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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57권, 세종 14년 8월 2일 무자 3번째기사 1432년 명 선덕(宣德) 7년

고신의 법에 관한 대사헌 신개 등의 상소문

대사헌 신개(申槪) 등이 상소(上疏)하기를,

"그윽이 생각하건대, 가장 좋은 정치는 교화(敎化)를 세우는 것이요, 그 다음은 정치를 밝히는 것인데, 정치의 잘되고 잘못되는 것은 사대부(士大夫)에게 매여 있으며, 사대부의 선행(善行)과 악행(惡行)은 권선징악(勸善懲惡)에 말미암은 것입니다. 권선징악의 방법은 비록 여러가지이겠으나, 명백히 성토(聲討)를 행하지 않고 드러내어 주륙(誅戮)을 가하지 아니하여도, 그 악의 싹을 끊고 그 선심(善心)을 길러, 악한 사람을 징계하고 선한 사람을 더욱 권장하는 것은 고신(告身)과 같은 것이 없습니다. 대저 사람의 악(惡)을 공격함에는 형세가 어렵고 쉬움이 있습니다. 무릇 양(陽)은 반드시 강(剛)하니, 강(剛)하면 반드시 밝고, 밝으면 알기가 쉬운데, 사람의 하는 일이 광명정대하고, 소창통달(疎暢通達)하고, 뇌뢰낙락(磊磊落落)하여, 조그만 의심이 없는 사람은 양(陽)의 유(類)이므로, 그가 허물이 있을 적에는 사람들이 모두 이를 보게 되는 까닭으로, 공격하기가 쉽고, 무릇 음(陰)은 반드시 유(柔)하니, 유(柔)하면 반드시 암(闇)하고, 암(闇)하면 헤아리기가 어려운데, 사람이 심술의 은미함과 조행(操行)의 비밀이 있어, 덕과 같으면서도 덕이 아니고, 재주와 같으면서도 재주가 아니고, 큰 간악은 정직과 같고, 큰 공교는 옹졸과 같아서, 혹은 아부하고 때가 끼기도 하며, 잘못을 꾸미고 사실을 숨기기도 하고, 번쩍 없어지고 교활하기도 하여, 사물을 구별할 수 없는 것은 음(陰)의 유(類)이므로, 살펴 다스리고자 하면 말을 책잡을 수도 없고, 자취를 찾을 수도 없습니다. 그 그릇된 점이 있을 적에는 사람들이 볼 수가 없는 까닭으로, 공격하기가 심히 어려운데, 더군다나, 지금은 규탄(糾彈)할 적에 풍문(風聞)의 사용을 금하고 있으니, 비록 정적(情迹)이 증험에 나타나는 일이 있더라도, 증거될 만한 문서가 없으면 감히 고발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 두가지 어려움이 있는 까닭으로, 유사(攸司)가 된 사람은 비록 강직하고 특별한 지조가 있더라도 능히 할 수 없게 됩니다. 다만 고신(告身)의 법은 사람의 심술을 지적해 말할 필요도 없고, 사람의 숨긴 일을 드러나게 할 필요도 없으며, 형벌을 가하지 않고 힐책(詰責)을 행하지 않고도, 마음을 움직여 살피고 부끄러워 뉘우쳐서 어질지 못하고 의리에 어그러진 일이 저절로 드러나지 않은 가운데서 몰래 사라질 것이니, 비록 음류(陰類)가 되더라도 한번 추상열일(秋霜烈日) 같은 논핵(論核)을 만난다면 저지되고 감추어지며, 마음을 잃고 담이 떨어져서 스스로 고친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어찌 사풍(士風)의 약석(藥石)과 마음의 벌주는 부월(斧鉞)로서 그 효과가 교화(敎化)와 같지 않겠습니까. 그것이 형법(刑法)의 참혹한 데 비교하면 차이가 있을 뿐이 아닙니다. 