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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62권, 세종 15년 10월 14일 계해 1번째기사 1433년 명 선덕(宣德) 8년

사신의 인친에 대한 관직 청탁·해청의 진상 등에 관해 논의하다

태평관에 거동하여 익일연(翌日宴)을 베풀었다. 임금이 먼저 어실(御室)에서 연(輦)을 내려 좌우의 사람들을 물리치고, 비밀히 도승지 안숭선에게 명령하여 가서 의정부와 육조 판서 이상에게 의논하기를, 그 첫째는,

"태종 때에 황엄(黃儼)이 봉명 사신(奉命使臣)으로 와서 대신을 능욕(陵辱)하며 방자한 행동이 꺼림이 없었으므로, 그때의 대신들이 그의 소행(所行)을 자세히 써서 중국의 조정에 보내려고 하는 것을, 태종이 여러 사람들의 논의를 거부하고, 그가 요구하는 것은 무엇이나 들어 주지않는 것이 없었다. 그리하여, 임금이 친히 입고 있던 모의(毛衣)를 주기까지 하니, 대신 하윤(河崙) 등이 속으로 후대(厚待)가 지나치다고 생각하였다. 그러한 끝에 황엄(黃儼)태종에게 대하여 공경하고 삼가며 화순하고 즐겨 하는 빛이 있었다. 같이 온 해수(海壽) 등은 황엄에게는 후하게 하고 자기들에게는 박(薄)하게 한다고 하여 성낸 빛을 얼굴에 나타낸 일까지 있었다. 과인(寡人)의 때에 이르러서는, 윤봉(尹鳳) 등이 봉명 사신으로 왔으므로 나도 또한 모포(毛袍)·모화(毛靴)를 증여하곤 하였다. 기유년에 이르러 칙서(勅書)가 내린 뒤로는 중국 조정의 법을 두렵게 여겨 모든 요구를 단연코 들어 주지 않았더니, 신해년 가을에 칙서를 내려 말하기를, ‘만약 춥고 싸늘한 때를 만나면 옷과 신[靴]을 주는 것이 좋겠다. ’고 하였으므로, 이것으로 인하여 옷과 신을 주게 되었다. 지금 창성(昌盛)이 일을 맡고 있는 것을 본국이 기뻐하지 않는다. 또 성(盛)의 사람됨이 간사하고 정직하지 않다. 전번에 왔을 때에는 황제가 상으로 우리에게 하사한 단자(段子)를, 자기가 사사로이 가지고 있던 좋지 못한 비단으로 그 좋은 비단을 바꿨으며, 이번에도 또한 2필을 바꿨으니 그 마음의 정직하지 않음은 말할 수가 없다. 또 엄(儼)은 충성한 마음이 있었으나, 성(盛)은 단지 자신의 사사로운 일을 추구하는 것일 뿐 전하께 충심을 다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盛)은 병자년에서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안 오는 해가 없으며, 또 우리 나라의 일은 중국 조정에서 창성(昌盛)에게 전적으로 맡기고 있다. 내가 친히 착용(着用)하는 초피(貂皮)의 표의(表衣)를 주고자 하는데 어떤가."

하니, 숭선이 아뢰었다.

"장차 대신들에게 의논한 뒤에 결정할 일이겠으나, 신의 생각으로는 칙서(勅書)가 있은 이후에도 오히려 모의 2벌과 옷과 신을 주었으니, 이것만으로도 또한 법 외의 일입니다. 이것은 진실로 후하고도 융숭한 대접이니, 어찌 반드시 성상의 털옷을 더 주어야 하겠습니까. 주지 않는 것이 사리(事理)에 맞겠습니다."

하매, 임금이 말하기를,

"네 말이 옳다. 그러나 이 뜻을 가지고 대신들에게 의논하라."

하였다. 황희 등의 논의는 숭선의 의견과 다름이 없고, 허조는,

"성상의 말씀대로 주는 것도 또한 좋을 것 같습니다."

하매, 임금이 말하기를,

"내 다시 생각해 보겠다."

