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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65권, 세종 16년 8월 11일 을묘 3번째기사 1434년 명 선덕(宣德) 9년

판우군도총제부사 정이오의 졸기

판우군도총제부사로 치사(致仕)한 정이오(鄭以吾)가 졸(卒)하였다. 이오의 자는 수가(粹可)요, 호는 교은(郊隱)이니, 경상도 진주 사람이다. 홍무(洪武) 갑인년에 급제하여 병진년에 예문 검열에 임명되고, 정사년에 삼사 도사에 제수되어 공조·예조 정랑, 전교 부령(典校副令) 등을 거쳐 갑술년에 선주(善州) 부사로 나갔다가, 무인년에 들어와서 봉상 소경(奉常小卿)이 되고, 건문(建文) 경진년에 성균 악정(成均樂正)이 되었다. 공정왕(恭靖王)태종을 왕세자로 삼았는데, 접견할 적에는 반드시 군사를 벌여 세워 호위하므로, 이오가 글을 올려 그 잘못을 지극히 말하니, 도진무 조온(趙溫)공정왕에게 아뢰어 국문하기를 청하므로, 사람들이 위태롭게 여겼는데, 이오가 말하기를,

"이미 왕세자가 되었으면 부자간인데, 어찌 부자로서 군사를 벌여 세우고 서로 볼 이치가 있으리오."

하였다. 이에 공정왕이 병권(兵權)을 모두 왕세자에게 주고 말하기를,

"군사를 진무하고 나라를 감독함은 세자의 직책이니, 이 유신(儒臣)의 말이 심히 합당하다."

하니, 사람마다 모두 하례하였다. 병조 의랑(議郞)·교서감·예문관 직제학·성균 사성 등을 거쳐 계미년에 성균관 대사성에 제수되고, 을유년에 공조 우참의에 임명되어 예조 우참의를 거쳐 정해년에 공안부 윤(恭安府尹)으로 나갔다가, 신묘년에 검교(檢校) 판한성부사가 되고, 예문관 대제학을 거쳐서 무술년에는 의정부 찬성으로 치사하였다가, 기해년에는 판우군도총제부사로 치사하여, 임인년에 풍질(風疾)로 앓으니, 두 임금께서 각각 의원을 보내어 치료하게 하였다. 이오는 성품이 질박하고 곧아 겉치레가 없고, 남의 과실을 말하기를 부끄러워하였으며, 살림을 일삼지 아니하였다. 스스로 과거를 보기 위하여 항상 목은(牧隱)포은(圃隱)의 문하(門下)에서 배워, 이미 동류들의 추앙하는 바가 되었다. 과거에 급제하여 높은 벼슬에 오름에 미쳐서는 항상 대제(待製)244) 의 직책을 띠었다. 그의 시문(詩文)은 준신아려(駿迅雅麗)하여 시험 과정의 작품[試科程品]에 이르러서도 조금도 그릇됨이 없었다. 그러나, 일을 처리하는 데에는 모자랐다. 죽음에 미쳐 이틀 동안 조시(朝市)를 정지하고, 치조(致弔)·치부(致賻)하였다. 시호는 문정(文定)이니, 배우기를 부지런히 하고, 묻기를 좋아함은 문(文)이요, 행실이 순수하여 어기지 아니함은 정(定)이다. 아들이 하나인데, 정분(鄭苯)이다.


  • 【태백산사고본】 21책 65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3책 586면
  • 【분류】
    인물(人物)

  • [註 244]
    대제(待製) : 임금의 교명(敎命)을 짓는 일.

○判右軍都摠制府事致仕鄭以吾卒。 以吾粹可, 號郊隱, 慶尙道 晋州人也。 中洪武甲寅科, 丙辰, 拜藝文檢閱, 丁巳, 除三司都事, 歷工禮兩曹正郞、典校副令, 甲戌, 出爲善州, 戊寅, 入爲奉常小卿。 建文庚辰, 除成均樂正。 恭靖王, 冊我太宗爲王世子, 接見則必陳兵衛, 以吾上書, 極言其非。 都鎭撫趙溫白于恭靖王, 請鞫問之, 人皆危之, 以吾曰: "旣爲王世子則父子也。 焉有父子而陳兵相見之理乎?" 於是恭靖王, 以兵柄盡授王世子曰: "撫軍監國, 世子之職。 此儒之言, 甚爲允當。" 人人皆賀。 歷兵曹議郞、校書監、藝文館直提學、成均司成, 癸未, 除成均大司成, 乙酉, 拜工曹右參議, 歷禮曹右參議, 丁亥, 進恭安府尹, 辛卯, 檢校判漢城府事, 歷藝文館大提學。 戊戌, 議政府贊成致仕, 己亥, 判右軍都摠制府事致仕, 壬寅, 患風疾, 兩上各遣醫治之。 以吾質直無華, 恥言人過失, 不事生産。 自爲擧子, 常遊牧隱圃隱之門, 已爲儕輩所推, 及擢第登顯仕, 常帶待製。 其爲詩文, 駿迅雅麗, 至於試課程品, 略無差失, 然短於處事。 及卒, 停朝市二日, 致弔致賻。 諡文定, 學勤好問文, 純行不爽定。 有子一, 曰


  • 【태백산사고본】 21책 65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3책 586면
  • 【분류】
    인물(人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