풍운뢰우의 제사에 관해 논하다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민의생(閔義生)이 상서하기를,
"그윽이 생각하옵건대, 근래에 자주 한재가 있으므로 신이 이리저리 생각해 보오니, 실정(失政)으로 인하여 제앙을 부른 것은 아니옵니다. 한재와 수재는 천변으로서도 큰 것으로서 요(堯)임금과 탕(湯)임금도 면치 못한 바이옵거늘, 어찌 인사(人事)의 어떤 것으로 인하여 한재를 가져왔다 하겠습니까. 그러나, 풍운뢰우(風雲雷雨)는 직책이 우택(雨澤)을 맡은 것으로서 본조(本朝)에서 제사를 올리는 뜻이 고전(古典)에 부합되지 못한가 하옵니다. 신이 삼가 주(周)나라 제도를 상고하옵건대, 입춘(立春) 뒤 축일(丑日)에 동북(東北)에서 풍사(風師)에 제사지내고, 입하(立夏) 뒤 신일(申日)에 서남(西南)에서 우사(雨師)에 제사하였는데, 주나라 이후로 당나라와 송나라에 이르렀고, 원(元)나라 조정에 이르러 풍사(風師)는 축지(丑地)에 단(壇)을 쌓고 축일(丑日)에 제사를 하였고, 우사(雨師)는 신지(申地)에 단을 쌓고 신일(申日)에 제사하였는데, 제사지내는 법은 일찍이 고친 바 없었으며, 우리 나라도 전조(前朝)로부터 국초(國初)에 이르기까지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산천단(山川壇)은 홍무(洪武) 3년에 〈명나라〉 태조 고황제(太祖高皇帝)가 도사(道士) 서사호(徐師昊)를 보내어 송도(松都) 남문(南門) 밖에 단(壇)을 설치하고 제사를 지내고 비(碑)를 세웠는데, 그 비문(碑文)에 이르기를, ‘대화악신(大華岳神) 및 제산지신(諸山之神) 대남해(大南海) 및 제수지신(諸水之神)이라 하고, 풍운뢰우 성황(城隍)의 신에게 이르러서는 말한 바 없으므로 산천단은 어느 때부터인지 알지 못하며, 풍운뢰우·성황을 합쳐서 제사를 올렸으니, 이는 곧 홍무예제(洪武禮制)의 주현의(州縣儀)로서 번왕(蕃王)의 일이 아니었습니다. 이로부터 그 이후로 풍운뢰우의 방위(方位)와 산천단 두 곳은 다 행하고 폐하지 않았으나, 신사년에 태종조(太宗朝)가 명하여 음사(淫祀)를 혁파할 때에, 중복된 제사[疊祭]라고 하여 방위(方位)의 제사는 폐하게 되었습니다. 정현(鄭玄)036) 이 말하기를, ‘풍사(風師)를 축지(丑地)에서 제사하는 것은 방위에 맞게 하는 것이다.’ 하였은즉, 옛사람들이 풍운뢰우의 제사에도 단을 쌓았으되 방위가 있었고, 제사지내는데 있어서도 일정한 날이 있었으니, 어찌 그 뜻이 없었겠습니까. 신이 정미년에 가뭄으로 인하여 바른말을 구할 때에 이런 뜻으로 상서(上書)하였더니, 상정소(詳定所)로 내려보냈으나 의논이 분분해서 마침내 시왕(時王)의 제도라 하여 고치지 아니하였습니다. 이제 한재를 당하여 감히 입을 다물고 있을 수 없사와 삼가 아래에 열거하였사오미, 엎드려 성상(聖上)의 재가(裁可)를 바라옵니다.
