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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74권, 세종 18년 7월 29일 임술 1번째기사 1436년 명 정통(正統) 1년

이계전과 김문에게 《강목》·《통감》의 훈의를 찬술케 하다

이계전(李季甸)김문(金汶)을 명하여 《강목(綱目)》·《통감(通鑑)》의 훈의(訓義)를 찬술(撰述)하게 하고, 유의손(柳義孫)으로 하여금 서문을 짓게 하니, 그 서문에,

"주문공(朱文公)120)《강목(綱目)》춘추(春秋)의 필법(筆法)을 본받았으니, 그 글은 사기(史記)이지마는 그 뜻은 경서(經書)이다. 임금께서 집현전 부교리(集賢殿副校理) 이계전(李季甸)·김문(金汶) 등에게 명하시기를, ‘무릇 학문하는 방법은 경학(經學)을 근본으로 삼을지니, 진실로 마땅히 먼저 읽어야 될 것이다. 그러나, 다만 경학만 공부하고 사기를 통하지 않은다면 그 학문은 넓지 못할 것이다. 사학(史學)을 공부하고자 한다면 《강목(綱目)》의 한 책과 같은 것이 없다. 지난번에 이미 《자치통감(資治通鑑)》의 훈의(訓義)를 찬술하였으므로, 또 이 책으로 인하여 《강목》까지 아울러 주해(註解)하여 후학(後學)에게 은혜를 베풀고자 하니, 너희들은 그것에 힘을 쓰라.’ 하옵시었다. 이에 계전(季甸) 등이 참작하고 증손(增損)하여 그 요긴한 말을 뽑아서 장절(章節)에 따라 나누어 붙이되, 무릇 버리고 취하기를 모두 임금의 재단을 받았었다. 계속하여 집현전 부교리(集賢殿副校理) 이사철(李思哲)과 수찬(修撰) 최항(崔恒) 등에게 명하여 교정(校正)하게 하여, 3년이 지나서 책이 이루어졌으나, 다만 그 구주(舊註)는 글자 모양이 조금 자차분하므로 주상께서 춘추가 높아지시면 보시기가 어려울까 염려하시어, 진양 대군(晉陽大君) 이유(李瑈)로 하여금 큰 글자로 써서 이를 새로 주조(鑄造)하여 새 글자로써 강(綱)을 삼고 옛 글자로써 목(目)을 삼게 하였으며, 또 권질이 무겁고 큰 것은 정리해서 상·중·하로 만들기도 하고 상·하로 만들기도 하여서, 총 1백 49권이었다. 장차 본떠 인쇄하여 세상에 널리 전하게 하고, 마침내 신(臣)에게 명하여 서문을 짓게 하시니, 신은 그윽이 생각하건대, 사기(史記)의 글이 세상에 전해 온 것이 많지마는, 《통감(通鑑)》보다 상세한 것이 없고 《강목(綱目)》보다 요긴한 것이 없으니, 실로 천하 만세(萬世)의 귀감(龜鑑)인 것이다. 그러나, 그 여러 학자의 주석이 자못 상세하고 간략한 것이 있게 되고, 또한 서로 모순 되기도 하여, 진실로 두루 쉽게 보고 절충할 수가 없게 된다. 삼가 생각하옵건대, 우리 주상 전하께서는 하늘이 내신 거룩하옵신 학문으로 경서(經書)와 사기(史記)에 마음을 두시고, 깊이 생각하시며 만기(萬機)를 보살피시는 여가에 두 서적을 읽으시고 여러 주 해의 다른 것을 참고 연구하여 한 곳으로 돌아가게 하시고, 매우 세밀히 분석하여 환하게 상고할 수 있게 하시니, 진실로 사서(史書)의 대전(大全)인 것이다. 이를 읽는 사람이 진실로 성상(聖上)의 교훈을 우러러 본받아 먼저 경학(經學)을 밝히고 난 후에 《통감(通鑑)》으로써 학문을 넓히고 《강목(綱目)》으로써 요약(要約)한다면, 본말(本末)이 겸하여 갖추어지고 안팎이 융통(融通)되어, 본체(本體)가 밝게 되고 쓰기[適用]에 벗어나지 않는 학문이 될 것이다. 만일 혹 차서를 건너뛰어 여러 가지 책을 읽는 데만 한갓 힘을 쓴다면, 어찌 우리 성상께서 도학(道學)을 먼저 밝혀 세대에 내리어 교화를 세우시려는 아름다운 뜻을 보답함이 되리오. 훗날의 이 책을 보는 사람은 마땅히 스스로 깨우치고 살필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3책 74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4책 25면
  • 【분류】
    역사-사학(史學) / 역사-편사(編史) / 출판-인쇄(印刷) / 출판-서책(書冊)

  • [註 120]
    주문공(朱文公) : 주자(朱子).

○壬戌/命李季甸金汶《綱目通鑑訓義》, 令柳義孫序之。 序曰:

朱文公 《綱目》, 祖《春秋》之筆, 其文則史, 而義則經也。 上命集賢殿副校理李季甸金汶等曰: "凡爲學之道, 經學爲本, 固所當先, 然只治經學, 而不通乎史, 則其學未博, 欲治史學, 無若《綱目》一書。 頃旣撰《資治通鑑訓義》, 又欲因此書倂註《綱目》, 以惠後學, 爾等其勉之。" 於是季甸等參酌增損, 撮其要語, 逐節分附, 凡所去取, 悉稟睿斷。 繼而命集賢殿副校理李思哲、修撰崔恒等讎校, 三閱歲而書成, 第其舊註字樣稍密, 上慮春秋高則難於觀覽, 令晋陽大君 書大字新鑄之, 以新字爲綱, 舊字爲目。 又以卷帙重大, 或釐爲上中下, 或爲上下, 摠一百四十有九卷。 將使模印, 以廣其傳, 遂命臣序之。

臣竊謂史籍之行于世者多矣, 莫詳於《通鑑》, 而莫要於《綱目》, 實天下萬世之龜鑑也。 然其諸儒註釋, 頗有詳略。 且相抵牾, 固未易遍觀而折衷。 恭惟我主上殿下天縱聖學, 潛心經史, 萬機之暇, 繙閱二書, 參究諸註之異同, 俾歸于一, 毫分縷析, 粲然可考, 誠史書之大全也。 讀者苟能仰體聖訓, 先明經學, 然後博之於《通鑑》, 約之以《綱目》, 則本末兼該, 內外融貫, 而庶不謬乎明體適用之學矣。 儻或躐等而徒務於涉獵, 則豈吾聖上倡明道學, 垂世立敎之美意哉? 後之觀是書者, 當自警省云。


  • 【태백산사고본】 23책 74권 10장 A면【국편영인본】 4책 25면
  • 【분류】
    역사-사학(史學) / 역사-편사(編史) / 출판-인쇄(印刷) / 출판-서책(書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