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조 판서 신상이 효자의 등급을 구분하여 정표하고 관직을 제수할 것을 아뢰다
상참을 받고 정사를 보았다. 예조 판서 신상(申商)이 아뢰기를,
"전조(前朝)의 사민은 부모의 상(喪)에 있어, 날로써 달로 바꾸어 3년을 행하지 않는 자가 많았사오매, 만일 무덤에 여막(廬幕)을 짓고 3년을 지키는 자가 있으면, 세상에서 모두 아름답다 일컬어 정표(旌表)하였습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모두 삼년의 상[三年之喪]을 행하옵고, 여묘(廬墓)하는 자도 많이 있사오며, 혹은 손가락을 끊어서 병친(病親)에게 약으로 드리기도 하며, 혹은 불사(佛事)를 행하지 아니하고 한결같이 《가례(家禮)》에 따르옵는데, 이제 효자를 포장(褒奬)하라는 명을 내리시니, 상정소(詳定所)에서는 경중(輕重)을 논하지도 아니하고 모두 정문(旌門)을 세우고 관직을 제수하되, 등급도 분별하지 않사오니, 바라옵건대 1등은 서용(敍用) 정표하시고, 그 다음은 녹용(錄用) 하시며, 손가락을 끊은 일 따위는 비록 중용의 도에 지나친다 할지라도 지극한 정에서 나온 것이오니, 상등(上等)에 의하여 시행하여 주시기를 바라옵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배운 자라도 아직 도리의 그릇됨과 올바름을 잘 알지 못하거든, 하물며 어리석은 백성이야 학문을 알지 못하니, 그들이 어버이를 위하여 불사(佛事)에 미혹하고, 무당에게 미혹하게 되는데, 손가락을 자르는 유(類)에 이르러서는 비록 정도(正道)에 합하지 아니하나, 그러나 그 어버이를 위하는 마음이 절실한 자인즉 취하는 것이 옳겠다."
하였다. 신상이 또 아뢰기를,
"지난 번 왜객(倭客)에게 회사(回賜)하신 베[布]는, 그들이 바친 바의 많고 적음에 따라 십수(十數)로서 주시되, 또한 영수(零數)186) 를 두시어 바친 것이 매우 적으면 혹 십수는 없이 하고, 단지 영수로만 주셨으므로, 승문원 제조(承文院提調)가 말하기를, ‘바친 바의 물건이 비록 박하다 하더라도 영수로서 하심은 매우 좀스러우니, 마땅히 성수(成數)187) 를 따르소서.’ 하였사온데, 신의 생각으로는 대내전(大內殿)의 사인(使人)인즉 마땅히 성수(成數)를 쓰시옵고, 종정성(宗貞盛)과 같은 유(類)는, 그들의 사는 곳이 우리 나라와 인접하였사오매, 그 흥판(興販)의 편리를 이용하여 사소한 토산물을 가지고 일년 내에 자주 오가고 하여 끊임이 없사오니, 어찌 성수(成數)로서 늘 줄 수 있겠나이까. 청컨대 전례(前例)에 의하여 아울러 영수(零數)를 쓰시옵소서."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추포(麤布)는 우리 나라 소산이니 바친 것이 비록 적다 하더라도 회사(回賜)하는 베는 십수(十數)에 내리지 않는 것이 옳겠으니, 다시 의논하여 아뢰라."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58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3책 428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역사-전사(前史) / 풍속-예속(禮俗) / 윤리(倫理) / 외교-왜(倭) / 무역(貿易) / 인사(人事)
○癸未/受常參, 視事。 禮曹判書申商啓: "前朝士民居父母之喪, 以日易月, 不能行三年者多矣, 或有廬墳三年者, 世皆稱美而旌表之。 今則皆行三年之喪, 廬墓者比比有之。 或折指以藥病親, 或不作佛事, 一從《家禮》。 今下褒奬孝子之命, 詳定所不論輕重, 竝令旌門除職, 至爲無等。 乞一等則敍用旌表, 其次錄用。 若割指等事, 雖過中制, 出於至情, 乞依上等施行。" 上曰: "學者尙未知道理邪正, 況愚民不知學問, 其爲親惑於佛事, 惑於巫覡, 以至斷指之類, 雖不合於正道, 然其爲親心切者則取之可也。" 商又啓: "向者回賜倭客之布, 因其所獻多少, 給以十數, 而亦有零數, 所獻甚少, 則或無十數, 而但有零數。 承文院提調以爲: ‘所獻之物雖薄, 給以零數, 甚爲猥碎, 宜從成數。’ 臣意以爲大內殿使人, 則當用成數, 若宗貞盛之類, 則地隣我國, 利其興販之便, 執些少土宜, 一年之內, 數往數來, 絡繹不絶, 豈可常以成數給之乎? 請依前例幷用零數。" 上曰: "麤布, 我國所産, 所進雖微, 回賜之布, 不下十數可也。 更議以啓。"
- 【태백산사고본】 18책 58권 19장 B면【국편영인본】 3책 428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역사-전사(前史) / 풍속-예속(禮俗) / 윤리(倫理) / 외교-왜(倭) / 무역(貿易) / 인사(人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