전조(前朝)의 태평할 때에 고신(告身)을 조사(朝謝)라 이르고, 대소 여러 관원을 모두 대성(臺省)에서 서경(署經)하게 하여, 그 법이 심히 엄했으니, 이것은 전조에서 처음 만든 것이 아니고, 곧 옛날의 양법(良法)의 전해진 뜻을 본받아 만든 것이니, 풍속이 아름답기를 5백 년의 오랜 세월을 유지한 것이 반드시 이에 말미암았을 것입니다. 그 쇠진한 세상에 이르러 대성(臺省)에 있는 사람들이 많이 권문(權門)에서 나오게 되어, 용렬하고 무지하여 무릇 서사(署謝)081) 한 것이 미워하고 사랑하는 감정에 좌우되어, 시비(是非)가 전도(顚倒)되어 다만 세계(世系)의 고하(高下)에만 뜻을 두고, 심술의 사정(邪正)은 논하지 아니했던 것입니다. 우리 태조(太祖)께서는 평소부터 대성(臺省)의 구차스러운 짓을 다 아시고, 또 창업(創業)의 초기에 영웅·호걸과 충의스런 많은 인사(人士)가 조정에서 매우 분잡(紛雜)했던 까닭으로, 그들을 망라하여 진압 굴복시키고자 하여, 시세(時勢)를 살펴서 임시로 관교(官敎)082) 를 사용하였으나, 4품 이하의 서사(署謝)는 옛날과 같았습니다. 우리 태종께서는 선비의 기풍(氣風)을 염려하시어 칙령(勅令)으로 1품에서 9품까지는 일체 서사(署謝)하도록 하여, 고쳤다가 이를 폐지하고 그 후에 시행했으나, 다시 폐지한 것이 두 번이나 되었습니다. 이에 4품까지는 또한 관교(官敎)를 사용하고, 서사(署謝)는 5품 이하의 관원에게만 그쳤습니다. 대저 사람이 처음은 잘해도 종말까지 잘하는 사람은 적은 것입니다. 선비가 처음 벼슬하여 관직이 낮으면 모두 다 행실을 닦아 명성을 취하지마는, 그가 오랫동안 벼슬하여 직위가 높으면 명성과 절개를 손상(損傷)시킴이 많게 되니, 더욱 마땅히 서사(署謝)하여 경계함을 보여야 될 것입니다. 법의 아름답고 아름답지 못한 것은 세상의 평판을 살펴보면 알 수 있습니다. 서사(署謝)의 법이 만들어 지면 식견이 있는 사람이 매우 기뻐하고, 폐지되면, 식견이 있는 사람이 매우 근심하게 되니, 그렇다면, 곧 만들어졌다가 곧 폐지된 것은 법이 이름답지 못한 것이 아니라, 다만 유사(有司)가 능히 이를 선용(善用)하지 못한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옛날의 성현(聖賢)들은 세속의 번거로운 일에 얽매이지 않은 지가 오래 되었습니다. 사람을 쓰는 것은 그 세족(世族)의 아름다운 것을 숭상하지 않고, 다만 그 재주와 덕망이 일을 성공시키고 사람을 이롭게 하는 것만 취했던 것이니, 진실로 그 사람이 어질다면, 비록 사립문과 개구멍[圭竇]에 사는 천인(賤人)이라도 공경(公卿)이 되어도 해롭지 않고, 대각(臺閣)이 되어도 해롭지 않을 것이며, 진실로 재주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비록 여러 대의 벌열(閥閱)의 자손이라도 무엇이 나라에 이익이 되며, 무엇이 민생에 이익이 되겠습니까. 지난날에 대간(臺諫)이 전조의 말세의 풍습에 젖고 편견(偏見)에 막히어, 대체(大體)에 어두어서 오로지 부조(父祖)의 애매한 허물과 자질구레하고 긴요하지 않은 일만 논하고, 원대한 계획을 지키지 않고 격양(激昻)된 고론(高論)만 하기를 좋아하여, 드디어 이론(異論)이 비등(沸騰)하여 서로 어긋나서 합하지 못하여, 마침내 좋은 법을 태평한 시대에 시행하지 못하게 했으니, 이로써 본다면 국가에서 이를 시행하지 않고자 한 것이 아니라, 실은 대각(臺閣)에서 이를 폐지시킨 것입니다. 