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중추원사 이천에게 주자를 만들어 책을 박도록 하다
지중추원사 이천(李蕆)을 불러 의논하기를,
"태종께서 처음으로 주자소(鑄字所)를 설치하시고 큰 글자를 주조(鑄造)할 때에, 조정 신하들이 모두 이룩하기 어렵다고 하였으나, 태종께서는 억지로 우겨서 만들게 하여, 모든 책을 인쇄하여 중외에 널리 폈으니 또한 거룩하지 아니하냐. 다만 초창기(草創期)이므로 제조가 정밀하지 못하여, 매양 인쇄할 때를 당하면, 반드시 먼저 밀[蠟]을 판(板) 밑에 펴고 그 위에 글자를 차례로 맞추어 꽂는다. 그러나, 밀의 성질이 본디 유(柔)하므로, 식자(植字)한 것이 굳지 못하여, 겨우 두어 장만 박으면 글자가 옮겨 쏠리고 많이 비뚤어져서, 곧, 따라 고르게 바로잡아야 하므로, 인쇄하는 자가 괴롭게 여겼다. 내가 이 폐단을 생각하여 일찍이 경에게 고쳐 만들기를 명하였더니, 경도 어렵게 여겼으나, 내가 강요하자, 경이 지혜를 써서 판(板)을 만들고 주자(鑄字)를 부어 만들어서, 모두 바르고 고르며 견고하여, 비록 밀을 쓰지 아니하고 많이 박아 내어도 글자가 비뚤어지지 아니하니, 내가 심히 아름답게 여긴다. 이제 대군들이 큰 글자로 고쳐 만들어서 책을 박아 보자고 청하나, 내가 생각하건대, 근래 북정(北征)으로 인하여 병기(兵器)를 많이 잃어서 동철(銅鐵)의 소용도 많으며, 더구나, 이제 공장들이 각처에 나뉘어 있어 일을 하고 있는데, 일이 심히 번거롭고 많지마는, 이 일도 하지 않을 수 없다."
하고, 이에 이천에게 명하여 그 일을 감독하게 하고, 집현전 직제학 김돈(金墩)·직전(直殿) 김빈(金鑌)·호군 장영실(蔣英實)·첨지사역원사(僉知司譯院事) 이세형(李世衡)·사인(舍人) 정척(鄭陟)·주부 이순지(李純之) 등에게 일을 주장하게 맡기고, 경연에 간직한 《효순사실(孝順事實)》·《위선음즐(爲善陰騭)》·《논어》 등 책의 자형(字形)을 자본으로 삼아, 그 부족한 것을 진양 대군(晉陽大君) 유(瑈)에게 쓰도록 하고,주자(鑄字) 20여 만 자(字)를 만들어, 이것으로 하루의 박은 바가 40여 장[紙]에 이르니, 자체(字體)가 깨끗하고 바르며, 일하기의 쉬움이 예전에 비하여 갑절이나 되었다.
- 【태백산사고본】 21책 65권 3장 B면【국편영인본】 3책 578면
- 【분류】출판-인쇄(印刷) / 출판-서책(書冊) / 왕실-국왕(國王) / 인사-임면(任免)
○丁丑/召知中樞院事李蕆議曰: "太宗肇造鑄字所, 鑄大字時, 廷臣皆曰: ‘難成。’ 太宗强令鑄之, 以印群書, 廣布中外, 不亦(違)〔偉〕 歟! 但因草創, 制造未精, 每當印書, 必先以蠟布於板底, 而後植字於其上。 然蠟性本柔, 植字未固, 纔印數紙, 字有遷動, 多致偏倚, 隨卽均正, 印者病之。 予念此弊, 曾命卿改造, 卿亦以爲難, 予强之, 卿乃運智, 造板鑄字, 竝皆平正牢固, 不待用蠟, 印出雖多, 字不偏倚, 予甚嘉之。 今者大君等, 請改鑄大字印書以觀, 予念近因北征, 頗失兵器, 銅鐵所用亦多, 矧今工匠分役各處, 務甚繁夥, 然此亦不可不爲也。" 乃命蕆監其事, 集賢殿直提學金墩、直殿金鑌、護軍蔣英實、僉知司譯院事李世衡、舍人鄭陟、注簿李純之等掌之。 出經筵所藏《孝順事實》、《爲善陰騭》、《論語》等書爲字本, 其所不足, 命晋陽大君 瑈書之, 鑄至二十有餘萬字, 一日所印, 可至四十餘紙。 字體之明正、功課之易就, 比舊爲倍。
- 【태백산사고본】 21책 65권 3장 B면【국편영인본】 3책 578면
- 【분류】출판-인쇄(印刷) / 출판-서책(書冊) / 왕실-국왕(國王) / 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