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안도 각 수령이 부방하는 폐단을 시정하게 하다
병조 판서 최사강(崔士康) 등이 아뢰기를,
"평안도 각 고을의 수령들이 각기 그 관(官)의 군졸(軍卒)을 인솔하고 윤번으로 연변(沿邊)에 부방(赴防)하고 있사온데, 각 고을이 멀리 떨어져 있고 길이 막혀 있어 공억(供億)에 필요한 물자 수송에 소요되는 말이 7, 80필에 이르고, 이에 수종(隨從)하는 시역(厮役)093) 도 또한 백 명을 내려가지 않기 때문에, 한갓 백성들에게 소요를 끼칠 뿐 아니라, 마필(馬匹)의 사망이 잇달아 일어나고 있어, 장차 전마(戰馬)가 다할 것이오니 실로 크게 우려되는 일이옵니다. 이제부터는 수령들이 친히 군졸을 점검하여, 이를 각익(各翼)의 천호(千戶)에게 주어서 인솔 부방하게 하고, 도절제사(都節制使)가 엄하게 규찰(糾察)을 가하도록 하옵소서."
하고, 또 아뢰기를,
"병사(兵事)란 멀리서 제어(制禦)하기 어려운 것이옵기에, 반드시 변장(邊將)의 전제(專制)에 따라야만 공을 이룰 수 있는 것입니다. 이제 평안도 변방의 군비에 대한 일들을 해마다 대신(大臣)을 보내어 모든 조치를 전제(專制)하고 있는 까닭에, 그 도(道)의 도절제사(都節制使)는 아무런 시행도 하지 못하고 있으니, 모의(謀議)가 순조롭지 못하여 서로의 모순을 가져오는 폐단이 어찌 없겠습니까. 또 군령(軍令)이 여러 곳에서 나와 사졸(士卒)들이 그 좇을 바를 몰라서 변방의 일이 이완(弛緩)하게 되어 침략(侵掠)이 있을 때마다 이를 추격하여 체포하지 못하곤 하오니, 이제부터는 찰리사(察理使)와 부사(副使)를 파견하지 마시고 오로지 도절제사에게 책임을 지워서 그 공효를 이루는 것을 볼 것이며, 만약 서울의 군사를 파견하게 되면, 상·대호군(上大護軍) 중에서 무략(武略)이 있는 자를 택하여 정예한 군사를 인솔하고 부방(赴防)하게 하되, 이를 도절제사의 휘하에 예속시켜, 도절제사의 임시(臨時) 구획(區畫)에 따르게 하여 군령(軍令)을 일원화(一元化)하고 국가에서는 불시로 조관(朝官)을 파견하여 순행고찰(巡行考察)해서 상벌(賞罰)을 정하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의정부에 의논하기를,
"니도 역시 벌써부터 수령들이 부방하는 폐단을 들어 왔고, 이를 혁파하자고 건의한 자도 또한 한둘이 아니었다. 그러나, 장수가 외지에 있으면서 기회에 따라 계책을 설시(設施)하는 것을, 아직 그 공효가 나타나지 않았다 하여 갑자기 건의한 자의 말만을 믿고 자주 그 정책을 고치게 된다면, 장수는 그 제어(制禦)의 계책을 정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또 도성 밖[閫外]의 일은 대장(大將)의 계책에 따라야만 비로소 그 공을 거둘 수 있기 때문에, 지금까지 그대로 내려오면서 그 효과를 보려던 것이었는데 이를 시행한 지 얼마 되지도 아니하여 그 폐해가 과연 건의한 자의 말과 같다면, 장차 어찌 처리해야 되겠는가. 또 계축년 가을부터 언제나 도안무찰리사(都安撫察理使)를 파견하여 평안도 일원을 전제(專制)하게 하고, 도절제사 이하 모두 그 명령에 따르게 한 것이 이미 수년이 되었는데, 비록 그 공효는 아직 보지 못하였으나, 호령(號令)이 한 장수로부터 나오는 것만은 역시 옳은 것이다. 이제 홍사석(洪師錫)을 파견하여 찰리 부사(察理副使)로 삼는다면, 그 품질(品秩)의 존비(尊卑)가 도절제사와 서로 대등하니, 그 호령을 내릴 때에 누가 주장한단 말인가. 또 군령(軍令)이란 반드시 한 사람으로부터 나온 연후에야 공을 이룰 수 있는 법인데, 만약 주장하는 자가 하나가 아니면 군졸들이 좇을 바를 모르게 되어, 그 해가 작지 않다는 것을, 옛사람들도 이미 그 폐해를 말하였던 것이다. 이제 최사강 등의 논의에 따르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매, 모두들 옳다고 하여, 드디어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23책 73권 1장 A면【국편영인본】 4책 1면
- 【분류】군사-군정(軍政) / 군사-부방(赴防) / 군사-지방군(地方軍)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
- [註 093]시역(厮役) : 잡역부(雜役夫).
○兵曹判書崔士康等啓曰: "平安道各官守令各率其官軍卒, 輪次赴防于沿邊, 各官隔阻險途, 供億駄載之馬, 七八十匹, 其隨從廝役, 亦不下百數, 非徒搔擾百姓, 馬匹斃踣相望, 戰馬將盡, 誠爲可慮。 今後守令親點軍卒, 授各翼千戶, 率領赴防, 都節制使嚴加糾察。"
又啓曰: "兵事難以遙制, 須聽邊將專制, 可成事功。 今平安道邊備之事, 歲遣大臣, 專制措置, 其道都節制使不得有所施爲, 豈無謀議不順, 自相矛盾者哉? 且軍令多門, 士卒莫知所從, 邊事緩弛, 每侵掠, 不能追捕, 今後毋遣察理使與副使, 專責都節制使, 以觀成効。 若遣京中軍士, 則擇上大護軍有武略者, 率精勇軍人赴防, 以屬都節制使, 聽都節制使臨時區畫, 以一軍令, 國家出其不意, 差遣朝官, 巡行考檢, 以定賞罰。"
上議于議政府曰: "予亦曾聞守令赴防之弊矣, 而獻議欲罷者, 亦非一也。 然將軍在外, 臨機設策, 未著其効, 遽信議者之論, 數改其策, 則將軍無以定制禦之計矣。 且閫外之事, 須聽大將之策, 乃可集功, 故因循至今, 欲觀其効, 行之未久, 其弊果如議者之言, 將何以處之? 又自癸丑秋, 每遣都按撫察理使, 專制平安一道, 都節制使以下, 竝聽其令, 今已數年, 雖未見其効, 而號令出於一將, 猶之可也。 今遣洪師錫, 以爲察理副使, 其品秩尊卑, 與都節制使相等, 其發號出令, 誰爲主歟? 且軍令必出於一人, 然後可以成功, 若主者非一, 則士卒莫知所從, 其害不小, 古人已言其弊矣。 今從崔士康等議何如?"
僉曰: "可。" 遂從之。
- 【태백산사고본】 23책 73권 1장 A면【국편영인본】 4책 1면
- 【분류】군사-군정(軍政) / 군사-부방(赴防) / 군사-지방군(地方軍) / 행정-지방행정(地方行政)