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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62권, 세종 15년 10월 28일 정축 2번째기사 1433년 명 선덕(宣德) 8년

술에 대한 폐해와 훈계를 담은 내용의 글을 주자소에서 인쇄하여 반포하게 하다

교지(敎旨)를 내리기를,

"대체로 들으니, 술[酒]을 마련하는 것은 술 마시는 것을 숭상하기 위한 것은 아니고, 신명(神明)을 받들고 빈객(賓客)을 대접하며, 나이 많은 이를 부양(扶養)하기 위한 것이다. 그런 까닭에, 제사 때에 술 마시는 것은 술잔을 올리고 술잔을 돌려주고 하는 것으로 절차(節次)를 삼고, 회사(會射) 때에 술 마시는 것은 읍양(揖讓)하는 것으로 예를 삼는다. 향사(鄕射)의 예는 친목(親睦)을 가르치기 위한 것이고, 양로(養老)의 예는 연령(年齡)과 덕행을 숭상하기 위한 것이다. 그렇건만 오히려 말하기를, ‘손과 주인이 백 번 절하고 술 세 순배를 돌린다. ’고 하였으며, 또 말하기를, ‘종일 술을 마셔도 취할 수 없다. ’고 하였으니, 선왕(先王)이 술의 예절을 제정할 때에 술의 폐해에 대비(對備)한 것이 더할 수 없이 극진하였다. 후세에 내려와서 풍속과 습관이 옛스럽지 않고, 다만 크게 많이 차리는 것만을 힘쓰게 된 까닭에, 금주(禁酒)하는 법이 비록 엄중하나 마침내 그 폐해를 구제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한탄스러움을 이길 수 있겠는가.

술의 해독은 크니, 어찌 특히 곡식을 썩히고 재물을 허비하는 일뿐이겠는가. 술은 안으로 마음과 의지(意志)를 손상시키고 겉으로는 위의(威儀)를 잃게 한다. 혹은 술 때문에 부모의 봉양을 버리고, 혹은 남녀의 분별을 문란하게 하니, 해독이 크면 나라를 잃고 집을 패망(敗亡)하게 만들며, 해독이 적으면 성품(性稟)을 파괴시키고 생명을 상실(喪失)하게 한다. 그것이 강상(綱常)을 더럽혀 문란하게 만들고 풍속을 퇴폐하게 하는 것은 이루 다 열거(列擧)할 수 없다.

우선 그 중에서 한두 가지 경계해야 할 것과 본받아야 할 것만을 지적하여 말하겠다. 상(商)나라주왕(紂王)주(周)나라여왕(厲王)은 술로 그 나라를 망하게 하였으며, 동진(東晉)의 풍속은 술 때문에 나라를 망하게 하였다. 정(鄭)나라의 대부(大夫) 백유(伯有)는 땅굴을 파서 집을 만들고 그 속에서 밤에 술을 마시다가 자석(子晳)에게 불태워져 죽었으며, 전한(前漢)의 교위(校尉) 진준(陳遵)은 매양 손님들과 크게 마시기를 좋아하여, 손이 오면 문득 손이 떠나가지 못하도록 문을 닫고 타고 온 수레를 움직일 수 없게 만들더니, 흉노(凶奴)에게 사자(使者)로 갔다가 술에 취하여 살해되었다. 후한(後漢)의 사예 교위(司隷校尉) 정충(丁沖)은 자주 제장(諸將)들에게 찾아 다니면서 술을 먹더니 창자가 썩어서 죽었으며, 진(晉)나라의 상서 우복야(尙書右僕射) 주개(周顗)는 술 한 섬을 거뜬히 마시었는데, 한번은 옛 술친구가 왔으므로 즐겨 함께 술을 마시고 몹시 취했다가, 술이 깨서 손[客]을 가 보게 하였더니, 손은 이미 갈비가 썩어서 죽어 있었다고 한다. 후위(後魏)하후사(夏候史)는 성질이 술을 좋아하여 상중(喪中)에 있으면서도 슬퍼하지 아니하며 좋은 막걸리를 입에서 떼지 않으니, 아우와 누이는 굶주림과 추위를 면치 못하였는데, 마침내 술에 취한 채 혼수상태로 죽었다. 이러한 일들은 진실로 경계해야 할 일들이다.

