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 강희 등의 상언에 따라 한성시를 특설하다
서교(西郊)에 거둥하여 농사짓는 것을 보고 농부들에게 술과 먹을 것을 내려 주었다. 희우정(喜雨亭)에 거둥하여 화포 쏘는 것을 보고 도로 양장(羊場) 앞들에 이르니, 학생 강희(姜曦) 등 2백 82인이 길 왼편에 늘어서서 상언하기를,
"밝은 사람을 밝혀 내고 숨어 있는 사람을 드러내서, 어진 이를 세우는 데에 한도가 없었던 것은 옛 성인들의 아름다운 덕이요, 후세의 준칙(準則)이옵니다. 지나간 병신년 초두에 우리 태종 공정 대왕(太宗恭定大王)이 중시(重試)와 친시(親試)를 행하시어 대소의 유생(儒生)으로 하여금 시험에 나오지 않는 자가 없이 하여 사람을 취하는 길을 넓히셨고, 외방(外方)에 있기 때문에 기일 안에 오지 못해서, 신문고(申聞鼓)를 쳐서 시험을 보려는 자는 다시 한성시(漢城試)를 설치하여 뽑았으며, 우리 전하에 이르러서도 정미년 친시 때에 역시 관시(館試)와 한성시(漢城試)를 설치하시어, 다행하게도 등용문(登龍門)을 활짝 열어 두고 사방으로 선비[儒雅]들을 구하시니 진실로 우리 유생들의 대행(大幸)이옵니다. 그런데, 유독 신하들에게만 두 갈래로 나누어 놓으시어 친시에 참예하지 못하게 하오니, 신들도 꼭같은 국학의 유생으로 모두 과거볼 희망이 있으며, 또 먼 곳의 유생들이 싸 가지고 성균관에 와서 공부하여 오늘날을 기다린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어찌 뛰어난 인재가 유독 관시에서만 나오고 신들에게선 나오지 않겠습니까. 엎드려 바라옵건대, 유음(兪音)을 내리시어 한성시를 특설(特設)하여 병신년의 태종께서 행하시던 법을 따르시고, 정미년에 이미 시행한 제도를 거행하시어 신들도 함께 뽑아서, 오랫동안 품었던 억울한 마음을 풀게 하시고 평생에 익힌 것을 펴 보게 하소서."
하니, 임금이 즉시 도승지 신인손(辛引孫)에게 명하여 말하기를,
"법으로 벌써 정해진 것이라, 다시 과거를 보이기는 어려울 것 같다. 그러나, 이 선비들이 상언하여 과거보기를 청하니, 그 뜻이 민망해서 다시 과거를 보이려고 한다. 더구나, 선비를 뽑는 길을 넓히는 것이 무엇이 사리에 해롭겠는가. 만약에 다시 과거를 보인다면 이번에 상언한 자들과 함께 과거를 보이지 않을 것인지, 시험 보여서 뽑을 사람의 수효는 얼마로 할 것인지를 영의정 황희(黃喜)에게 가서 의논하라."
하였다. 희가 말하기를,
"성상의 말씀이 옳기는 하오나, 다시 과거를 보이려면 다만 상서한 유생들만을 뽑고, 그 수효는 30명이나 40명 내에서 전하께서 오직 적당히 정하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40명을 뽑으라."
하였다. 당초에 관시에서 성균관에서 공부하고 있는 유생에게만 한해서 뽑고, 그 인원 이외의 생도와 사부 학생(四部學生)은 참예하지 못하게 하였으므로, 강희 등이 상언한 것이었다.
- 【태백산사고본】 23책 72권 2장 A면【국편영인본】 3책 670면
- 【분류】왕실-행행(行幸) / 왕실-사급(賜給) / 인사-선발(選拔)
○癸卯/幸西郊觀稼, 仍賜農人酒食, 幸喜雨亭, 觀放火炮, 還至羊塲前平, 學生姜曦等二百八十二人, 列于道左上言曰:
明揚側陋, 立賢無方, 往聖之懿德, 而後世之準則也。 歲在丙申秒, 我太宗恭定大王行重試親試, 悉令大小儒生無不赴試, 以廣取人之路, 在外不及期, 擊鼓欲赴者, 更設漢城試以取之, 至我殿下, 丁未親試之時, 亦設館試、漢城試。 幸今天門洞開, 旁求儒雅, 誠吾儒之大幸也, 獨使臣等(岐)〔岐〕 而二之, 不與盛試。 臣等均是國學儒生, 皆有赴試之望, 且遐方儒生贏糧居齋, 以待今日久矣, 焉知出群之才, 獨出於館試, 而不出於臣等乎? 伏望渙發兪音, 特設漢城試, 遵丙申太宗之法, 擧丁未已行之制, 幷取臣等, 令釋久鬱之情, 俾展平生之蘊。
上卽命都承旨辛引孫曰: "法已定矣, 似難更試, 然此儒輩上言求試, 其意憐憫, 欲令更試, 況廣取士之路, 何害於義? 若更試, 則不與上言者, 幷試否乎? 試取之數幾何? 往議于領議政黃喜。" 喜曰: "上敎誠然, 然更試, 則當只取上書儒生, 其數則三四十中, 惟上所裁。" 上命取四十。 初於館試, 只取成均館赴學儒生, 其額外生徒及四部學生不與焉, 故曦等上言。
- 【태백산사고본】 23책 72권 2장 A면【국편영인본】 3책 670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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