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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69권, 세종 17년 8월 17일 병진 3번째기사 1435년 명 선덕(宣德) 10년

지돈녕부사 이징의 졸기

지돈녕부사(知敦寧府事) 이징(李澄)이 졸(卒)하였다. 의안 대군(義安大君) 이화(李和)의 아들이다. 나이 13세에 산원(散員)에 임명되어 낭장(郞將)·장군(將軍)을 지나서 원윤(元尹)에 임명되고, 중군 총제(中軍摠制)로 선발 등용되었다. 계사년에 나가서 순성(蓴成)을 지키고, 태안(泰安)을 겸해 다스렸다. 이때 임금의 수레가 남쪽으로 행차하니, 은 감사(監司)에게 청하지 않고 바로 행궁(行宮)으로 나아갔으므로, 감사가 장차 법으로써 다스리려고 했는데, 태종께서 명하여 순성을 체임시키고, 그를 머물러 호종(扈從)하도록 하였다. 얼마 아니 되어 우군 총제(右軍總制)에 임명되고, 여러 번 승진하여 정헌 대부(正憲大夫)에 이르렀다. 임인년 겨울에 나가서 경상좌도 도절제사·판좌군도총제부사(判左軍都總制府事)가 되고, 기유년 겨울에 정조사(正朝使)로 갔다가 돌아와서, 사건으로 이산(尼山)에 폄척(貶斥)되었다가 조금 후에 용서되어 돌아왔다. 이 본래 풍질(風疾)을 앓았는데, 병이 위급하매, 날마다 내의(內醫)를 보내어 진찰하도록 했더니, 이때에 와서 죽으니, 나이 61세이다. 부고가 위에 들리니, 조회를 2일 동안 폐지하고, 조문(弔問)하고 부의(賻儀)를 주고, 관(官)에서 장사(葬事)를 치르게 하였다. 이 두 아들이 있으니, 이의경(李義敬)이효경(李孝敬)이다. 시호는 양정(良靖)이니, 온량(溫良)하여 즐거움을 좋아함이 양(良)이고, 관락(寬樂)하여 고종명(考終命)한 것이 정(靖)이다.


  • 【태백산사고본】 22책 69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3책 648면
  • 【분류】
    인물(人物)

○知敦寧府事李澄卒。 , 義安大君 之子。 年十三授散員, 歷郞將將軍, 拜元尹, 擢中軍摠制。 癸巳, 出鎭蓴城, 兼理泰安。 時車駕南幸, 不請監司, 而直詣行宮, 監司將治以法, 太宗命遞蓴城, 留使扈從。 尋拜右軍摠制, 累階至正憲。 壬寅冬, 出爲慶尙道左道都節制使, 判左軍都摠制府事。 己酉冬, 奉使正朝還, 以事貶于尼山, 尋賜環。 素患風疾, 疾篤, 日遣內醫候視, 至是卒, 年六十一。 訃聞, 輟朝二日, 致弔致賻, 官庀葬事。 有男二, 義敬孝敬。 諡良靖, 溫良好樂良, 寬樂令終靖。


  • 【태백산사고본】 22책 69권 17장 B면【국편영인본】 3책 648면
  • 【분류】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