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호군 김을현을 북경에 보내어 주본을 올리게 하다
상호군 김을현(金乙玄)을 북경에 보내어 주본(奏本)을 올리게 하였다. 그 주본에 이르기를,
"배신(陪臣) 김을현이 받들고 온 칙유(勅諭)에, ‘요사이 들으니 본국 후문(後門)에서 홀라온 지방의 야인 두목 목답올(木答兀)·남불화(南不花)·아로올(阿魯兀) 등이 사람과 가축을 약탈하여 건주 좌위(建州左衛) 지방을 지나다가, 도지휘(都指揮) 첨사(僉事) 이만주 등에게 빼앗겨, 남녀 64명이 건주 좌위에 구류(拘留)되어 있는데 아직 돌려보내지 않았다 하기에, 이미 이만주 등에게 신칙하여 빼앗은 인구를 본국으로 돌려보내게 하였으며, 또 홀라온 지방의 야인 두목 목답올 등에게 신칙하여 약탈해 간 사람과 가축으로 현재 가지고 있는 것은 모두 돌려보내게 하고, 인하여 목답올 등에게 경계하기를, 「앞으로는 힘써 천도(天道)에 순응하고 짐의 명령에 따라 각각 자기의 지방을 지키고 서로 침범하지 말라.」고 하였으니, 만일 버릇을 고치지 않거든 왕은 기회를 보아 처치하여, 소인(小人)에게 업신여김을 당하지 말도록 할 것이며, 또 홍무(洪武)·영락(永樂) 연간에 칙유한 사유대로 방비하면, 준비가 되어 있기 때문에 거의 환란이 없을 것이니, 왕은 짐의 지극한 뜻을 따르라. ’고 하였습니다. 이 성지에 따라 시행하였거니와, 알목하·파저강 등지에 흩어져 있는 야인들의 무리가 반역자 양목답올과 결당(結黨)하여, 요동·개원(開元) 등지의 군인과 민간 부녀 및 본국의 변경 백성들을 노략질하여 종으로 삼아 부렸는데, 먼저 사로잡힌 사람들이 고생을 이기지 못하여 영락 21년 이후 연이어 본국으로 도망해 온 사람이 남녀 총계 5백 80명이었습니다. 근본을 물어 보고 중국 군민(軍民)과 관계가 있는 자는 속속 관리를 보내어 남녀 5백 66명을 해송했고, 그 중의 본국 사람은 각자 직업에 따라 편히 살게 하였는데, 이것 때문에 야인들이 여러 해를 두고 분을 품고 본국의 변경을 침략하여 피해가 적지 않았습니다. 파저강에 사는 야인들은 악한 일을 거듭하면서 고칠 줄을 모르고, 같은 종류의 야인 4백여 기(騎)를 모아서 사람마다의 얼굴에 먹으로 자형(刺形)을 그리어 홀라온 야인같이 꾸미고, 변군(邊郡)인 강계·여연 등지에 돌입하여 군민(軍民)의 남녀들을 살해하고, 사람과 마소, 재산 등을 약탈하여, 아들은 아버지를 잃고 아내는 남편을 잃게 하여, 피해는 실로 참혹한 지경입니다. 〈그들은〉 본국만 업신여길 뿐 아니라, 감히 중국 조정까지 속여서, 홀라온 지방의 야인들이 약탈해 가는 사람과 가축들을 〈자기네들이〉 빼앗아서 위(衛)에 구류해 두었다고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홀라온 지방은 본국과 멀리 떨어져 있고 본디 원수진 일이 없으니, 사실은 파저강의 야인들이 〈그들을〉 유인하여 먼저 와서 도둑질을 하고서는 〈그들을〉 도둑의 괴수라고 허물을 씌운 것이며, 본디 홀라온 야인이 마음을 먹고 도둑질한 것은 아니라고 생각되옵니다. 지금도 파저강 야인들은 또 도둑질을 하려고 변경의 고을을 엿보고 있는 중이어서, 만약 갑자기 침입을 당하게 되면 사변에 대응하기 어려울 것이므로, 변장(邊將)을 시켜 군사를 거느리고 가서 적당한 대책을 세우고 기회를 보아 처치하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지금 파저강 야인들이 전후 왕래하면서 도둑질한 일과 홀라온처럼 모양을 꾸며서 속였다는 뚜렷한 증거를 하나하나 열거하여 삼가 아룁니다.