주(周)나라무왕(武王)주고(酒誥)를 지어 상(商)나라의 백성들을 훈계하였고, 위(衛)나라무공(武公)빈연(賓筵)의 시를 지어 스스로 경책(警責)하였다. 진(晉)나라 원제(元帝)가 술 때문에 정사를 폐하는 일이 많으니, 왕도(王導)가 깊이 경계하여 말하니, 임금이 술잔을 엎어 버리라고 명령하고 드디어 술을 끊었다. 원(元)나라태종(太宗)이 날마다 대신들과 함께 취하도록 술을 마시더니, 야율초재(耶律楚材)가 드디어 주조(酒槽)의 금속 주둥이를 가지고 가서 아뢰기를, ‘이 쇠[鐵]도 술에 침식(侵蝕)됨이 이와 같습니다. 더군다나, 사람의 내장[五臟]이 손상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하매, 황제가 깨닫고 좌우(左右)의 모시는 사람들에게 칙명(勅命)을 내려 날마다 술은 석 잔만 올리게 하여 끊었다. 진(晉)나라도간(陶侃)이 매번 술 마실 때에 일정한 한계가 있으므로, 어떤 사람이 조금만 더 먹으라고 권하니, 도간(陶侃)이 한참 동안 슬픈 얼굴을 하다가 말하기를, ‘소년 때에 술 때문에 실수한 일이 있어서, 돌아가신 아버지와 약속한 것이있습니다. 그래서 감히 그 약속한 한계를 넘지 못합니다. ’고 하였다. 유곤(庾袞)은 그의 아버지가 살았을 때에 항상 에게 술을 조심하라고 훈계하였더니, 그 뒤에 은 취할 때마다 문득 스스로 꾸짖어 말하기를, ‘내가 선인의 훈계를 저버리고 어찌 남을 훈계할 수 있겠는가.’ 하고, 드디어 아버지의 무덤 앞에 가서 스스로 매 20대를 쳤다고 한다. 이러한 일들은 진실로 본받을 만한 것이다. 또 우리 나라의 일을 가지고 말한다면, 옛날 신라포석정(鮑石亭)에서 패(敗)하고, 백제낙화암(落花巖)에서 멸망한 것이 술 때문이 아닌 것이 없다. 고려의 말기(末期)에는 상하가 서로 이끌고 술에 빠져 제멋대로 방자하게 굴다가 마침내 멸망하기에 이르렀으니, 이것도 또한 가까운 은감(殷鑑)이 되는 것이니 경계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생각하건대, 우리 태조께서 일찍 큰 왕업(王業)의 터전을 만드시고, 태종께서 이어 지으시어 정치와 교화(敎化)를 닦아 밝히시니, 만세에 지켜야 할 헌장(憲章)을 남기셨다. 군중이 모여 술 마시는 것을 금지하는 조문을 법령에 명시(明示)하여, 오래 물들었던 풍속을 개혁하고 오직 새롭게 하는 교화를 이룩하였다. 내가 부덕(不德)한 몸으로 외람되게 왕업(王業)을 계승하게 되매, 밤낮으로 조심하고 두려워하여 편안히 다스리기를 도모하되, 지나간 옛날의 실패를 거울로 삼고 조종(祖宗)의 이루어 놓은 법을 준수(遵守)하여, 예로써 보이고 법으로써 규찰(糾察)하였다. 나의 마음쓰는 것이 지극하지 않은 것이 없건만, 그대들 신민(臣民)들은 술때문에 덕(德)을 잃는 일이 가끔 있으니, 이것은 전조(前朝)의 쇠퇴하고 미약하였던 풍조가 아직 다 없어지지 않기 때문인 것이므로, 내가 매우 민망하게 여긴다. 아아, 술이 해독을 끼침이 이처럼 참혹하건만 아직도 깨닫지 못하니 또한 무슨 마음들인가. 비록 국가의 장래를 생각하지는 못할 망정, 제 한 몸의 생명도 돌아보지 않는단 말인가. 조정에 벼슬하는 신하인 유식(有識)한 자도 오히려 이와 같으니, 거리의 아랫 백성들이 무슨 일인들 안하겠는가. 형사 소송이 자주 일어나는 것은 이것에서 생기는 것이 많았다. 처음을 삼가지 않으면 말류(末流)의 폐해는 진실로 두려워할 만한 것이 될 것이다. 이것이 바로 내가 옛일을 고증(考證)하고 지금 일을 증거로 하여 거듭거듭 타이르고 경계하는 까닭이다. 그대들 중앙과 지방의 대소 신민(大小臣民)들은 나의 간절한 생각을 본받고 과거(過去) 사람들이 실패를 보아서 오늘의 권면(勸勉)과 징계를 삼으라. 술 마시기를 즐기느라고 일을 폐(廢)하는 일이 없을 것이며, 술을 과음(過飮)하여 몸에 병이 들게 하지 말라. 각각 너의 의용(儀容)을 조심하며 술을 상음(常飮) 말라는 훈계를 준수하여 굳게 술을 절제(節制)한다면, 거의 풍습(風習)을 변경시키기에 이를 것이다. 너희 예조에서는 이 나의 간절한 뜻을 본받아 중앙과 지방을 깨우쳐 타이르라."

