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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55권, 세종 14년 3월 25일 갑신 2번째기사 1432년 명 선덕(宣德) 7년

상정소 제조 맹사성·권진 등을 불러 의논하다

상정소 제조 맹사성·권진·신상·허조·정초 등을 불러 의논하였다. 그 첫째로는,

"전일에 의논하던 〈천비(賤婢)의 자녀(子女)를〉 아비를 따라 양민으로 한다는 법은 되풀이하여 생각하여 보았으나 최선의 방법을 깨닫지 못하겠다. 내 생각으로는 조종의 세운 법이 비록 진선진미(盡善盡美)한 것이 아닐지라도 가볍게 고칠 수 없는 것이다. 더군다나, 이 법을 세운 것은 오로지 하늘이 백성을 낳으매 본래 귀천(貴賤)의 차별이 없는 것인데, 전조에서 천한 자는 어미를 따른다는 법[賤者隨母法]을 세워서, 양민의 자손으로 하여금 도리어 천인이 되게 한 것은 진실로 하늘의 이치에 맞지 않는 일로써 영구히 통용할 만한 법이 아니므로, 태종께서 대신들과 함께 심사숙고(深思熟考)하여 드디어 아비를 좇아 양민으로 한다는 법[從父爲良法]을 세운 것이니, 이것은 만세의 아름다운 법이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는 사비(私婢)가 천인 남편에게 시집가서 낳은 자식을 양민을 만들고자 하여, 양인을 끌어들여 그것이 아이의 친아비라고 일컬으니, 이것으로 인하여 그 아비를 아비로 하지 않아 윤상을 파괴하며 어지럽히게 된다. 이것은 오늘의 큰 폐단이니 바로잡지 않을 수 없다. 경들이 전일에 의논하기를, ‘공·사의 계집종이 양인 남편에게 시집갈 때에는 본주인에게 신고하여 문안(文案)을 작성한 다음에 시집가기를 허락하게 하라. ’고 하였으나, 이 의논은 옳은 것 같으면서 그른 것이다. 공처(公處)의 계집종이라면 그가 양민에게 시집갈 때를 당하여, 관리는 그 종이 자기의 사유물이 아니니 혹은 그대로 들어 줄는지 모르겠으나, 만약 사삿집의 계집종이라면 비록 양민에게 시집가고자 하더라도 그 주인은 반드시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각기 마을의 이정(里正)에게 신고하여 문안을 작성한 뒤에 시집가도록 허가하게 하는 것이 어떻겠는가."

하니, 사성 등이 아뢰기를,

"비록 이정이나 이장(里長)에게 신고하더라도 아비를 아비로 하지 않는 폐단은 근절되지 않을 것입니다. 아비를 따라 양민이 되게 하는 법은 아비를 존중하는 뜻에서 나온 것으로서, 천리와 인정에 합치하는 천하 고금의 확론(確論)입니다. 태종께서 옛것을 개혁하고 새로운 제도를 정함에 있어서 아비를 좇는 법을 세운 것은 진실로 한 시대의 훌륭한 법전입니다. 그러나 사내 종이 양민 여자에게 장가들어 낳은 자녀는 홀로 아비를 따르지 않는 것은 매우 사리에 통하지 않습니다. 사내 종이 양녀에게 장가들어 낳은 자녀도 또한 아비를 따라 천인이 되게 하여 천륜(天倫)을 존중하게 하소서."

하였다. 임금이 말하기를,

"그것은 옳지 않다. 국가가 법을 세우는데 어찌 종으로 하여금 양녀에게 장가들게 규정할 수 있겠는가. 내 생각에는 양민과 천민이 서로 관계하는 것을 일절 금단시키고, 만약 범법하는 자가 있거든 율에 의거하여 처벌하며, 그 범법 행위로 인하여 낳은 자녀는 다 속공(屬公)하게 하는 것이 사리에 맞고 유익하지 않겠는가."

하니, 사성 등이 아뢰기를,

"성상의 하교가 지당합니다. 그러나 통하지 않는 점이 있습니다. 사삿집의 노비로서 주인을 배반하고 공에 투탁(投托)하는 자가 홍수처럼 범람하고 있습니다. 만약 그러한 법을 세운다면 사비(私婢)는 자기의 자녀가 속공되는 것을 기쁘게 여겨, 모두 양민의 남편을 얻어서 그의 자녀로 하여금 다 공천이 되게 할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백년을 넘지 않아서 사천은 거의 없어질 것입니다. 또 범법하는 자가 너무 많아서 그 죄를 다 처벌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만약 부득이하다면 양인과 천인 사이의 통간을 일절 금지하고, 그 범법 행위로 낳은 자녀는 각각 주인에게 돌려주게 한다면, 사비는 양인 남편이 자기에게 무익(無益)하다는 것을 알고 반드시 양민과 통간을 즐겨하지 않을 것입니다."