1. 영락 20년 10월 일에 야인 30여 명이 압록강 가에 이르러 벼를 베는 소년 4명을 붙잡아 갔고,
1. 동년 12월 일에 야인 2백여 명이 여연(閭延) 땅에 이르러 사람을 살해하였으며,
1. 선덕 7년 7월 일에 파저강 야인의 지휘 임합라(林哈剌) 등 9명이 이만주의 비문(批文)을 가지고 여연군에 이르러 도망해 온 인구를 찾기를 요구하고 돌아갔고,
1. 동년 8월 일에 위의 임합라 등 5명이 여연군 강가에 이르러 벼 베는 사람 박강금(朴江金)을 잡아 묶고 말하기를, ‘나의 노비를 너희 나라에서 잡아 두고 돌려보내지 아니하므로, 지금 이 사람을 잡아가서 나의 노비가 있는 곳을 묻겠다.’ 하고 돌아갔는데, 위의 박강금이 도망해 와서 고하기를, ‘임합라 집에 사는 본국 말을 잘하는 여자 만월(萬月)의 말에, 강물이 얼면 임합라가 사람을 잡으러 가고자 한다고 말하였으며, 임합라가 또 강금에게 말하기를, 네가 안심하고 여기에 있으면 너의 부모와 처자도 잡아 오겠다. ’고 하였습니다.
1. 동년 12월 일에 위의 야인 4백여 기(騎)가 강계·여연 등지에 와서 군인과 백성 53명을 살해하였는데, 그 중에는 부녀와 노인도 살해하고, 어린아이를 눈 위에 던져서 얼어 죽게까지 하였으며, 남녀 아울러 77명과 마소·재산 등을 다 빼앗아 가지고 돌아오다가 그들이 사는 지방에 이르러 우연히 흠차 내관(欽差內官) 장동아(張童兒)를 만났는데, 장동아가 전항(前項)의 야인들에게 말하여 잡은 사람을 모두 돌려보내게 하였는데, 그들은 쓰지 못할 늙고 어린 남녀 63명을 골라서 돌려보내고, 그 나머지 젊고 실한 남녀 14명과 마소·재산 등은 모두 돌려보내지 아니하였으며,
1. 본국 통사 홍전(洪田)이 알목하 지방에 갔다가 돌아와서 고하는 말에, ‘야인의 천호(千戶) 이롱아(里籠阿)의 아내 본국 여자 어리가이(於里加伊)가 말하기를, 「조선국 여연군에 도둑질한 사람은 홀라온 올적합은 다만 40명 뿐이고, 그 나머지는 모두 이만주 관하(管下)에 있는 자로서, 떼를 지어 길을 인도하여 도둑질하고는 거짓 홀라온을 일컫었다.」고 했습니다.’ 하였고,
1. 본국의 여자 매읍가이(每邑加伊)가 포로되었다가 돌아와서 공술(供述)하기를, ‘도적들이 얼굴에다 먹으로 자형(刺刑)을 그렸다가 본곳 지면에 돌아와서 눈물[雪水]로 자형을 씻어 없애고 거짓으로 홀라온이라고 일컬었다.’ 했습니다.
1. 앞에 말한 여자 매읍가이가 공술하기를, ‘도적들이 파저강 본곳에 돌아가자, 야인 두 사람이 도적을 마중하여 위로하기를, 「네가 조선에 갔을 적에 우리는 네가 죽어서 어느 곳에 있는가 하고 쌀을 가지고 점을 쳤는데, 이제 살아서 돌아오니 기쁘기 그지없다.」고 하면서 고기와 음식을 대접하였다.’ 하였으며,
1. 여연군 단련사(團鍊使)가 포로된 사람들을 문초한 공술에 의거하면, 도적들이 밤을 지내면서 도둑질할 때 포로된 사람들과 말하기를, ‘여연에 사는 송전부(宋田夫)의 집은 생활이 부유하여, 「우리들이 상시로 내왕하면 음식을 장만하여 대접하는데, 애꾸눈인 이춘부(李春富)는 음식 대접을 하지 않고 도리어 꾸짖으니, 금번에 송(宋)의 집은 불을 지르지 말고, 이(李)의 집은 꼭 불을 질러야 한다.」고 했다’ 하는데, 과연 이의 집이 불에 탔습니다.
1. 파저강 야인 심아랑합(沈阿郞哈)이 군중(軍中)에 와서 서로 싸울 때, 본국 사람 전의(全義)가 아랑합에게 말하기를, ‘너는 늘 내왕하면서 쌀·양식·간장 등을 취하여 먹으면서 왜 작당하여 도둑질하느냐. ’고 하자, 아랑합이 말고삐를 잡고 피해 갔다고 하였으며,
1. 여연에 사는 여인 은진(銀珍)·득장(得莊) 등이 공술하기를, ‘사로잡혀서 파저강에 이르니, 그곳에 있던 야인들은 도둑질한 사람들과 껴안고 좋아하여 웃고 말하며 서로 고기를 먹으면서 안탑(案塔)이라고 부르짖더니, 얼마 안 되어 도둑들은 사방으로 흩어져서 몰래 자기 집으로 들어가고, 다만 30여 명만이 산골을 향하여 들어가는 것을 보았는데, 파저강 야인들이 이들을 가리켜 도적이라고 하면서, 지금 홀라온 지방을 향하여 돌아가는 것이라고 말하였다. ’고 하였습니다.