하였다. 그 둘째는,

"장봉(張奉)이 말하기를, ‘이사문(李思文)은 나의 족속(族屬)입니다. ’고 하였다. 사문은 사람됨이 마음과 행동이 모두 남과 같지 않아서 하는 짓이 다 악하기만 하기에, 그를 죄주고자 한 것이 오래였으나, 다만 윤봉(尹鳳)의 청탁이 있으므로 그에게 벼슬을 제수하였더니, 전번에 마패(馬牌)를 깨뜨린 사건으로 죄를 받고 현직에서 파면되었다. 이번 장봉(張奉)이 이미 그가 죄를 짓고 한산인(閑散人)이 된 것을 알고, 드디어 ‘사문은 나의 족속입니다. ’고 말한 것이다. 나는 관반(館伴) 노한(盧閈)에게 시켜서 봉(奉)의 친아우 장인의(張仁義)에게 비밀히 물어 보게 하여, 그의 족속 관계와 근각(根脚)을 자세히 안 뒤에, 만약 정말 그의 족친이라면 사문(思文)이 비록 악할지라도 모르는 체하여 내버려 둘 것이고, 만약 그것이 거짓 족친으로 꾸민 것이라면 이미 내린 교지(敎旨)에 의거하여 법대로 처벌하려고 하는데 어떤가."

하니, 모두가

"좋습니다."

하였다.

그 셋째는,

"이상(李祥)이, 그의 아버지 이정(李亭)을 삼품관으로, 그의 아우 이달(李達)을 사품관으로 하여 주기를 바란다. 그러나 우리 나라의 관작(官爵)은 매우 귀중한 것이어서 비록 자품(資品)하나, 위계(位階) 하나일지라도 차례를 뛰어넘을 수는 없는 것이므로, 나는 을 사품 행 사직(四品行司直)에, 달(達)을 사직(司直)에, 장봉(張奉)의 아버지 장원부(張元富)를 부사직(副司直)에, 아우 장인의(張仁義)를 부사정(副司正)에 임명하고자 하는데 어떤가."

하니, 모두가 아뢰기를,

"달(達)은 사정(司正)으로서 육품을 뛰어넘어 사직이 되고, 원부(元富)는 본래 관직이 없는 사람으로서 다 차례를 뛰어넘어 벼슬을 받게 되어서 온당하지 못할 것 같습니다. 달(達)을 부사직(副司直)으로, 원부를 사정(司正)으로 하게 하소서."

하고, 황희의 의견도 같으나, 다만 장원부는 나이 늙었으니 임금의 말씀대로 부사직을 제수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매, 임금이 황희의 의견에 따랐다.

그 넷째는,

"장봉(張奉)의 부모에게 내리는 의복은 그의 아우 장인의(張仁義)에게 주어서 보내면, 그 아우가 반드시 에게 이야기할 것이니, 이 듣고 나서 그 아우를 시켜 가져가게 하거나, 혹은 자신이 친히 가져가거나 하여 처리할 것이니, 이렇게 하는 것이 좋겠는가, 아닌가."

하니, 모두가 좋다고 말하였다. 이날 의 부모에게 각종(各種)의 의복을 하사하여 의 아우 인의(仁義)에게 주었다.

그 다섯째는,

"우리 나라에서 이미 해청 8연을 포획하였는데, 이번에 온 칙서에는, ‘왕의 곳에 좋은 해청(海靑)이 있다니 두어 연을 구해서 창성(昌盛)에게 부쳐 가져오게 하라. ’고 하였다. 내가 생각하기를, 천하의 주인으로서 이미 두어 연이라고 칙서에 썼으니, 마땅히 6연만을 진헌하는 것이 좋겠다고 하고, 즉일에 대신들과 의논하여 5연만을 진헌하기로 정하고, 나머지 3연은 중국 사신에게 알리지 않기로 하였었다. 그러나 내가 다시 생각하여 보니, 해청을 포획하는 것은 오로지 진헌하기 위한 것인데, 만약 다 진헌하지 않는다면 마음에 미안한 생각이 있으므로 다시 대신들에게 의논하게 하였더니, 어떤 이는 다 바치는 것이 좋다고 하고, 어떤 이는 말하기를, ‘이미 칙서에 두어 연이라고 하였으니 잡은 수대로 다 진헌할 까닭은 없다.’ 하였다. 안숭선(安崇善)이 말하기를, ‘매나 개는 한때의 애완 동물[玩好物]입니다. 임금께서는 매나 개를 좋아하지 않으며, 또 옛날에 야인 권두(權豆)가 발톱이 부러진 해청을 진상하였을 때에 발톱이 부러졌다고 하여 진헌하지 않았더니, 뒷날 창성(昌盛)이 듣고 말하여서 성상께서 염려하신 일이 있습니다. 이제 이미 진헌을 위하여 잡은 해청이니, 비록 두어 연이 넘더라도 모두를 다 진헌하면 뒤에 아무런 근심이 없을 것이며, 마음도 또한 쾌(快)할 것입니다. ’고 하였는데, 이 말도 또한 옳으니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겠는가."

