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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66권, 세종 16년 12월 24일 정묘 1번째기사 1434년 명 선덕(宣德) 9년

천추사 박신생이 칙서 세 통을 가지고 경사에서 돌아오다

천추사(千秋使) 박신생(朴信生)이 칙서 세 통을 싸서 받들고 경사에서 돌아왔다. 임금이 의장(儀仗)을 갖추어 세자 이하 여러 신하들을 거느리고 모화관에 거둥하여 칙서를 맞기를 의식과 같이 하였다. 그 첫째에 말하기를,

"지금 목란하(木蘭河) 등 위(衛)의 야인 지휘(指揮) 올고리(兀苦里) 등이 아뢰기를, ‘근자에 라리(剌里) 지역에 가서 흑룡강의 칠성(七姓) 야인들이 송화강을 건너서 조선국에 가서 침노한다는 말을 들었다. ’고 하였다. 짐(朕)이 생각하건대, 이 도적들이 간사하고 속이니 허위인지 사실인지의 여하는 알지 못하나, 이에 왕이 보내 온 사신이 돌아가는 편에 특별히 왕에게 일러 알게 하는 것이니, 왕은 변방을 지키는 관원에게 경계하여 밤낮으로 마음을 써서 방비하여, 소홀한 근심이 없게 하여 짐의 뜻에 부합하게 하라."

하였고, 그 둘째에 말하기를,

"왕이 먼젓번에 보내 온 반찬과 음식을 만드는 부녀자들이 모두 음식을 조화(調和)하는 것이 정하고 아름답고, 제조하는 것이 빠르고 민첩하고, 두부(頭腐)를 만드는 것이 더욱 정묘하다. 다음번에 보내 온 사람은 잘하기는 하나 전 사람들에게는 미치지 못하니, 칙서가 이르거든 왕이 다시 공교하고 영리한 여자 10여 인을 뽑아서, 반찬·음식·두부 등류를 만드는 것을 익히게 하여, 모두 다 정하고 숙달하기를 전번에 보낸 사람들과 같게 하였다가, 뒤에 중관을 보내어 국중에 이르거든 경사(京師)로 딸려 보내도록 하라."

하였고, 그 셋째에 말하기를,

"중국의 땅이 심히 더워서 비록 해청(海靑)이 있으나 기르기가 어려우니, 왕의 나라에서 해청을 잡을 수가 있거든 적당한 사람을 시켜 가져와서 짐(朕)의 한가한 시간에 날려 보는 소용에 이바지하게 하라. 그리고, 오는 사람을 시켜 중로에서 잘 살도록 보살펴 길러서 소루하고 실수함이 없게 하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1책 66권 27장 B면【국편영인본】 3책 606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야(野)

○丁卯/千秋使朴信生齎擎勑書三道, 回自京師, 上備儀仗, 率世子以下群臣, 幸慕華館, 迎勑如儀。 其一曰: "今得木蘭河等衛野人, 指揮兀苦里等奏: ‘近到剌里地面, 聞黑龍江七姓野人松花江, 欲去侵犯朝鮮國。’ 朕以此賊譎詐, 未知虛實如何, 玆因王差來使臣回, 特諭王知。 王可戒飾守邊官員, 晝夜用心隄備, 毋致疎虞, 庶副朕意。" 其二曰: "王先次所遣來製造饍羞婦女, 皆調和精美, 造辦便捷, 而作豆腐尤精妙。 後次所遣來者雖佳, 然皆不及前者。 勑至, 王可更選巧慧婦女十數人, 令巧習製作饌羞及造豆腐之類, 悉皆精熟如, 前次所遣者, 待後遣中官到國中, 就帶來京。" 其三曰: "中國地面炎熱, 雖有海靑, 難以喂養。 王國中有海靑, 可尋取差的當人進來, 以資朕暇時飛放之用, 仍令來人緣途好生, 照顧喂養, 毋致疎失。"


  • 【태백산사고본】 21책 66권 27장 B면【국편영인본】 3책 606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야(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