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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61권, 세종 15년 7월 27일 무인 1번째기사 1433년 명 선덕(宣德) 8년

신개·송포·홍상검 등을 불러 사헌부에서 올린 글에 관해 말하다

대사헌 신개·집의 송포(宋褒)·지평 홍상검·정잠 등을 부르고, 사정전에 나아가 지신사 안숭선을 불러 보고 말하기를,

"이제 사헌부에서 올린 글에 이르기를, ‘근기 지방에서는 궂은 장마가 재해를 일으키고, 경상·전라도에는 역시 오랜 가물로 인하여 파종하는 일이 때를 잃었으니, 이것은 곧 천심이 인애하여서 꾸지람함을 보인 것이온즉, 청컨대 꾸지람하는 하늘 뜻을 받아들어서 토목의 공사를 덜어 줄이고, 여러 도의 수재·한재에는 사람을 시켜 조사해 밝히고, 민간의 질고와 수령의 불법함을 무시로 사람을 보내어 들추어내자. ’고 하였으니, 그 말이 성심에서 나온 것이므로 내가 매우 아름다이 여기지마는, 지리의 일 같은 것에 있어서는 예와 이제의 제왕이 혹은 현명하고 혹은 혼암하며, 신하들의 올리는 말도 옳은 것이 있고 그른 것이 있으므로, 채택하여 쓰고 안 쓰는 것은 모두 그때의 임금에 있는 것인데, 이제 사헌부의 아뢴 말에 지리의 술법은 요괴하고 허망하여 경전에 보이지 아니하므로 유식한 선비들이 모두 말하기를 부끄러워하는 것이라 하였으니, 이 말은 과한 것이다. 우리 태조께서 개국하셔서 한양에 도읍을 정하시고 궁궐을 영건하시며 종묘를 세우심에 모두 지리를 쓰셨고, 건원릉에 이르러서도 지리를 썼으니, 이는 곧 우리 나라는 지리의 학설을 외면할 수가 없는 것이다. 장래의 일로 말한다면 국가에 혹시라도 변고가 있으면 다만 물 깊고 흙 두터운 것만을 취하고 지리를 쓰지 아니하겠는가. 부모 장사에 땅을 정할 때 대소 관료들이 모두 지리를 쓰면서 그래도 정밀하지 못할까 봐 걱정들을 하니, 지금 내가 이 말을 하는 것은 그 아뢴 말이 행하는 것과 다르기 때문이다. 예전에 당나라 헌종이 신선을 좋아하여 천하에 조서를 내리어 방사(方士)를 구하여 유필(柳泌)로 태주 자사(台州刺史)를 삼으매, 여러 신하가 반대해 아뢰기를, ‘임금으로서 방사를 좋아하되 그로 하여금 백성을 다스리게 한 임금은 있는 예가 없다. ’고 한즉, 헌종의 말이 한 고을의 힘을 써 가지고 능히 임금을 위하여 오래 살게 한다면 신하로서도 역시 무엇이 아까울 것이냐 하여서, 신하들이 감히 말하지 못하였는데, 지금에 와서 본다면 신하들의 말이 옳았고 헌종의 대답이 실수였다. 본조의 신하인 공부(孔俯)가 역시 신선 구하는 것으로 태종께 말하였으나, 태종께서 허락치 아니하셨는데, 이는 곧 고금의 사람들이 다 신선은 허탄하고 요망한 것임을 알기 때문에, 신하나 백성들이 다 일삼아 하지 않은 것이다. 지리의 말 같은 것은 그렇지 아니하니, 주 문공(朱文公)이나 채계통(蔡季通)은 세상의 이름난 선비이지만 그 죽을 때에 이르러서는 몸소 묻힐 땅을 정하였었다. 만약 지리의 말을 쓰지 않는다면 모르거니와, 그것을 쓸 것 같으면 주장되는 용과 가지되는 용을 불가불 알아야 한다. 제생원의 터가 주장되는 용과 가지되는 용이 된다면 비록 궁궐은 짓지 않는다 할지라도 나무를 심게 하여 그 땅을 가꾸는 것이 가할 것이지, 어찌 신하나 서민으로 살게 할 수 있겠는가. 최양선이 공부한 바를 가지고 숨김 없이 극력 말하는 것은 충성이겠거늘, 어찌 그것을 매개로 승진하려 한다고 논란하여 죄책을 가하려고 하는가. 하물며 임금으로서는 포용하는 것으로 아량을 삼는 것이어서, 비록 꼴베는 사람의 말이라도 또한 반드시 들어 보아서 말한 바가 옳으면 채택하여 받아들이고, 비록 맞지 아니하더라도 또한 죄주지 않는 것이 아래의 사정을 얻어 알고 자신의 총명을 넓히게 되는 것인데, 이제 말을 올린 사람을 죄주려 하는 것은 나로 하여금 아래의 사정을 듣지 못하여 몽매한 데로 빠지게 하자는 것이냐. 대간의 말이 과연 이럴 수 있는가. 하물며 신효창은 내가 가서 보라고 명령했는데 그것도 승진을 희망해서 그리 한 것이냐. 또 경복궁은 주작이 허하고 명당에 물이 없으므로 개천을 파고 나무를 심으려 하는 것인데, 이것이 나라에 유익한 것이 아니냐. 근일에 혹은 글을 올리어 양선을 배척하는 자도 있고, 혹은 면대하여 나무라서 양선을 비난하는 자도 있어서 내가 매우 그르게 여기는데, 이제 대사헌은 국가의 대체도 알고 또 친히 나의 말을 들었거늘, 어찌하여 일의 시종을 생각지 아니하고 급작스레 글을 올려 아뢰는가. 가사 집현전에서 풍수학을 강습하는 것은 그르다 할지라도 풍수학을 강명하는 것이 어찌 유자의 분수 밖의 일이라 할 것인가. 그러나 나의 이 말은 실로 힐문하자는 것이 아니라, 사헌부 사람들에게 나의 뜻을 자세히 알게 함이다."

