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정전에 나아가 책문의 제목을 내다
임금이 근정전에 나아가 영의정부사(領議政府事) 황희(黃喜)·지중추원사(知中樞院事) 이맹균(李孟畇)·이조 판서 권도(權蹈)로 독권관(讀券官)을 삼고, 우부승지 김돈(金墩)·집현전 부제학 안지(安止)·유효통(兪孝通)과 집현전 직제학 최만리(崔萬理)·김빈(金鑌)으로 대독관(對讀官)을 삼아, 중시의 문신들은 동쪽에 있게 하고, 초시의 응시생들은 서쪽에 있게 하여 책문(策問)의 제목을 내었다. 책제(策題)에 이르기를,
"왕은 이렇듯 말하노라. 제왕(帝王)들의 백성을 다스리는 길은 비록 같다 하나, 정치를 하는 방법은 하나가 아니다. 요(要)는 모두 인륜을 두텁게 하여 풍속이 되게 하고, 외적을 막고 백성을 편안하게 할 뿐이다. 당(唐)·우(虞)의 시대를 상고해 보면, 설(契)021) 을 시켜서 오륜(五倫)을 시행하게 하였고, 우(禹)에게 명령하여 삼묘(三苗)를 토벌하게 하였다. 이때를 당하여 백성이 갑자기 교화되어 집집마다 벼슬을 봉(封)할 만하였고, 묘족(苗族)이 반항하였으므로 간우(干羽)의 춤을 춘 지 70일 만에 와서 복종하였으니, 순임금의 문덕(文德)이 어찌 군사를 들어서 감화시켰겠는가. 삼대가 잇달아 일어났는데 문(文)과 질(質)을 덜고 더하여 시대마다 각각 다스렸으니, 그것을 자세하게 말할 수 있겠는가. 오늘에 있어서 할 만한 일은 어떤 것일까. 대종이니 소종이니 하는 법은 조종(租宗)을 높이는 의리이며, 향음주(鄕飮酒)의 예는 장유(長幼)의 차서를 밝히려는 것이다. 활을 쏘아서 덕을 보려 하고, 투호(投壺)를 해서 마음을 수양하는 것은, 주(周)나라의 다스림이 빛나서 후세에서 미치지 못한 것이 이 길을 썼던 까닭이다. 주나라 이전에도 역시 행한 자가 있었는가. 옹희(雍熙)와 태화(泰和)의 지치(至治)를 이룬 바가 무슨 길이며, 험윤(玁狁)022) 을 토벌한 것을 시인이 찬미하고, 잠산(潛山)023) 에 군사가 모인 것을 춘추(春秋)에서 기롱하였으니, 성인이 이적(夷狄)을 대한 도리를 볼 따름이다. 용촉(庸蜀)024) 과 강무(羗髳)025) 는 맹진(孟津)026) 모임에 참예하였고, 회이(淮夷)027) 와 서융(西戎)028) 이 동교에 섞여 살게 한 것은 어떠한가. 후세(後世)로 내려오면서 한(漢)나라이니, 진(晉)나라이니 하여 송나라에 이르기까지 백성을 교화시키는 정치와 오랑캐를 제어하는 계책이 누가 잘했고 누가 잘못했던가. 삼가 생각해 보건대, 우리 태조께서 하늘의 대명을 받았고, 태종께서 홍업(鴻業)을 이어받아, 문·무(文武)가 함께 밝기를 옛날에 양보할 것이 없으나, 내가 얕은 덕으로 큰 기업(基業)을 계승하여 밤낮으로 걱정하고 부지런하게 하여, 모든 시행하는 바가 전대와 같게 하고자 하니, 어찌하여야 사람들로 하여금 조선(祖先)을 높이고 종친을 공경할 줄 알게 하여 종자(宗子)의 법을 세우며, 어찌하여야 사람들로 하여금 장유의 차례를 알게 하여 향음의 예를 행할 수 있겠는가. 활쏘기는 육예(六藝)의 하나인데도 무사(武士)의 일로만 보니, 어찌하면 활쏘기의 의의를 다시 밝히며, 투호(投壺)는 몸을 수양하는 도구인데도 한갓 호협(豪俠)한 사람의 놀음만으로 아니, 어찌하면 화살을 가지고 예의에 부합하게 하여 손과 주인이 서로 공경하게 사귀게 되겠는가. 우리 나라는 남쪽으론 섬 오랑캐를 이웃하고 북쪽으론 야인과 연(連)해 있으니, 제어할 방법과 무마할 계책을 진실로 잘 생각하고 상심(詳審)하게 처변해야 될 터인데, 요사이 와서 야인이 경내에 살기를 원하고, 섬 오랑캐가 바닷가에 와 있으니, 만일에 그 청을 들어 준다면 춘추의 근엄한 의의에 어긋남이 있고, 거절하고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왕자(王者)의 일시동인(一視同仁)하는 뜻에 흠절이 생기니 어찌하면 옳겠는가. 너희 대부들은 널리 고금(古今)의 이러한 주책(籌策)에 통하여 생각한 것이 익숙할 것이니, 각각 마음에 있는 대로 대답하라. 내가 장차 크게 쓰리라."
