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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56권, 세종 14년 5월 23일 경진 1번째기사 1432년 명 선덕(宣德) 7년

일본 국왕의 사신 이라가 불경을 청구하다

근정전에 거둥하여 일본 국왕의 사자(使者) 부관인(副官人) 이라(而羅)를 전내(殿內)에 인견하고 말하기를,

"바다 물결이 험조(險阻)한데 어렵게 멀리 와서, 상사가 겨우 우리 나라 땅에 들어오자마자 병에 걸리어 목숨을 잃었으니 내 매우 애도하노라."

하니, 이라(而羅)가 대답하기를,

"소인(小人)의 심정은 다 아뢰기 어렵습니다."

하였다. 일본 국왕의 서신(書信)에 이르기를,

"귀국이 우리와 매우 가깝게 있어서 배가 서로 왕래하며, 통신하고 문안하여 우호(友好)의 예를 닦은 것은 옛날부터 그러한 것으로써 한 때도 그치지 않았습니다. 근래의 3년 동안은 국내에 일이 많아서 그 사이에 통신을 보사(報謝)하지 못하였으나, 성의가 해이한 것은 아닙니다. 이제 범령(梵齡)을 보내어 석씨(釋氏)의 대장경(大藏經) 2벌[部]을 청구하오니, 윤허를 내려 주시기 바랍니다."

하고, 예물(禮物)로 불상(佛像)·수정주(水精珠)·그림 부채[畫扇]·감초(甘草)·호초(胡椒)·구리로 만든 큰 칼·창(槍)·병풍·붉은 항아리[朱盆]·대모탁자(玳瑁托子)·흑칠탁자(黑漆托子)·매화피(梅花皮)·상어피[砂魚皮]·바랜 비단[練綃]·등(藤)이었다. 석성(石城) 종금(宗金)이 예조에 서신을 보내어 말하기를,

"지난 해에 봉명 사신(奉命使臣)으로 귀국에 가서 뵈옵게 되어 비록 저의 평소에 발돋움하고 바라보던 뜻은 위로할 수 있었으나, 귀국의 조정을 번거롭게 할 명령을 받들고 간 것이 많지 않았다고 말할 수 없었습니다. 이제 우리 나라에서 범령을 보내어 우호의 예를 닦고, 나아가 불경(佛經)을 청구합니다. 저의 어린 아들로 부사(副使)를 삼았습니다."

하고, 이어 토산물(土産物)을 바치니, 정포 15필을 회사(回賜)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7책 56권 27장 A면【국편영인본】 3책 393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사상-불교(佛敎) / 무역(貿易)

○庚辰/御勤政殿, 見日本國王所使副官人而羅于殿內曰: "滄波險阻, 艱難遠來。 上介纔入我境, 纏疾殞命, 予甚悼焉。" 而羅對曰: "小人之情, 難以盡啓。" 國王書曰: "貴國密邇於我, 舟楫往來, 通問修好, 自古而然, 不止一時, 比者三數歲, 以封內事殷, 間缺報信, 非緩也。 今遣梵齡, 討釋氏大藏二部, 冀賜兪允。" 禮物: 佛像、水精珠、畫扇、甘草、胡椒、銅大刀ㆍ槍、屛風、朱盆、玳瑁托子、黑漆托子、梅花皮、砂魚皮、練綃、藤。" 石城 宗金致書禮曹曰: "往歲銜命往拜, 雖慰平日跂望之志, 煩貴朝將命, 不爲不多。 今我國遣梵齡修好, 就求釋典, 令僕幼子副之。" 仍獻土物, 回賜正布十五匹。


  • 【태백산사고본】 17책 56권 27장 A면【국편영인본】 3책 393면
  • 【분류】
    외교-명(明) / 외교-왜(倭) / 사상-불교(佛敎) / 무역(貿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