하고, 또 하교해 이르기를,

"찰방을 정해 보낸단 말은 내가 취하지 아니하노라. 한 도내의 권한은 오로지 감사에게 맡겼고, 한 고을의 임무는 수령에게 위임하였는데, 도리어 의심을 해 가지고 조관 을 내보내서 조사하고 살펴보게 한다는 것은 어찌 치도의 큰 체제에 합당한 일이겠는가. 전에 의정 유정현이 의논을 올리어서 암행(暗行)을 파견해 보았는데 실행하기 수년 동안에 꽤 많은 폐단이 있으므로, 이조 판서 허조당나라 태종 때 종이 상전을 고발하면 참형하였다는 법률을 참고 삼아 태종께 여러 번 강력히 아뢰어서, 태종께서 가상히 여기시어 곧 아랫사람이 윗사람을 능멸하는 금법을 세우셨으니, 그것이 곧 풍수 교화에 도움이 되었던 것이다."

하니, 숭선이 아뢰기를,

"허조의 그 말은 진실로 지극히 유익한 것이었습니다."

하고, 또 아뢰기를,

"임금의 직분은 오직 사람을 알아보고 사람을 임용하는 일일 뿐이오니, 마땅히 임용하기 전에 선택할 것이요, 임용한 뒤에 의심하지 말아야 상하의 사이에 두텁게 믿어서 일 없이 될 것입니다. 이제 감사와 수령을 이미 임용하셨으니 어떤 사람이 헐뜯고 칭찬하는 것으로 그 진퇴를 가볍게 할 수 없는 것이온데, 하물며 사람을 내보내서 백성들의 고소할 것을 구하겠습니까."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그대의 말이 나의 뜻에 매우 합당하다."

하고, 인해 하교하기를,

"다른 조목은 말하지 말고 다만 지리의 일만을 말하라."

하매, 숭선이 나가서 신개에게 임금의 분부를 전하니, 등이 말하기를,

"양선의 말이 새 땅을 정하자는 것이 아니고 태조께서 정하신 만대의 기지를 그르다 하여 궁궐의 이해를 망령되이 말하였으니, 이것을 놓아두고 논하지 아니하면 술법을 내세우고 승진을 희망하는 무리가 장차 뒤따라 연해 나올 것이매, 이것이 우리의 깊은 염려로서 전하를 위하여 말하는 것입니다."

하니, 숭선이 말하기를,

"만일 할 말이 있거든 물러가 의논하여 다시 아뢰도록 하오."

