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감훈의》의 찬집관들에게 잔치를 베풀고 시를 짓게 하다
경회루(慶會樓) 아래에 나아가 《통감훈의(通鑑訓義)》의 찬집관(撰集官)인 예문관 대제학(藝文館大提學) 윤회(尹淮)·경창부 윤(慶昌府尹) 권도(權蹈)·예문 제학(藝文提學) 정인지(鄭麟趾)·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 설순(偰循)·이조 참의(吏曹參議) 이선(李宣)·집현전 부제학(集賢殿副提學) 김돈(金墩)·안지(安止)·동부승지(同副承旨) 권채(權採)·대사성(大司成) 유효통(兪孝通)·세자 좌보덕(世子左輔德) 최만리(崔萬理)·우보덕 박중림(朴仲林)·직제학(直提學) 안완경(安完慶)·직전(直殿) 김말(金末)·의정부 사인(議政府舍人) 허후(許詡)·봉상 소윤(奉常少尹) 신기(愼幾)·응교(應敎) 김신민(金新民)·이명겸(李鳴謙)·호군(護軍) 최효손(崔孝孫)·교리(校理) 유의손(柳義孫)·정창손(鄭昌孫)·호조 정랑(戶曹正郞) 이사증(李師曾)·부교리(副校理) 이계전(李季甸)·좌문학(左文學) 어효첨(魚孝瞻)·판관(判官) 신석견(辛石堅)·사직(司直) 황보양(皇甫良)·전 첨사(僉使) 유승유(柳升濡)·수찬(修撰) 김문(金汶)·부수찬(副修撰) 최항(崔恒)·감찰 노숙동(盧叔仝)·주부(注簿) 남수문(南秀文)·수찬(修撰) 이사철(李思哲)·부수찬 김순(金淳)·좌사경(左司經) 조석문(曹石門)·전 감찰(監察) 이원상(李元商)·박경손(朴慶孫)·부사직(副司直) 백효삼(白効參)·전 주부 오신지(吳愼之)·부령(部令) 김중종(金仲宗)·봉례(奉禮) 장근지(張謹止)·좌정자(左正字) 이계원(李季畹)·박사(博士) 유지(庾智)·사정(司正) 이보흠(李甫欽)·직장(直長) 김의몽(金義蒙)·정자(正字) 박팽년(朴彭年)·송처검(宋處儉)·이영서(李永瑞)·권지 정자(權知正字) 정자영(鄭子英)·간의대 제조(簡儀臺提調) 지중추원사 이천(李蕆)·낭청(郞廳) 판사(判事) 서인도(徐仁道)·직제학(直提學) 김빈(金賓)·부사직 조완벽(趙完壁)·부사정 신희(申熙)·교리 이순지(李純之) 등에게 잔치를 베풀었는데, 왕세자(王世子)와 여러 대군(大君)들이 시연(侍宴)하고, 도승지(都承旨) 신인손(辛引孫)·좌승지(左承旨) 정갑손(鄭甲孫)·좌부승지(左副承旨) 이견기(李堅基)·우부승지(右副承旨) 유수강(柳守剛) 등도 입시(入侍)하였다. 임금이 전대(前代)의 문신(文臣)인 이색(李穡)·정몽주(鄭夢周) 등의 경학(經學)의 아름다움을 고루고루 들면서 탄식하기를,
"지금은 어찌하여 훈고(訓詁)를 바르게 하는 사람도 없는가. 유생(儒生)들이 시학(詩學)을 좋아하지 않는 것은 오로지 내가 시학을 숭상하지 않기 때문이다. 사장(詞章)은 말예(末藝)이니 후세에 비록 ‘아무 시대에는 시학을 숭상하지 않았다. ’고 말하더라도 해될 것은 없다. 그러나, 예전의 성현(聖賢)들로서 시와 부(賦)에 겸하여 능하지 않은 이가 없었다. 나도 역시 시학에 뜻이 있다. 위에서 좋아하는 이가 있으면 누가 좋아하지 않겠는가."