하고, 곧 모화관(慕華館)에 거둥하여 무과 시험을 보았다.
- 【태백산사고본】 23책 72권 2장 A면【국편영인본】 3책 670면
- 【분류】인사-선발(選拔) / 역사-고사(故事) / 왕실-행행(行幸)
- [註 021]설(契) : 은(殷) 나라 탕왕(湯王)의 조상.
- [註 022]
험윤(玁狁) : 흉노.- [註 023]
잠산(潛山) : 중국 안휘성(安徽省)에 있는 지명.- [註 024]
용촉(庸蜀) : 중국 팽복(彭濮) 사람으로서 오랑캐의 일종.- [註 025]
강무(羗髳) : 중국 팽복(彭濮) 사람으로서 오랑캐의 일종.- [註 026]
○乙巳/御勤政殿, 以領議政府事黃喜、知中樞院事李孟畇、吏曹判書權蹈爲讀券官, 右副承旨金墩、集賢殿副提學安止ㆍ兪孝通、集賢殿直提學崔萬理ㆍ金鑌爲對讀官, 重試文臣在東, 初試擧子在西。 乃出策題:
王若曰: "帝王爲治之道雖同, 而爲政之方非一, 要皆厚倫成俗、制寇安民而已。 若稽唐、虞, 命契而敷五敎, 命禹而征三苗。 當是時, 黎民於變, 比屋可封, 而有苗梗化, 干羽之舞, 七旬乃格。 舜之文德, 豈班師而始敷歟? 三代迭興, 文質損益, 代各有治, 其詳有可言者歟? 可行於今日者, 何事歟? 大小宗之法, 所以尊祖宗之義也; 鄕飮酒之禮, 所以明長幼之序也。 射以觀德, 投壺以治心。 周家之治, 煥乎有文, 後世莫及者, 用此道也。 自周以前, 亦有行之者歟? 其所以致雍熙泰和之治者, 何道歟? 薄伐獫狁, 詩人美之; 會戎于潛, 《春秋》譏之, 聖人待夷狄之道可見也已。 庸、蜀、羌、髳與會於孟津。 淮夷、西戎, 雜處於東郊, 何歟? 降及後世, 曰漢曰晋, 以迄于宋, 化民之政、御戎之策, 孰得而孰失歟? 恭惟我太祖受天景命, 太宗嗣受鴻業, 文昭武烈, 無讓古昔。 予以(諒)〔涼〕 德, 纉承丕基, 夙夜憂勤。 罔敢或遑, 凡所施爲, 仰惟前代時若。 何以使人知尊祖敬宗而宗, 子之法立? 何以使人知長幼之序, 而鄕飮之禮行? 射者, 六藝之一, 而視爲武士之事, 若之何, 則射義復明。 投壺, 治身之具, 而徒爲豪俠之戲, 若之何, 則擁矢合禮, 而賓主交敬歟? 我國南隣島夷, 北連野人, 制禦之方、撫綏之策, 固當熟慮, 而審處之。 玆者野人願居塞內, 島夷來處海濱, 若許其請, 則有違《春秋》謹嚴之義, 拒而不納, 則有虧王者無外之仁, 將何而可? 子大夫博通古今, 於此數者, 講之熟矣。 其各悉心以對, 予將大用焉。"
仍幸慕華館, 試武擧。
- 【태백산사고본】 23책 72권 2장 A면【국편영인본】 3책 670면
- 【분류】인사-선발(選拔) / 역사-고사(故事) / 왕실-행행(行幸)
- [註 0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