하여, 등이 그냥 물러갔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61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3책 496면
  • 【분류】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역사-고사(故事)

○戊寅/召大司憲申槪、執義宋褒、持平洪尙儉鄭箴等, 御思政殿引見知申事安崇善曰: "今憲府上書曰: ‘近道陰雨爲沴, 慶尙全羅道亦因久旱, 播種失時, 此乃天心仁愛, 以示譴告也。 請體譴告之意, 減省土木之役。 諸道水旱, 差人檢覆, 民間疾苦、守令不法, 無時遣人檢擧。’ 其言出於誠心, 予甚嘉之。 至若地理之事, 則古今帝王, 或賢或暗, 人臣上言, 有是有非, 而採擇取舍, 則皆在時君, 今臺臣曰: ‘地理之術, 迂怪謬妄, 不見經傳, 有識之士, 皆所羞稱。’ 斯言過矣。 我太祖開國, 定都漢陽, 營宮建廟, 皆用地理, 至於健元陵, 亦用地理, 是則本國, 不得外地理之說矣。 以方來之事言之, 則國家脫有變故, 則但取其水深土厚, 而不用地理乎? 葬親卜地, 大小臣僚皆用地理, 而猶恐不精, 今予言此者, 以其所啓之言, 異於所行故也。 昔者 憲宗好神仙, 詔天下求方士, 以柳泌台州刺史, 群臣爭奏以爲: ‘人主喜方士, 未有使之臨民者也。’ 憲宗曰: ‘煩一州之力, 而能爲人主致長生, 臣子亦何愛焉?’ 群臣莫敢言。 自今觀之, 群臣之言是, 而憲宗之答失矣。 本朝之臣孔俯, 亦以求神仙言於太宗, 太宗不許。 是則古今之人, 皆知神仙之誕妄, 而臣民皆不爲之事也, 若地理之說則不然, 朱文公蔡季通爲世名儒, 及其終也, 親卜葬地。 若本國不用地理則已矣, 如其用也, 幹龍枝龍, 不可不辨。 濟生院之基, 爲幹龍枝龍, 則雖不營宮, 使之栽木, 以養其地可也, 豈可使臣庶居之乎? 揚善以其所業, 力言無隱, 忠也。 何論媒進而欲加罪責乎? 而況人君以包容爲量, 雖芻蕘之言, 亦必聽之, 所言善則採擇而嘉納, 雖不中, 亦不加罪, 所以達下情, 而廣聰明也。 今欲罪上言之人, 是使我不聞下情, 而就於曚昧歟? 臺諫之言, 果如是乎? 矧孝昌, 予命往觀, 是亦希進而然歟? 且景福宮, 朱(崔)〔雀〕 虛而明堂無水, 濬川種樹, 此非有益於國乎? 近日或上書排揚善者有之, 或面折而非揚善者有之, 予甚非之。 今大司憲, 知國家大體, 且親聽予言, 何不計事之終始, 而遽書以聞, 借以集賢殿講習風水學爲非! 然講明風水之學, 豈儒者分外事哉? 然予此言, 實非致問, 俾臺員詳知予意。" 又敎曰: "差遣察訪之言, 予不取焉。 一道之權, 專付監司; 一邑之務, 委之守令, 反生疑貳, 分遣朝官, 使之檢察, 豈合於治道之大體? 昔議政柳廷顯獻議分遣暗行, 行之數年, 頗有弊風。 吏曹判書許稠, 引唐宗奴告主斬刑之律, 反覆力陳于太宗, 太宗嘉之, 肆立以下陵上之禁, 此則有補於風化。" 崇善啓曰: "之此言, 誠萬萬有益。" 又啓曰: "人君之職, 不過知人任人而已, 當擇之於未用之前, 而勿疑於任用之後, 上下之間, 敦信無爲。 今也監司守令, 旣以任之, 不可以一人毁譽, 輕其進退也, 況差人求民之告訴乎!" 上曰: "若言, 甚合予意。" 仍敎曰: "勿說他條, 只說地理之事。" 崇善出, 傳上敎于等, 等曰: "揚善之言, 非卜新地, 以太祖萬世之基爲非, 而妄言宮闕利害。 釋此不論, 挾術希進之徒, 將接踵而進, 此臣等之深慮而爲殿下發也。" 崇善曰: "如有可言, 退議更啓。" 等乃退。


  • 【태백산사고본】 19책 61권 19장 A면【국편영인본】 3책 496면
  • 【분류】
    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