하니, 모두가 아뢰기를,

"만약 다 진헌한다면 일은 정당하게 처리되고 마음에는 부끄러울 것이 없겠습니다."

하매, 임금이 말하기를,

"다 진헌하는 것만 같지 못하다. 다시 다른 의심이 있을 수 없다."

하였다.

그 여섯째는,

"예전에 내관 백언(白彦)이 봉명 사신으로 왔을 때에, 의 아버지가 지방에 있었는데, 그때 허조(許稠)가 헌의하기를, ‘백언(白彦)의 아버지를 서울로 데려다가 집과 자산(資産)을 갖추어 주면, 언(彦)이 지방을 왕래하는 폐단이 없을 것입니다. ’고 하였다. 백언이 나왔을 때에는 이미 서울에 집을 영조하여 놓았는데, 이 또 고향에 집을 짓게 되어 안팎으로 폐해를 입은 일이 있다. 이 일로 인하여 이상(李祥)의 아버지를 데려오게 하지 않았더니, 이제 관반(館伴) 노한(盧閈)이 아뢰기를, ‘이상의 아버지를 즉시 불러 와서 이상(李祥)충청도에 왕래하는 폐단을 없애야 되겠습니다. ’고 하였는데, 이 논의는 어떠한가."

하니, 황희 등이 아뢰기를,

"부자의 정은 천성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상(祥)의 아버지가 올 때에는 다만 단기(單騎)로 오게 되어 그 폐단이 조금 적을 것이니, 마땅히 불러 오게 하여 그 아들을 보게 하여야 되겠습니다."

하매, 그대로 따랐다.

그 일곱째는,

"전에 상(祥)이 나왔을 때의 의 아버지에게 쌀과 콩을 각각 20석씩 주었다. 이번에도 전례에 좇아 주겠으니, 경 등(卿等)은 그리 알라."

하고, 즉시 숭선(崇善)에게 명령하기를,

"의 아버지가 서울에 도착하기를 기다려서 다시 계주(啓奏)하여 주게 하라."

고 하였다. 이날에 환궁(還宮)하여 장원부(張元富)에게 중군 부사직(中軍副司直)을, 이정(李亭)에게 사재 부정 행 좌군 사직(司宰副正行左軍司直)을, 장인의(張仁義)에게 좌군 부사정(左軍副司正)을, 이달(李達)에게 우군 부사직(右軍副司直)을 제수(除授)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20책 62권 4장 A면【국편영인본】 3책 520면
  • 【분류】
    외교-명(明) / 인사-임면(任免) / 왕실-사급(賜給)