하니, 예문 응교(藝文應敎) 유의손(柳義孫)이 기초한 글인데, 드디어 주자소(鑄字所)에 명령하여 인쇄하여 중앙과 지방에 반포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0책 62권 9장 B면【국편영인본】 3책 523면
  • 【분류】
    식생활-주류(酒類) / 사법-법제(法制) / 역사-고사(故事) / 역사-전사(前史)

○敎旨:

蓋聞酒醴之設, 非以崇飮, 所以奉神明、享賓客、養高年者也。 是以因祭而飮, 以獻酬爲節; 因射而飮, 以揖讓爲禮。 鄕射之禮, 所以敎親睦也; 養老之禮, 所以尙齒德也。 然猶曰: "賓主百拜而酒三行。" 又曰: "終日飮酒而不得醉。", 則先王所以制酒禮, 而備酒禍者至矣盡矣。 降及後世, 俗習不古, 惟荒腆是務, 故禁酒之法雖嚴, 而終不能救其禍, 可勝歎哉? 夫酒之爲禍甚大, 豈特糜穀費財而已哉? 內〔弱〕 心志, 外喪威儀, 或廢父母之養, 或亂男女之別, 大則喪國敗家, 小則伐性喪生, 其所以瀆亂綱常, 敗毁風俗者, 難以枚擧, 姑指其一二可戒可法者言之。 商辛周厲, 以此而亡其國, 東之俗, 以此而亡人之國。 大夫伯有窟室夜飮, 卒爲子晳所焚。 前校尉陳遵每大飮賓, 輒關門投轄, 使于匈奴, 醉而遇害。 後司隷校尉丁冲, 數過諸將飮酒, 爛腸而死。 尙書右僕射周顗, 能飮酒一石, 偶有舊(對)〔帶〕 來, 欣然共飮大醉, 及醒使視, 客已腐脅而死。 後 夏侯史性好酒, 居喪不戚, 醇醪不離於口, 弟妹不免飢寒, 於是昏酣而死, 此誠可戒者也。 周武王《酒誥》之書, 以訓民; 衛武公《賓筵》之詩, 以自警責。 元帝頗以酒廢事, 王導深以爲言, 帝命引觴覆之, 遂絶。 太宗日與大臣酣飮, 耶律楚材乃持酒槽金口進曰: "此鐵爲酒所蝕, 尙致如此, 況人之五臟, 有不損耶?" 帝悟, 因勑左右, 日進酒三鍾而止。 陶侃每飮酒有定限, 或勸少進, 悽愴良久曰: "年少曾有酒失, 亡親見約, 故不敢踰。" 庾袞父在, 常戒以酒後每醉, 輒自責曰: "予廢先人之訓, 何以訓人!" 乃於墓前, 自杖二十, 此誠可法者也。 且以我國之事言之。 昔新羅之敗於鮑石亭, 百濟之滅於落花巖, 靡不由此, 而高麗之季, 上下相師, 沈湎自恣, 竟底於亡, 此亦鑑之不遠也, 可不戒哉? 惟我太祖肇造丕基, 太宗繼述, 修明政敎, 垂憲萬世, 群飮之禁, 著在令甲, 以革舊染之俗, 以致維新之化。 予以否德, 叨承丕緖, 夙夜祗懼, 以圖治安, 鑑往昔之覆轍, 遵祖宗之成憲, 示之以禮, 糾之以法。 予之用心, 非不至也, 而惟爾臣民, 以酒失德者, 比比有之。 是前朝衰微之風, 猶未殄絶, 予甚憫焉。 嗚呼! 酒之釀禍, 若是之慘, 而尙不覺悟, 亦何心哉? 縱不能以國家爲念, 獨不顧一身之性命乎? 朝臣有識者, 尙且如此, 閭巷小民, 何所不至? 獄訟之興, 多出於此。 始之不謹, 則末流之弊, 誠可畏也。 此予之所以考古證今, 反覆告戒者也。 咨爾中外大小臣民, 其體予至懷, 視前人之得失, 爲今日之勸戒, 毋好飮以廢事, 勿過飮以成疾。 各敬爾儀, 式遵無彝之訓; 剛制于酒, 庶臻於變之風。 惟爾禮曹, 體此至意, 曉諭中外。

藝文應敎柳義孫之辭也。 遂命鑄字所模印, 頒于中外。


  • 【태백산사고본】 20책 62권 9장 B면【국편영인본】 3책 523면
  • 【분류】
    식생활-주류(酒類) / 사법-법제(法制) / 역사-고사(故事) / 역사-전사(前史)