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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75권, 세종 18년 12월 28일 기축 1번째기사 1436년 명 정통(正統) 1년

권 양원을 세자빈으로 삼다

사정전에 나아가서 신인손·권채(權採)를 불러 보고 말하기를,

"전일에 세자빈 봉씨를 폐출시킨 후에, 대신들이 말하기를, ‘세자빈의 자리는 오랫동안 비워 둘 수는 없으니, 마땅히 숙덕(淑德)이 있는 규수를 잘 골라 뽑아서 한시 빨리 배필로 정해야 될 것입니다.’ 하였는데, 나는 근년에 나라가 흉년을 만나게 되어 재앙을 두려워하고 몸을 반성할 시기인데, 또 가례(嘉禮)의 중대한 일을 행하게 되니 마음이 실로 미안하여 윤허하지 않은 것이 두세 번이었다. 대신들은 일의 대체가 지극히 중대하여 행하지 않을 수가 없다고 하여 굳이 청하여 마지 않으므로, 나도 마지못하여 그대로 따라, 서울과 지방의 명가의 딸 몇 사람을 선택하여 그 길흉을 점치고, 그 덕용(德容)을 상보게 하였다. 녹명(祿命)169) 의 설은 비록 다 믿을 수가 없지마는, 그러나 한 사람도 좋은 사람이 없으며, 그 덕용을 상보았으나 또한 한 사람도 내 뜻에 맞은 사람이 없으므로, 자나깨나 생각하여도 처리할 바를 알지 못하겠다. 이내 생각해 보건대, 세자의 빈을 두 번이나 폐하고 다시 세웠지마는, 어진 배필을 얻지 못하여 변고를 가져오게 했으니, 징계됨이 실로 심한 편이다. 지금 비록 뽑아 책립(冊立)하더라도, 또한 어찌 그 어진 사람을 얻을 것을 보증하겠는가. 내가 어제 갑자기 생각해 보니, 시험해 보지 않은 사람을 새로 얻는 것과 본래부터 궁중에 있으면서 부인의 도리에 삼가하고 공손한 사람을 뽑아 세우는 것이 어찌 같을 수가 있겠는가. 그렇게 하면 후회가 없을 것이다. 전에 세자빈을 세울 것을 의논할 때에 대신들도 또한, ‘양원(良媛)과 승휘(承徽) 중에서 승진시켜 빈으로 삼아야 될 것입니다.’ 하였으나, 내 의사로서는 첩을 아내로 만드는 일은 옛날 사람의 경계한 바인데, 더군다나 우리 조종의 가법에도 또한 이런 예가 없었던 까닭으로 그 일을 중대하게 여겨 윤허하지 않았으나, 지금에 와서 이를 생각해 보니, 서울과 지방에 널리 뽑았으나 이 적임자를 얻지 못했으니, 차라리 대신의 말을 따르겠다. 어젯밤에 역대의 고사를 상고하게 했더니, 한나라 당나라 이후로 황후가 혹은 죽든지 혹은 폐위되든지 하면, 으레 후궁의 귀인(貴人)170) 과 비빈을 승진시켜 황후로 삼게 했으며, 역대에서 모두 그렇게 하였다. 다만 큰 일은 억측(臆測)으로 정할 수 없으니, 두 의정과 찬성의 집에 가서 그 가부를 의논하고 오라. 만약 옳다고 한다면 권 양원(權良媛)171)홍 승휘(洪承徽)172) 중에서 누구가 적임자인가. 두 사람은 모두 세자의 우대하는 사람이며 우리 양궁(兩宮)의 돌보아 사랑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세자의 뜻은 홍씨를 낫게 여기는 듯하나, 내 뜻은 권씨를 적당하다고 생각한다. 옛날 사람이 말하기를, ‘나이가 같으면 덕으로써 하고, 덕이 같으면 용모로써 한다.’ 했는데, 이 두 사람의 덕과 용모는 모두 같은데, 다만 권씨가 나이 조금 많고 관직이 또 높다. 또 후일에 아들을 두고 두지 못할 것과, 비록 아들을 두되 어질고 어질지 못할 것은 모두 알 수가 없지마는, 그러나 권씨는 이미 딸을 낳았으니, 그러므로 의리상 마땅히 세자빈으로 세워야 될 것이다. 지금 이미 마지 못하여 형편에 따라 변통하여 처리하면서도, 또 의리상 마땅히 세워야 될 사람을 버리고 홍씨를 세웠다가 후일에 만약 화합하지 못하는 일이 있게 되고, 또 능히 아들을 낳지 못한다면 그 후회가 작지 않을 것이니, 이 두 사람 중에서 누가 가히 세울 만한 사람인가. 아울러 의논하여 오라."