하였다. 둘째로는,

"옛 법을 상고하여 보니 인사 행정(人事行政)을 맡은 자의 자손은 관직을 제수(除授)받지 못하게 되어 있다. 우리 나라에서도 또한 상피(相避)025) 하는 법을 세워서 모든 간섭(干涉)은 다 회피하면서, 벼슬을 제수(除授)하는 데 이르러서는 오로지 회피(回避)하지 아니하니 진실로 타당하지 못하였다. 태종 때에 분경(奔競)026) 을 금지시킨 것이 어찌 의미 없이 한 일이겠는가. 내가 여기에 뜻을 둔 것이 오래이다. 집현전(集賢殿)으로 하여금 옛 제도를 조사하게 하였더니, ‘시중(侍中)이나 상서의 자제는 관리가 될 수 없다. ’고 한 것이 있었다. 내가 이 법을 세우고자 하니 어떤가. 만약 법을 세운다면 마땅히 분경을 금하는 예에 따라 한계를 정할 것인가, 혹은 상피의 예에 따라 〈한계를 정할〉 것인가. 경 등은 당시의 집정자라고 하여 꺼려하지 말고 공정하게 논의하여 아뢰라."

하니, 사성 등이 아뢰기를,

"성상의 하교가 지당합니다, 이것은 신 등이 평일에 논의한 일입니다. 만약 분경을 금지하는 범위를 한계로 한다면 인재를 얻기가 어렵게 될 것이니, 마땅히 상피(相避)의 예에 좇아 사촌(四寸)까지를 한계로 하여 제수를 허락하지 않도록 하소서."

하니, 그대로 따랐다.


  • 【태백산사고본】 17책 55권 26장 B면【국편영인본】 3책 378면
  • 【분류】
    신분(身分) / 사법-법제(法制) / 인사-관리(管理) / 가족-가족(家族)

  • [註 025]
    상피(相避) : 친족 또는 기타의 관계로 같은 곳에서 벼슬하는 일이나, 청송(聽訟)·시관(試官) 등을 피하는 것.
  • [註 026]
    분경(奔競) : 엽관 운동(獵官運動).

○召詳定所提調孟思誠權軫許稠申商鄭招等議之, 其一曰:

前日所議, 從父爲良之法, 反覆思之, 未得其要。 予意以爲祖宗立法, 雖未盡善, 不可輕改。 玆法之立, 專以天之生民, 本無貴賤, 而前朝立賤者隨母之法, 使良人之後, 反爲賤人, 誠不合於天理, 非萬世通行之法也。 是故太宗與大臣, 深思熟議, 乃立從父爲良之法, 是萬世之美法也。 然至于今公私婢嫁賤夫所生, 欲令從良, 援引良人, 稱爲親父, 因此不父其父, 敗常亂倫, 此今日之巨弊, 不可不救也。 卿等於前日議曰: "公私婢子嫁良夫時, 告本主成文案, 然後方許交嫁。" 此議似是而非。 公處婢子, 則當其嫁良夫之時, 官吏非自己之物, 猶或聽從, 若私婢則雖欲交嫁, 必不許之。 各告里正, 成立文案, 然後許令交嫁何如?

思誠等曰: "雖告里正長, 不父其父之弊, 亦不絶矣。 從父爲良之法, 出於重父之義, 合於天理人情, 而天下古今之確論也。 太宗革故鼎新, 以立從父之法, 誠一代盛典也, 而奴娶良女所生, 獨不從父, 甚爲不通。 奴娶良女所生, 亦令從父爲賤, 以重天倫。" 上曰: "是不可也。 國家立法, 豈可令僕隷娶良女乎? 予意以爲一禁良賤相奸, 如有犯法者, 依律斷罪。 其犯法所生, 皆令屬公, 無奈便益耶?" 思誠等曰: "上敎至當, 然有不通者。 私賤背主, 投托於公者, 滔滔皆是。 若立此法, 則私婢樂其所生之屬公, 皆嫁良夫, 令其所生, 盡爲公賤, 不出百年, 私賤殆盡。 且犯法者頗多, 難以盡治其罪。 如不得已, 則一禁良賤通奸, 其犯法所生, 各還於主, 則私婢知良夫之無益於己, 必不樂爲矣。" 其二曰:

稽諸古典, 執政者之子孫, 不得除授官職, 本朝亦立相避之法, 凡有干涉, 悉皆回避, 至於除授, 獨不回避, 誠爲未便。 太宗時禁絶奔競, 豈無意歟? 予之意此者有日, 令集賢殿稽古制。 侍中尙書之子弟, 不得爲吏者有之, 予欲立此法, 何如? 若立法, 則當從禁奔競之例定限歟? 抑從相避之例乎? 卿等勿以當時執政爲嫌, 公議以啓。

思誠等曰: "上敎至當, 此臣等平日所議之事也。 若從禁奔競之限, 則得人爲難, 宜從相避之例, 限四寸不許除授。" 從之。


  • 【태백산사고본】 17책 55권 26장 B면【국편영인본】 3책 378면
  • 【분류】
    신분(身分) / 사법-법제(法制) / 인사-관리(管理) / 가족-가족(家族)