬畏之甚, 不可不如是也。" 遂命戶曹, 永以爲式。


  • 【태백산사고본】 24책 76권 6장 B면【국편영인본】 4책 49면
  • 【분류】
    농업-전제(田制) / 왕실-국왕(國王) / 왕실-종친(宗親)