1. 통사 이삼철(李三哲)이 고하는 말에 의하면, 삼철이 전에 사답로(唆答魯) 지방에 가니, 그곳의 야인 마라(馬剌)라는 자가 말하기를, ‘파저강에 사는 여직(女直) 고로(苦魯)의 친아들 자라노는 홀라온 올적합에게 길을 가리켜 주어 여연에 가서 사람과 돈과 양식을 약탈하였는데, 젊고 실한 남녀는 골라 두고 그 밖에 쓰지 못할 여자는 놓아 보냈다. ’고 하였고,
1. 파저강 야인 금발합(金孛哈)이 본국 사람 박호문과 말하기를, ‘동류의 야인과 임합라가 이야기하기를, 「지금 만약 조선의 군대가 와서 도둑질한 죄를 물으면, 네가 하늘에 올라갈 것이냐, 땅에 들어갈 것이냐.」고 말하니 임합라가 탄식하며 대답하기를, 「계책이 이미 그릇되었는데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하므로, 동류들이 임합라를 묶어 조선에 보내려고 하였으나, 본인의 친척이 강성(强盛)하기 때문에 그만두었다. ’고 말하였고,
1. 알목하에 있는 동관 독사(童管禿使)의 관하(管下) 사람 삼팔(森八)이 와서 말하기를, ‘야인들이 또 금년 3, 4월 사이에 와서 도둑질한 것을 계획하고 있으니 먼저 방비해야 한다. ’고 하였으며,
1. 본국 평안도 관찰사 이숙치(李叔畤)와 도절제사 최윤덕이 치보(馳報)하기를, ‘본년 3월 11일 압록강가 조명간 구자(趙名干口子)의 서안(西岸)에 파저강 야인 9명이 오므로, 파절군(把截軍)들이 온 사유를 물으니, 「홀라온 야인들이 조명간 구자에 들어와서 도둑질하려고 한다.」고 대답하고 돌아갔다. ’고 하였습니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9책 60권 1장 A면【국편영인본】 3책 463면
- 【분류】외교-명(明) / 외교-야(野)
○遣上護軍金乙玄, 捧奏本如京師。 其奏曰:
陪臣金乙玄齎捧勑諭, 〔節〕 該: "比聞本國後門, 被忽剌溫地面野人頭目木答兀、南不花、阿魯兀等, 搶去人口頭匹, 經過建州左衛地方, 爲都指揮僉事李滿住等奪下, 男婦六十四口, 拘留在衛, 不曾發廻, 已勑李滿住等, 將奪下前頭人口, 送回本國。 及勑忽剌溫地面野人頭目木答兀等, 搶去人口頭畜見在, 亦皆送還。 仍戒木答兀等, 自今務要敬順天道, 恪遵朕命, 各守地方, 毋相侵犯, 如或不悛, 王宜相機處置, 勿爲小人所侮。 仍遵依洪武、永樂年間勑諭事理隄防, 庶幾有備無患, 王其體朕至懷。" 欽此。 除欽遵外, 臣竊詳斡木河、婆猪江等處地面散住野人等類, 與叛人楊木答兀結爲群黨, 擄掠遼東、開元等處軍民(買)〔男〕 婦及本國邊民, 爲奴使喚。 前頭被擄人口等, 不勝艱苦, 自永樂二十一年以後, 連續逃來本國, 共計五百八十名口。 審問根脚, 委係上國軍民, 節次差官解送五百六十六名口內, 有本國人口, 仍令安業。 因此野人等積年含憤, 侵擾本國邊境, 爲害不少。 今來婆猪江住野人等, 稔惡不悛, 糾合同類野人四百餘騎, 於各人面上墨畫剌形, 例做忽剌溫 野人貌樣, 突入邊郡江界、閭延等處, 殺害軍民男婦, 刦掠人口牛馬財産, 孤人之子, 寡人之妻, 其爲酷害尤甚。 不但輕蔑本國, 乃敢爲欺罔朝廷, 詐稱忽剌溫地面野人等, 搶去人口頭匹, 奪下拘留在衛。 臣竊謂忽剌溫地面, 與本國相去夐遠, 本無讎嫌, 乃緣婆猪江等處野人等, 誘引前來, 托爲賊首, 本非忽剌溫 野人造意作耗。 卽(目)〔日〕 , 本人等又欲作耗, 窺伺邊郡。 