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정원에 지리에 밝은 자를 널리 선택하여 보고하게 하라고 전지하다
승정원에 전지하기를,
"역대의 거룩한 임금을 보건대 통하지 않음이 없었다. 그러므로 천문 지리까지도 이치를 모르는 것이 없었고, 그만 못한 임금으로서 천문 지리의 이치를 몸소 알지는 못하더라도 아래에서 그 직무를 받들어서 한 자가 세대마다 각기 인재가 있었으니, 진(晉)나라의 곽박(郭璞)과 원(元)나라의 순신(舜臣)이 그러했고, 우리 나라의 일로 말하더라도 도읍을 건설하고 능 자리를 정하는 데에 모두 술수 전문가의 말을 채용해 왔는데, 지금 헌릉(獻陵) 내맥(來脈)의 길 막는 일에 있어서 이양달(李陽達)과 최양선(崔揚善) 등이 각기 제가 옳다고 고집하여 분분하게 굴어 정하지 못하고, 나도 역시 그런 이치를 알지 못하기 때문에 그 옳고 그름을 결단하지 못하겠는지라, 장차 집현전의 유신들을 데리고 양달과 함께 날마다 그 이치를 강론하겠으니, 지리에 밝은 자를 널리 선택하여서 보고하게 하라."
하니, 지신사 안숭선(安崇善) 등이 아뢰기를,
"경연(經筵)은 오로지 성현의 학문을 강론하고 구명하여 정치 실시의 근원을 밝히는 곳이온데, 풍수학(風水學)이란 것은 그것이 잡된 술수 중에서도 가장 황당하고 난잡한 것이오니, 강론에 참예시킴이 옳지 못하옵니다."
하매, 임금이 말하기를,
"비록 그러하더라도 그 근원을 캐 보아야 하겠다."
하니, 숭선 등이 다시 아뢰기를,
"전부터 이미 경전의 학문만을 한결같이 해 왔는데, 이제 만일 잡된 학문을 강론한다면 오랜 적공이 한번 실수로 헛되이 될까[功虧一簣] 실로 두렵습니다. 하물며 한(漢)나라의 무제(武帝)는 육경(六經)을 높이 장려하고 백가(百家)를 물리쳐 내었사온데, 그러면 우리 전하의 성스러운 학문이 도리어 한 무제만 못하다 해서야 되겠습니까. 그러나 그 학문도 역시 국가를 위하는 한 가지 소용되는 것이오라 폐해 버릴 수는 없사오니, 원컨대 경학에 밝은 신하를 선택하여 강습하게 하시되, 제조(提調)를 두어서 그 부지런하고 태만함을 조사하며, 그 잘하고 못함을 살피게 하옵소서."
하니, 임금이 집현전 부교리 이명겸(李鳴謙)·유의손(柳義孫)·박사 이사철(李思哲)·저작랑 김예몽(金禮蒙)으로 학관(學官)을 삼고, 예문 제학 정인지(鄭麟趾)로 제조를 삼았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61권 5장 B면【국편영인본】 3책 489면
- 【분류】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왕실-종사(宗社) / 역사-고사(故事) / 교육-기술교육(技術敎育) / 인사-임면(任免)
○戊午/傳旨承政院曰:
歷觀聖王, 無所不通, 故天文地理, 靡不究致。 自聖而下, 雖不親解其理, 然下之供此職者, 代各有人, 晋之郭璞、元之舜臣是已。 以我朝之事言之, 建都卜陵, 皆用術者之言, 至于當今獻陵來脈之防路, 李陽達、崔揚善等各執自是, 紛紜未定, 予亦未知其理, 故未能決其是非, 將率集賢殿儒臣, 與陽達日講其理, 廣擇明於地理者以聞。
知申事安崇善等啓曰: "經筵, 專是講明聖學, 以濬出治之源也。 風水學, 乃雜技中之最荒亂者也, 不可參講。" 上曰: "雖然不可不究其源也。" 崇善等更啓曰: "旣已終始典學, 今若講習雜學, 則竊恐功虧一簣, 況漢 武表章六經, 罷黜百家, 則以我殿下之聖學, 反不如漢 武可乎? 然此學亦爲國之一務也, 不可廢也, 願擇明經之臣, 使之講習, 置提調考其勤慢, 究其精粗。" 上乃命集賢殿副校理李鳴謙ㆍ柳義孫、博士李思哲、著作郞金禮蒙爲學官, 以藝文提學鄭麟趾爲提調。
- 【태백산사고본】 19책 61권 5장 B면【국편영인본】 3책 489면
- 【분류】사상-토속신앙(土俗信仰) / 왕실-종사(宗社) / 역사-고사(故事) / 교육-기술교육(技術敎育) / 인사-임면(任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