1. 논의한 사람들의 말이, ‘풍운뢰우를 산천단에 합제(合祭)하는 것은 시왕의 제도이기 때문에 고칠 수 없다.’ 하오나,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홍무예제에는 사직(社稷)에 배위(配位)가 없사온데, 본조(本朝)에서는 국사(國社)에 후토(后土)를 배(配)하고 국직(國稷)에 후직(后稷)을 배(配)하였으며, 홍무예제에는 선농(先農)·선잠(先蠶)·우사(雩祀)·영성(靈星)·노인성(老人星)·선목(先牧)·마조(馬祖)·마사(馬祀) 등의 제사가 없사온데, 본조에서는 모두 다 단을 설치하고 제사하면서, 유독 풍운뢰우에만 시왕의 제도라고 해서 방위의 제사를 행하지 않는 것은 옳은 일이라 할 수 없습니다. 홍무 18년에 태조 황제의 성지(聖旨) 안에 ‘예의는 본속(本俗)을 쫓고 법은 구장(舊章)을 지키라.’ 하고, 그 뒤에 친왕 구장(親王九章)의 법을 내려 주셨으니, 하필 홍무예제의 주현의(州縣儀)를 예(例)로 삼아 준수하겠습니까.
1. 논의한 자가 말하기를, ‘풍운뢰우를 이미 산천단에 제사하고 또 방위에 제사한다면, 제사가 중복되어 번잡하다.’ 하옵는데,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됩니다. 본조에서는 사직단에 후토(后土)와 후직(后稷)을 배향하고, 산천제는 북교(北郊)와 산천단과 또 각처의 명산·대천에 사신을 보내어 치제(致祭)하니, 제사가 중복되는 것은 잘못입니다.
1. 예로부터 천신(天神)과 지기(地祇)는 한 단(壇)에 같이 있지 않습니다. 이제 풍우레우를 성황(城隍)에 합쳐서 단이 여염(閭閻) 가운데에 있사오니, 제사할 곳이 못되오며, 신(神)도 흠향하지 않을 것입니다. 또 북교(北郊)·악(嶽)·해(海)·독(瀆)·산천의 제사에는 헌작(獻爵)한 뒤에 재배(再拜)가 있었는데, 지금은 산천단에 헌작한 뒤에 재배가 없고, 또 천신(天神)은 폐백(幣帛)과 축문을 요대(燎臺)에서 불사르고, 지기(地祈)는 폐백과 축문(祝文)을 예감(瘞坎)037) 에 묻는 것이 예(禮)인데, 지금은 산천단의 제사를 마친 뒤에 폐백과 축문을 모두 태우는 것은 역시 옳지 못합니다.
1. 옛날 사람들은 비가 내리지 않으면 폐해 버렸던 제사[廢祀]를 다시 지냈는데, 본조에서는 기우(祈雨)하는 것이 원단(圓壇)에만 이르고 다른 데에는 제사하지 않사오니, 풍운뢰우 방위의 제사가 법에 어긋난 것 같습니다.