탄식할 만한 일입니다. 신 등이 간절이 다시 생각해 보니, 근래에는 관리들이 연달아 탐오(貪汚)를 범하여, 중한 형벌에 처하게 된 사람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뇌물로서 죄적(罪籍)을 범한 사람도 잇따라 있게 되고, 또 기망(欺罔)·부탄(浮誕)·음일(淫逸)·황태(荒怠)·잔포(殘暴)·오학(傲虐)·방벽(放僻)·사치(奢侈)·나만(懶慢)·참적(譖賊)·첨녕(諂佞)·분경(奔競) 등의 죄례(罪例) 과조(科條)가 다만 율문(律文)에만 기재되었을 뿐만 아니라, 또한 영갑(令甲)083) 에 기록되어 엄격히 다스리지 않는 것이 없는데도, 앞 수레가 엎어졌는데 뒤 수레가 잇달아 엎어지게 되니, 그렇다면 지치(至治)를 일으키려고 하는 사람은 다만 형법(刑法)만 믿을 수가 없으며, 반드시 풍속으로서 급무(急務)를 삼아야 될 것입니다. 빨리 전이(轉移)하려면 반드시 서사(署謝)를 중하게 하여야 될 것이니, 옛 사람의 이른바 풍속을 보호하기를 사람의 원기(元氣)를 보호하는 것과 같이 하고, 명절(名節)을 중하게 여기기를 귀신을 중하게 여기는 것과 같이 한다는 것이니, 이를 버리고 무엇을 쓰겠습니까. 삼가 바라옵건대, 전하께서는 여러 관원에게 교지를 내리시어 모두 서사(署謝)하게 하고, 대각(臺閣)에게 명백히 명하여 공인(工人)·상인(商人)·천례(賤隸)·서얼(庶孽)로서, 여러 사람이 다 아는 사람을 제외하고는 세계(世係)와 애매하고 자질구레한 긴절하지 않은 일은 의논하지 말고, 자기의 마음과 행실의 선악이 선비의 기풍(氣風)에 관계되는 것만 바로 의논하여, 선한 사람은 먼저 서경(署經)하고, 악한 사람은 뒤에 서경(署經)하되, 만약 그 악이 중한 사람은 서경(署經)하지 아니하여 격려와 권장(勸奬)을 보일 것입니다. 이 법을 지키기를 금석과 같이 굳게 하여 영구히 하면, 장차 간악이 화(化)하여 정직이 되고, 간사가 화하여 정직이 되어, 선비의 기풍이 크게 변하여 서로 거느려 군자가 될 것입니다. 만약 2품 이상의 관원은 경력이 이미 오래 되어, 관작(官爵)과 연치(年齒)가 모두 뛰어났으므로, 서사(署謝)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면, 관직을 명할 적에 제사(制詞)에서 행하는 것이 또한 옳겠습니다. 관직을 명할 적에 제사(制詞)하는 것은 그 근원이 은(殷)나라주(周)나라에서 나왔는데, 열명(說命)084) ·강고(康誥)085) ·미자지명(微子之命)086) ·채중지명(蔡仲之命)087) 으로부터 그 이후로 역대(歷代)에서 이를 행하지 않은 적이 없었으니, 관직을 명하는 데 그칠 뿐만 아니라, 관직을 파출(罷黜)하는 데 이르기까지 또한 사(詞)가 있게 됩니다. 또 사두(詞頭)만 봉하여 돌려보내고 제(制)를 기초(起草)하지 않은 것이 있으니, 제사(制詞)와 서사(署謝)는 명칭은 비록 다르지마는, 그것이 착한 일을 권장(勸奬)하고 악한 일을 징계(懲戒)하는 것은 한가지입니다. 지금 중국에서도 또한 고명(誥命)을 사용하고 있으니, 원컨대 전대와 시왕(時王)의 제도에 의거하여, 2품 이상의 관원에게는 제(制)로서 행한다면 국가에 매우 다행하겠으며, 선배의 기풍(氣風)에도 매우 다행하겠습니다."