하였다. 인손 등이 즉시 가서 이를 의논하니, 모두 말하기를,

"양원승휘는 모두 명문 벌족 중에서 골라 뽑아서 내직의 자리를 갖추 차지하고 있으니, 다른 범연(泛然)한 잉첩의 비교가 아닙니다. 또 일찍이 궁중에 들어와서 규범(閨範)이 일찍부터 드러났으니, 지금 이미 밖에서 널리 뽑아서 얻지 못했다면, 양원승휘 중에서 가장 어진 사람을 뽑아서 빈으로 삼는 것이 심히 적당합니다. 처음에 빈을 세우기를 의논할 때에 신 등의 의사가 이와 같았는데, 더군다나 역대의 임금이 모두 이를 행하였습니다. 송나라 진종도 또한 귀인으로 황후로 삼았으나, 정자가 일찍이 송조의 가법이 매우 바르다고 논하면서, 진종(眞宗)을 그르게 여기지는 않았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오늘날 빈을 세우는 일은 또 어찌 의심하겠습니까. 권씨홍씨의 나이의 많고 적은 것과 지위의 높고 낮은 것은 논할 필요가 없으며, 다만 그 현덕(賢德)이 한 나라의 국모로서의 모범이 될 만한 것만 볼 뿐입니다. 그러나 성상의 결단에 있사오니 신 등이 감히 정할 바는 아닙니다."

하였다. 인손 등이 이 말을 갖추어 아뢰니, 즉시 교지를 의정부에 내려서 양원 권씨를 세워 빈으로 삼았다.


  • 【태백산사고본】 24책 75권 26장 B면【국편영인본】 4책 46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의식(儀式) / 역사-고사(故事)

  • [註 169]
    녹명(祿命) : 팔자(八字)나 운(運)을 말함.
  • [註 170]
    귀인(貴人) : 한대(漢代)의 여관(女官)으로 황후의 다음임.
  • [註 171]
    권 양원(權良媛) : 권전(權專)의 딸.
  • [註 172]
    홍 승휘(洪承徽) : 홍심(洪深)의 딸.

○己丑/御思政殿, 引見辛仁孫權採曰: "前者世子嬪奉氏廢黜之後, 大臣以爲: ‘嬪位不可久曠, 宜妙選淑德, 早定配匹。’ 予以近年國罹凶荒, 懼災修省之時, 又行嘉禮重事, 心實未安, 不允者再三。 大臣以事體至重, 不可不行, 固請不已, 予不得已從之, 令選擇中外名家之女若干人, 卜其吉凶, 相其德容。 祿命之說, 雖不可盡信, 然無一人可者; 相其德容, 亦無一人稱予意者, 寤寐思惟, 罔知所處。 因念世子之嬪, 再行廢立, 而未得賢配, 以致變故, 懲艾悉深。 今雖選簡冊立, 亦何保其得賢乎? 予於昨日忽思之, 與其新得不試之人, 豈若擇立素在宮中虔恭婦道者乎? 則可無後悔。 前議立嬪之時, 大臣亦以爲: ‘良媛、承徽中, 可陞爲嬪。’ 予意以妾爲妻, 古人所戒, 況我祖宗家法, 亦無此例, 故重其事而不允。 卽今思之, 廣選中外, 旣不得人, 則寧從大臣之言, 昨夜使考歷代古事, 以後皇后, 或死或廢, 例以後宮貴人妃嬪, 陞爲皇后, 歷代皆然, 但大事不可臆定, 其往兩議政贊成家, 議其可否而來。 若以爲可, 則 (良瑗)〔良媛〕 承徽中, 誰可者? 二人皆世子之優待, 而予兩宮之眷愛者也。 然世子之意, 似以洪氏爲優, 而予之意則以權氏爲當。 古人有云: ‘年均以德, 德均以容。’ 此二人德容則皆等, 但權氏年稍長, 官職又高。 且後有子與否及雖有子賢否, 皆未可知, 然權氏已生女, 故於義當立。 今旣不得已處變, 而又捨義當立者, 立洪氏, 後日若有不諧之事, 且不能生子, 則其悔不小。 此二人, 誰可立者? 竝議以來。" 引孫等卽往議之, 皆以爲: "良媛承徽, 皆妙選名族, 備位內職, 非他泛然妾媵之比, 且早入宮中, 閨範夙彰。 今旣廣選於外而不得, 則良媛承徽中, 擇其最賢, 陞而爲嬪, 甚爲允當。 初議立嬪之時, 臣等之意如此, 況歷代之君, 皆已行之! 眞宗亦以貴人爲皇后, 而程子嘗論朝家法極正, 其不以眞宗爲非可知也。 今日立嬪之事, 又何疑乎? 若權氏洪氏年之長幼ㆍ位之高下, 不必論也, 但觀其賢德, 可以母儀一國而已。 然在睿斷, 非臣等所敢定也。" 引孫等以此具啓, 卽下敎旨于議政府, 立良媛權氏爲嬪。


  • 【태백산사고본】 24책 75권 26장 B면【국편영인본】 4책 46면
  • 【분류】
    왕실-비빈(妃嬪) / 왕실-의식(儀式)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