1. 나라의 대사(大事)로서 제사와 군사를 소홀히 해서는 아니 됩니다. 무릇 제향(祭享)은 오로지 정결(精潔)을 위주로 하옵는데, 이제 산천단을 보면 사방의 원장(垣墻)이 모두 허물어져서 금지하는 경계가 없어, 소·양·개·돼지들이 짓밟아서 더럽힌 것을, 제사를 지낸다는 말을 듣고서야 갑작스레 수리하고 정결하게 하는 것은 신(神)을 공경하는 뜻이 아닌가 하오니, 이후로는 원유(垣壝)와 난장(欄墻)을 옛 제도에 의하여 미리 수치(修治)하고 숙청(肅淸)하게 하였다가, 임시(臨時)하여 치제(致祭)한다면 거의 제사지내는 의리에 합당할 것이오니, 예조로 하여금 의논해서 아뢰게 하소서."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3책 72권 6장 B면【국편영인본】 3책 672면
- 【분류】과학-천기(天氣) / 역사-고사(故事)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同知中樞院事閔義生上書曰:
竊惟近來頻有旱災, 臣反覆思之, 未有闕政可召。 旱災水旱, 天變之大者, 堯、湯之所未免, 豈可以人事之某某, 指以爲旱災之應? 然風雲雷雨, 職司雨澤, 本朝致祀之意, 恐未合於古典。 臣謹按周制, 立春後丑日, 祭風師於東北, 立夏後申日, 祭雨師於西南。 自周以後, 迄于唐、宋, 以至元朝, 風師則丑地築壇, 丑日祭之; 雨師則申地築壇, 申日祭之, 祭之之法, 未嘗有改。 吾東方自前朝以至國初, 亦如之。 山川壇, 則洪武三年, 太祖高皇帝遣道士徐師昊, 設壇於松都南門之外, 致祭立碑。 其碑文曰: "大華岳神及諸山之神、大南海及諸水之神。" 無及於風雲雷雨城隍之神, 故曰山川壇, 不知何時以風雲雷雨城隍, 合而祭之, 此則《洪武禮制》州縣儀, 非藩王事也。 自是厥後, 風雲雷雨方位及山川壇兩處, 竝行不廢。 歲在辛巳太宗朝命革淫祀之時, 議以疊祭, 遂廢方位之祭。 鄭玄曰: "祭風師於丑地, 就方位也。", 則古人於風雲雷雨之祭, 築壇有方, 致祭有日, 豈無其意歟? 臣於丁未因旱求言之時, 以此上書, 啓下詳定所, 議論紛紜, 終以時王之制不改。 今當旱災, 不敢含默, 謹列于後, 伏惟上裁。 一。 議者曰: "風雲雷雨, 合祭於山川壇, 時王之制, 不可改。" 臣愚以謂不然。 《洪武禮制》, 於社稷無配位, 本朝則於國社, 配以后土, 國稷配以后稷。 又於《洪武禮制》, 無先農、先蠶、雩祀、靈星、老人星、先牧、馬祖、馬社等祭。 本朝則竝皆設壇致祭, 獨於風雲雷雨, 指以爲時王之制, 不行方位之祭, 恐爲未便。 洪武十八年, 太祖皇帝聖旨內: "儀從本俗, 法守舊章。" 其後賜以親王九章之法, 何必以《洪武禮制》州縣儀, 爲例遵守乎? 一。 議者曰: "風雲雷雨, 旣祭於山川壇, 又祭於方位, 則疊祭煩瀆。" 臣愚以爲不然。 本朝於社稷壇, 配以后土后稷。 雩祀壇, 祭以后土后稷。 先農祭, 配以后稷。 山川則北郊及山川壇, 又於各處名山大川, 遣使致祭, 則疊祭者非矣。 一。 自古天神地祇, 未有雜處於一壇。 今以風(雨)〔雲〕 雷雨, 合於城隍, 而壇在閭閻之中, 祭非其所, 恐神不享。 又北郊、嶽、海、瀆、山川之祭, 獻爵後有再拜, 今山川壇獻爵後無再拜。 又天神則幣祝燒於燎臺, 地祇則幣祝埋於瘞坎, 禮也。 今山川壇祭畢後, 幣祝皆焚之, 亦爲未便。 一。 古人閔雨, 則修擧廢祀。 本朝於祈雨之極, 則終至圓壇, 尙且不擧, 風雲雷雨方位之祭, 恐爲闕典。 一。 國之大事, 在祀與戎, 不可忽也。 凡祭享專以精潔爲主, 今觀山川壇, 四面垣墻皆頹, 無有禁限, 牛羊犬豕, 踐踏汚穢, 及其祈報, 卒然修淨, 恐非敬神之意。 今後垣壝、欄墻, 依古制預先修治, 使之肅淸, 臨時致祭, 則庶有格享之理。
令禮曹擬議以啓。
- 【태백산사고본】 23책 72권 6장 B면【국편영인본】 3책 672면
- 【분류】과학-천기(天氣) / 역사-고사(故事) /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