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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61권, 세종 15년 8월 13일 계사 1번째기사 1433년 명 선덕(宣德) 8년

경연에 나아가 《성리대전》을 강론하고, 칠월시를 만들라 하다

경연에 나아가 《성리대전(性理大全)》을 강론하는데,

"성음으로 귀를 수양하고 채색으로 눈을 수양한다."

는 데에 이르러서 임금이 말하기를,

"옛날 주나라가 융성할 때에는 문물이 크게 정비되어서 성음과 채색의 수양을 중하게 여기었는데, 내가 생각하기를 주나라의 평화한 시절에 있어서는 좋지마는 후세에 있어서는 성음이 사치에 빠지기 쉬우니 마땅히 이것으로 경계를 삼아야 할 것이다."

하고, 또

"소반·주발·기명들도 모두 삼가는 것이 있다."

는데에 이르러서 임금이 말하기를,

"기명 따위의 삼가는 것은 눈에 보이는 것으로 마음을 깨우침에 진실로 유익한 것이다. 내가 빈풍칠월도(豳風七月圖)를 보고 그것으로 해서 농사짓는 일의 힘들고 어려움을 살펴 알게 되었는데, 나는 보고 듣는 것을 넓혀서 농사일의 소중한 것임을 약간 알지마는, 자손들은 깊은 궁중에서 생장하여 논밭 갈고 곡식 가꾸는 수고로움을 알지 못할 것이니, 그것이 가탄할 일이다. 예전에는 비록 궁중의 부녀들이라도 모두 누에치고 농사짓는 책을 읽었으니, 빈풍(豳風)에 모방하여 우리 나라 풍속을 채집하여 일하는 모습을 그리고 찬미하는 노래를 지어서, 상하 귀천이 모두 농사일의 소중함을 알게 하고 후손들에게 전해 주어서 영원한 세대까지 보아 알게 하고자 하니, 너희들 집현전에서는 널리 본국의 납세·부과금·부역·농업·잠업 들의 일을 채집하여 그 실상을 그리고, 거기에 노래로 찬사를 써서 우리 나라의 칠월시(七月詩)121) 를 만들라."

하니, 지신사 안숭선이 아뢰기를,

"신이 의기도(欹器圖)를 얻어서 벽에다 걸어 놓고 드나들 때마다 그것을 보오니 역시 꽤 많은 수양이 되옵니다. 대체로 대갓집[世家] 자손만 해도 할아버지나 아버지의 유덕을 입어서 부양으로 생장하여 오히려 농업과 잠업의 어려움을 알지 못하거든, 하물며 궁궐의 안에만 깊이 있어서 어찌 아래 백성의 농촌 고생을 알겠나이까. 분부하신 대로 칠월시를 모방하여 그림 편찬이 이루어지면 한때에만 유리할 뿐이 아니라, 실로 또한 만대의 미담이 될 것이옵니다."

하니, 임금이

"그렇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61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3책 499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출판-서책(書冊) / 풍속-풍속(風俗)

  • [註 121]
    칠월시(七月詩) : 본보기 될 농가월령가.

○癸巳/御經筵。 進講《性理大全》, 至"聲音以養其耳, 采色以養其目。" 上曰: "昔在成之盛, 文物大備, 重其聲音采色之養。 予以爲在成中和之時則可矣, 其在後世, 聲音易失奢, 宜當以此爲戒。" 又至"盤盂器皿皆有戒。", 上曰: "器皿之戒, 接目警心, 誠有益焉。 予觀《豳風七月圖》, 因此而省念稼穡之艱難。 予則廣其視聽, 稍知農事之爲重, 子孫生長深宮, 不識耕耘之苦, 是可歎已。 古者雖宮中之婦女, 皆讀蠶農之書, 欲倣《豳風》採我國風俗, 圖形贊詩, 使上下貴賤皆知農務之重, 傳之後嗣, 永世監觀。 惟爾集賢殿博採本國貢賦徭役農桑之事, 圖其形狀, 仍贊以詩歌, 以成我國七月之詩。" 知申事安崇善啓曰: "臣得欹器圖, 掛之壁上, 出入觀之, 頗亦脩省。 夫世家子孫, 席祖父蔭, 生於豢養, 猶不知農桑之艱, 況深居九重之邃, 安知小民草野之苦乎? 依上敎倣《七月詩圖》撰成, 則非徒有利於一時, 抑亦萬世之美談。" 上曰: "然。"


  • 【태백산사고본】 19책 61권 24장 A면【국편영인본】 3책 499면
  • 【분류】
    왕실-경연(經筵) / 출판-서책(書冊) / 풍속-풍속(風俗)