事若倉卒, 難以應變, 着令邊將部領軍兵前去, 從宜設策, 及機處置外, 今將本人等前後往來作耗事因及詐飾忽剌溫形貌見著等項情狀, 逐一開坐, 謹具奏聞。 一次永樂二十年十月日, 野人三十餘名到來鴨綠江邊, 將刈禾童男四名, 捉拿回去。 一次本年十二月日, 野人二百餘名到來閭延地面廝殺。 一次宣德七年七月日, 婆猪江 野人指揮林哈剌等九名, 齎李滿住批文, 到來閭延郡, 索要逃來人口廻去。 一次本年八月日, 前項林哈剌等五名, 到來閭延郡江邊, 將刈禾人朴江金, 捉拿綁縛, 聲言: "我的奴婢, 爾國容留不還, 今捉此人將去, 問我奴婢在處。" 說罷回去。 前項朴江金逃來告稱: "林哈剌家住通曉本國語音, 婦女萬月說道: ‘江水氷合, 林哈剌欲來擄掠人口。’ 林哈剌也說江金: ‘爾安心在此, 爾的父母妻子, 也要捉來。’" 一次本年十二月日, 前項野人四百餘騎, 到來江界、閭延等處, 殺害軍民五十三名, 其中婦女年老者殺害, 乳兒投棄雪中凍死, 將男婦共七十七名口及牛馬財産, 盡行刦掠, 回到本處地面, 遇見欽差內官張童兒, 有本官說與前項野人等, 將被擄人口, 盡行回送, 本人等擇不用老弱男婦共六十三名口送回, 其餘壯實男婦一十四名口幷馬牛財産, 竝皆不還。 一。 本國通事洪田, 到斡木河地面回還告說: "野人千戶里籠阿妻, 本國婦女於里加伊說道: ‘朝鮮國 閭延郡作賊人, 忽剌溫 兀狄哈但四十名, 其餘具係李滿住管下。 成(郡)〔群〕 引路作賊, 詐稱忽剌溫。’" 一。 本國婦女每邑加伊被擄回還, 供說: "賊人等面上, 墨畫剌形, 回到本處地面, 以雪水洗去墨畫剌形, 詐稱忽剌溫。" 一。 前項婦女每邑加伊供說: "賊人等回到婆猪江本處, 野人二名迎見, 賊人慰之云: ‘爾到朝鮮, 我道爾死在那里, 將米問卜, 今乃生還, 歡喜無盡。’ 饋肉食訖。" 一。 閭延郡團鍊使問據被擄人等供稱: "賊人經宿作耗時, 與被擄人等言說: ‘閭延住宋田夫家活富饒, 我等常時來往, 備辦饋餉, 一隻眼人李春富不肯饋餉, 反行打罵。 今番宋家不要燒火, 李家須要燒火。’ 李家果火燒。" 一。 婆猪江 野人 沈阿郞哈到於軍中相戰時, 本國人全義對本人稱說: "爾每常時來往, 米糧鹽醬, 取索食用。 爾每如何結黨作賊?" 阿郞哈勒馬避去。 一。 閭延住婦女銀珍ㆍ得莊等供稱: "被擄到於婆猪江, 有本處野人等, 與作賊人摟抱談笑和好, 相與食肉, 稱呼案塔, 不移時, 前項賊人等, 四散潛入其家, 只見三十餘人, 向山峪入去。 婆猪江住野人等指以爲賊, 說稱: ‘如今還向忽剌溫地面。’" 一。 通事李三哲告說: "三哲前往唆答魯地面, 有本處野人 馬剌言說: "婆猪江住女眞 苦魯親男者剌奴, 請將忽剌溫 兀狄哈指路, 前去閭延, 侵掠人物錢糧, 擇取壯實男婦外, 不用婦女放回。" 如此言說。 一。 婆猪江 野人 金孛哈, 與本國人朴好問說稱: "有同類野人和林哈剌言說: ‘如今若有朝鮮軍馬, 來問作賊事因, 爾上天那, 入地麽?’ 林哈剌嘆息回說: ‘謀計已錯, 雖悔奈何?’ 同類人等要將林哈剌綁縛, 送至朝鮮, 緣本人戚親强盛就罷了。" 如此言說。 一。 斡木河住童管禿使管下人森八來說: "野人等又要今年三四月間, 前去作賊, 宜先隄備。" 一。 本國平安道觀察使李叔畤及兵馬都節制使崔閏德馳報: "該本年三月十一日, 鴨綠江邊趙名干口子江西岸, 有婆猪江 野人等九名到來, 把截軍等, 問其爲來事因, 本人等回說: ‘忽剌溫 野人等欲要趙名干口子入來作賊。’ 如此說罷回去。"
- 【태백산사고본】 19책 60권 1장 A면【국편영인본】 3책 463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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