하고, 인하여 잔치에 참예한 문신들로 하여금 각각 시(詩)를 짓게 하였다. 잔치를 파하매 윤회(尹淮) 등이 전문(箋文)을 올려 사은(謝恩)하였는데, 그 말에 이르기를,
"해[離日]가 중천(中天)하였으니, 크게 문명(文明)의 운수를 열었고, 구름[需雲]이 우택(雨澤)을 패연(霈然)히 내리니 편벽되게 총애(寵愛)의 융성함을 입었습니다. 영광과 감격이 실로 깊사와 놀랍고 두려워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엎드려 생각하옵건대, 신 등이 외람하게 말학(末學)으로 함께 좋은 때를 만났습니다. 재주는 삼장(三長)051) 이 없사온데 그릇 수교(讎校)052) 의 임무를 받았고, 공(功)은 촌효(寸効)도 없이 다만 시소(尸素)053) 의 기롱만을 더하였는데, 어찌 성상(聖上)의 은혜가 두루 용품(庸品)에 미칠 줄이야 생각인들 하였겠습니까. 빛나게 녹평(鹿苹)054) 의 잔치를 주시어 흡연(洽然)히 어수(魚水)055) 의 즐거움을 이루었습니다. 보좌(寶座)에 구름이 열렸으니 얼굴은 지척(咫尺)과 다름이 없삽고, 하상(霞觴)056) 에 봄이 가득하니 은택이 기부(肌膚)에 젖었습니다. 머리에는 찬란한 꽃을 꽂고, 귀에는 균소의 풍악[均韶之樂]057) 이 목메었습니다. 오직 오늘의 특이한 은수(恩數)는 진실로 예전에 드물게 듣는 일이오니, 이것은 대개 주상 전하께서 유정(惟精) 유일(惟一)하여 중도(中道)를 잡으시고, 시종여일(始終如一)하게 학문을 주장하시어, 요명(堯明)·순철(舜哲)의 신성(神聖)으로써 만기(萬機)를 재결(裁決)하시고, 한강(漢綱)·당목(唐目)의 규모(規模)를 상고하시어 백대(百代)를 감관(鑑觀)하심을 만나, 드디어 노둔한 바탕으로 하여금 큰 은혜를 입게 하셨습니다. 신 등은 삼가 마땅히 미로(微勞)를 굽어 다하여, 융성하옵신 부탁을 우러러 생각하옵니다. 이미 취하고 이미 배불렀사오니 이에 주아(周雅)058) 의 장(章)을 잇고, 수(壽)하옵시고 강(康)하옵시되, 항상 기주(箕疇)059) 의 복을 비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2책 68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3책 633면
- 【분류】출판-서책(書冊) / 왕실-의식(儀式) / 사상-유학(儒學) / 인물(人物) / 어문학-문학(文學)
- [註 051]삼장(三長) : 재·학·식(才學識)을 말함.
- [註 052]
수교(讎校) : 교정(校正).- [註 053]
시소(尸素) : 시위 소찬(尸位素餐)의 약어(略語)인데, 직책을 다하지 않고 자리만 차지하여 녹만 받아 먹는 일임.- [註 054]
녹평(鹿苹) : 시경(詩經)의 편명.- [註 055]
어수(魚水) : 군신간에 뜻이 합함을 말함.- [註 056]
하상(霞觴) : 신선이 사용하는 술잔.- [註 057]
○戊申/御慶會樓下, 宴《通鑑訓義》撰集官藝文館大提學尹淮、慶昌府尹權蹈、藝文提學鄭麟趾、同知中樞院事偰循、吏曹參議李宣、集賢殿副提學金墩ㆍ安止、同副承旨權採、大司成兪孝通、世子左輔德崔萬理、右輔德朴仲林、直提學安完慶、直殿金末、議政府舍人許詡、奉常少尹愼幾、應敎金新民ㆍ李鳴謙、護軍崔孝孫、校理柳義孫ㆍ鄭昌孫、戶曹正郞李師曾、副校理李季甸、左文學魚孝瞻、判官辛石堅、司直皇甫良、前食使柳升濡、修撰金汶、副修撰崔恒、監察盧叔仝、注簿南秀文、修撰李思哲、副修撰金淳、左司經曹石門、前監察李元商ㆍ朴慶孫、副司直白効參、前注簿吳愼之、部令金仲宗、奉禮張謹止、左正字李季畹、博士庾智、司正李甫欽、直長金義蒙、正字朴彭年ㆍ宋處儉ㆍ李永瑞、權知正字鄭子英、簡儀臺提調知中樞院事李蕆、郞廳判事徐仁道、直提學金鑌、副司直(趙完壁)〔趙完璧〕 、副司正申熙、校理李純之等。 王世子及諸大君侍宴, 都承旨辛引孫、左承旨鄭甲孫、左副承旨李堅基、右副承旨柳守剛等亦入侍。 上歷擧前代文臣李穡ㆍ鄭夢周等經學之美, 嘆曰: "何今時尙乏訓(誥)〔詁〕 之正者耶? 儒生不好詩學, 專由予不尙詩學之故也。 詞章末藝, 後世雖云某代不尙詩學, 固無害也。 然前古聖賢, 未有不兼能詩賦者, 予亦有意於詩學。 上有好者, 孰不好焉?" 仍令赴宴文臣各賦詩。 宴罷, 尹淮等進箋謝恩。 其辭曰:
離日中天, 誕啓文明之運; 需雲霈澤, 偏蒙寵渥之隆。 榮感實深, 驚惶罔措。 伏念臣等猥將末學, 共際昌辰。 才乏三長, 謬承讎校之任; 功無寸効, 只增尸素之譏。 何圖睿恩, 遍及庸品, 賁加鹿苹之宴, 洽成魚水之懽。 寶座雲開, 顔不違於咫尺; 霞觴春滿, 澤下洽於肌膚。 頭簪燦爛之花, 耳咽鈞韶之樂。 唯今日之異數, 諒前昔之罕聞。 玆蓋伏遇主上殿下, 精一執中, 終始典學。 以堯明舜哲之神聖, 裁決萬機; 稽漢綱唐目之規模, 鑑觀百代。 遂令駑質, 獲被鴻私。 臣等謹當俯竭微勞, 仰思隆委。 旣醉旣飽, 載賡《周雅》之章; 曰壽曰康, 恒祝箕疇之福。
- 【태백산사고본】 22책 68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3책 633면
- 【분류】출판-서책(書冊) / 왕실-의식(儀式) / 사상-유학(儒學) / 인물(人物) / 어문학-문학(文學)
- [註 0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