하니, 명하여 이를 보류하게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8책 57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3책 407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역사-고사(故事)

  • [註 081]
    서사(署謝) : 4품 이하의 관원을 임명할 때 대간(臺諫)의 서경(署經)을 거쳐 임명하던 일.
  • [註 082]
    관교(官敎) : 4품 이상의 관원을 임명할 때 대간(臺諫)의 서경(署經)을 거치지 않고 교지(敎旨)로서 임명하는 일.
  • [註 083]
    영갑(令甲) : 법령.
  • [註 084]
    열명(說命) : 《서경(書經)》 상서(商書)의 편명(篇名).
  • [註 085]
    강고(康誥) : 《서경(書經)》 주서(周書)의 편명(篇名).
  • [註 086]
    미자지명(微子之命) : 《서경(書經)》 주서(周書)의 편명(篇名).
  • [註 087]
    채중지명(蔡仲之命) : 《서경(書經)》 주서(周書)의 편명(篇名).

○大司憲申槪等上疏曰:

竊惟太上立敎化, 其次明政治, 政治得失, 係於士夫, 士夫淑慝, 由於勸懲。 勸懲之方, 雖曰多端, 而不行明討, 不加顯戮, 而斷其惡萌, 長其善心, 惡者以懲, 善者益勸, 未有如告身者也。 夫攻人之惡, 勢有難易。 凡陽必剛, 剛必明, 明則易知。 人之所爲, 有光明正大, 疎暢通達, 磊磊落落, 無纖芥疑者, 陽之類也。 其過也, 人皆見之, 故攻之爲易。 凡陰必柔, 柔必闇, 闇則難測。 人有心術之微、操行之秘, 似德而非德, 似才而非才, 若大姦之似直, 大巧之似拙, 或依阿淟涊, 回護隱伏, 閃倐狡獪, 不可方物者, 陰之類也。 如欲糾治, 則無言可執, 無跡可尋。 其非也, 人未得見, 故攻之甚難, 矧今彈糾, 禁用風聞, 雖有情迹見驗之事, 如無文憑, 不敢發焉! 有此二難, 故爲攸司者, 雖有骨鯁介特之操, 莫能爲也。 惟告身之法, 不必斥言人之心術, 不必顯揚人之隱匿, 斧鉞不加, 詰責不行, 而竦動思省, 慙赧悔悟, 不仁不義之事, 自然潛消於冥冥之中。 雖爲陰類, 一遭秋霜烈日之論, 則消沮閉藏, 心喪膽落而知自改矣。 豈非士風之藥石, 誅心之斧鉞, 而其効侔於敎化也哉? 其視刑法之慘, 不啻有間也。 前朝盛時, 告身謂之朝謝, 大小庶官, 竝令署經臺省, 其法甚嚴, 非前朝所自創也, 乃祖古昔良法遺意而制之。 其稱爲風俗之美, 而維持五百年之久者, 未必不由乎此也。 至其衰世, 處臺省者, 多出權門, 猥劣無知, 凡所署謝, 憎愛任情, 是非顚倒, 徒區區於世係之高下, 而不論心術之邪正。 我太祖素悉臺省苟且之爲, 且當創業之初, 以英雄豪傑、忠義群士雜沓於朝, 故欲以網羅鎭服, 審時度勢, 權用官敎, 然四品以下署謝猶舊也。 我太宗軫念士風, 勅令一品至九品, 一體署謝, 改而罷之, 厥後行而復罷者, 至於再矣。 乃至四品, 亦用官敎, 署謝止於五品以下。 大抵人之有初, 克終者鮮矣。 士方筮仕, 官卑則率皆礪行取名, 及其久宦位高, 則多致損名虧節, 尤宜署謝以示警也。 法之美與不美, 觀諸物論則可知矣。 署謝之法, 立則識者欣欣, 廢則識者慼慼。 然則旋作旋罷者, 非法不美也, 特有司者不能善用之耳。 何者? 古之聖賢, 不係世累尙矣。 所以用人者, 非尙其世族之美, 特取其才德足以建事利物也。 苟其賢也, 雖蓽門圭竇之賤, 不害爲公卿, 不害爲臺閣, 苟不才也, 雖奕葉閥閱之冑, 何益於國, 何益於民生? 往日臺諫, 狃於前朝衰季之習, 偏見窒塞, 昧於大體, 專論父祖曖昧之咎與其瑣屑不緊之事, 而不爲持循遠猷, 好作激昻高論, 遂致異議沸騰, 齟齬莫合, 竟使良法不行盛代。 以此觀之, 非國家不欲行之, 實臺閣廢之也, 可勝嘆哉? 臣等竊復惟念, 近來官吏連犯貪墨, 置諸重典者有矣, 然而贓賄犯藉〔犯籍〕 者繼踵。 又有若欺罔浮誕, 淫逸荒怠, 殘暴傲虐, 放僻奢侈, 懶慢譖賊, 諂侫奔競等罪例科條, 非惟載諸律文, 亦且著於令甲, 靡不痛治, 然而前車覆, 而後車繼覆。 然則欲興至治者, 不可徒恃刑法, 而必以風俗爲急, 欲求轉移神捷之機, 必以署謝爲重。 古人所謂護風俗如護元氣, 重名節如重鬼神者, 舍此何以哉? 伏望殿下, 下敎庶官, 悉令署謝, 明勑臺閣, 除工商賤隷庶孽, 爲衆所共知外, 毋或議及世係, 暗昧瑣末不切之事, 直論自己心行善惡關於士風者, 善者先署, 惡者後署, 若其惡重者不署, 以示激勸。 執此之法, 堅如金石, 至于永久, 則將見姦化爲直, 邪化爲正, 士風丕變, 相率爲君子矣。 若曰二品以上踐歷旣久, 爵齒俱邁, 不必署謝, 則以命官制詞行之, 亦可也。 命官制詞, 其源出於, 自《說命》《康誥》《微子》《蔡仲之命》以來, 歷代靡不行之。 非止命官, 至於罷黜, 亦有詞焉。 又有封還詞頭不草制者, 則制詞署謝, 名雖異, 而其所以奬善懲惡則一也。 今上國亦用誥命, 乞依前代與時王之制, 二品以上, 以制行之, 則國家幸甚, 士風幸甚。

命留之。


  • 【태백산사고본】 18책 57권 15장 A면【국편영인본】 3책 407면
  • 【분류】
    정론-정론(政論) / 인사-임면(任免) / 인사-관리(管理) / 역사-고사(故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