○癸亥/幸太平館, 設翌日宴。 上先下輦于御室, 辟左右, 密命都承旨安崇善, 往議于議政府六曹判書以上: 其一曰: "太宗時, 黃儼奉使而來, 陵辱大臣, 恣行無忌。 其時大臣備書所行, 將欲呈省, 太宗排斥群議, 凡諸所求, 無不聽從, 至給親御毛衣, 大臣河崙等, 意謂過厚。 厥終, 太宗, 有敬愼和悅之形。 同來海壽等, 嫌其厚於而薄於己, 慍形於色。 逮及寡躬, 尹鳳等奉使而來, 予亦贈毛袍毛靴。 至己酉年降勑後, 畏朝廷之法, 凡有求索, 斷不聽從。 辛亥秋, 降勑曰: ‘如遇寒冷, 合用衣靴。’ 因是贈與衣靴。 今昌盛任事, 非本國之喜, 且之爲人, 譎而不正, 前者來時, 賞賜段子, 以其私藏不善之段, 換其善者, 今亦換二匹, 其心之不正, 未足道也。 且則有忠心, 則但求自己之私事, 非盡忠於上者也。 然自丙午年至于今, 無歲不來, 且本國之事, 朝廷專委之於, 予欲給親御貂表, 何如?" 崇善啓曰: "將議于大臣後決定, 然臣意謂勑書以後, 尙給毛衣二件及衣靴, 是亦法外之事, 是固接之厚而待之隆也。 何必加給御貂裘乎? 理宜不給。" 上曰: "爾言是矣。 然將此意, 議于大臣。" 黃喜等議, 與崇善言無異。 許稠曰: "依上敎贈給, 似亦可也。" 上曰: "予更思之。" 其二曰: "張奉言: ‘李思文, 予之族屬。’ 思文爲人, 心行不類, 所爲皆惡, 欲罪之久矣, 只緣尹鳳請而除職。 前者以馬牌裂破, 得罪就閑, 今旣知得罪就閑, 乃曰: ‘思文, 吾之族屬。’ 予欲使館伴盧閈, 密問之親弟張仁義, 審知族派根脚, 如其族親, 則思文雖惡, 置之勿論, 如其假做族屬, 則依已降敎旨, 置之於法, 如何?" 僉曰: "可。" 其三曰: "李祥欲使其父爲三品, 弟爲四品, 然本朝官爵甚貴, 雖一資一級, 不可越等。 予欲以爲四品行司直, 爲司直, 張奉之父元富爲副司直, 弟仁義爲副司正, 何如?" 僉曰: "則以司正越六品司直, 元富本無職事, 而皆越等受職, 似爲未便。 以爲副司直, 元富爲司正。" 黃喜議同, 但元富年老, 依上敎授副司直可也。 上從議。 其四曰: "張奉父母處衣服, 授其弟仁義而送之, 則其弟必達於, 聞之, 則令其弟齎送, 或親自齎去, 必有區處。 以此言之, 可乎否?" 僉曰: "可。" 是日, 賜父母各色衣服, 授其弟仁義。 其五曰: "本國已捕海靑八連, 今來勑書: ‘王處有好海靑, 可尋數連, 付昌成帶來。’ 予思以天下之主, 旣勑曰數連則宜進獻六連。 卽日議于大臣, 以五連爲定, 餘三連不告天使。 予更思之, 捕鷹專爲進獻, 若不盡進獻, 心有未安, 更議于大臣, 或曰: ‘宜盡進獻。’ 或曰: ‘旣勑數連, 則不宜盡數。’ 安崇善言: ‘鷹犬, 一時玩好之物, 上不好鷹犬。 且昔者野人 權豆, 進折爪海靑, 其時以折爪不進, 後日昌盛聞而言之, 上動念。 今旣爲進獻而捕, 則雖過數連, 竝皆進獻, 則後必無患, 而心亦快矣。’ 此言亦是, 處之如何?" 僉曰: "若皆進獻, 則事得其宜, 而心無愧怍矣。" 上曰: "不如盡獻, 更無他疑。" 其六曰: "昔者內官白彦奉使而來, 之父在外。 其時許稠獻議曰: "白彦之父率來京中, 備給居産, 則無外方來往之弊。’ 及出來, 旣營京第, 又營鄕家, 內外受弊。 因此李祥之父, 不使率來。 今館伴盧閈啓曰: ‘李祥之父, 須卽招來, 以除忠淸往來之弊。’ 此議何如?" 黃喜等曰: "父子之情, 出於天性, 父之來, 只以單騎, 其弊稍簡, 宜使招來, 以見其子。" 從之。 其七曰: "昔出來時, 給父米豆各二十石。 今依前規以給, 卿等知之。" 卽命崇善, 待父到京, 更啓以給。 是日還宮, 除張元富中軍副司直, 李亭司宰副正、行左軍司直, 張仁儀左軍副司正, 李達右軍副司直。


  • 【태백산사고본】 20책 62권 4장 A면【국편영인본】 3책 520면
  • 【분류】
    외교-명(明) / 인사-임면(任免) / 왕실-사급(賜給)