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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실록 54권, 세종 13년 12월 25일 병진 5번째기사 1431년 명 선덕(宣德) 6년

박연이 무동의 충원과 방향의 제조, 맹인 악공 처우 등의 일을 아뢰다

관습 도감사 박연이 상언하기를,

"회례에 여악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이는 역대의 좋은 법인 것입니다. 그러나 정재(呈才)의 무동의 정수는 50인인데 빠진 수를 갖추어 모두 60여 인이나 되니, 이것은 오래 되도록 폐지할 수 없는 법이므로 생각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각도의 감사가 주현의 노비의 쇠잔함과 번성한 것을 참작하여, 혹 한 고을에 1명씩. 혹은 두서너 고을을 합하여 1명씩 혹은 너댓 고을을 합하여 1명씩으로 진공(進貢)하는 정원을 나누어 정하여, 동남은 11세 이상 13세 이하의 용모가 단정하고 깨끗하며, 성품과 기질이 뛰어나게 총명하여 어전의 정재(呈才)에 갖출 만한 사람을 가려서, 경상도에 15명, 전라도에 10명, 충청도·강원도에 각각 7명, 경기도·황해도·평안도에 각각 5명, 함길도에 3명을 원정원으로 정하고, 서울과 지방에 명부(名簿)를 두고 임자년부터 윤번으로 수효를 채워서 서울로 올려보내게 하고, 관청에서 의복과 양식을 주고 또한 초료(草料)를 주게 하고, 한번 입속(入屬)한 이후로 나이 장성하여 쓰지 못하거나, 사고가 있어 일할 수 없는 사람은 나누어 각 고을에 배정하고는 전의 것에 의거하여 수효를 채워서 보내게 할 것입니다.

1. 동남이 장정이 되기 전에 어버이를 떠나 오고 친족을 버리게 되어, 생리가 의지할 데가 없고 의식을 계속하기가 곤란하면 반드시 배우기를 즐겨하지 않을 것이며, 또 어린아이의 용모는 오래 지속하지 못하는 데도 정재하는 연월은 기한이 있으니, 소재관으로 하여금 한 집만 사역하지 말고 부모 형제나 멀고 가까운 족속 등 동남이 의지하는 호는 그냥 놀리고 역사를 시키지 말고 그들로 하여금 왕래하면서 봉족들게 하고, 또 사시로 의복과 양식을 내려서 우대하여 학문을 권장하게 하고, 나이 장성하여 쓸 수 없는 지경에 이른 후에 본 고장에 돌려보내어 역을 정하게 할 것이며, 만약에 여러 가지 음악에 겸해 익혀서 당상과 당하의 악공이 될 만한 사람이 있으면 그대로 주악의 수효에 충당할 것입니다.

1. 방향(方響)178) 의 한 악기는 양나라 때부터 일어나서 상하에서 통용하여 쇠북[鍾]과 경쇠[磬]의 소리를 대신한 것입니다. 팔음의 중에서 다만 경쇠 소리만이 사시로 변하지 않는데, 방향도 또한 그러합니다. 그 나머지 속이 비고 구멍이 뚫린 악기는, 몸체가 얇고 안이 비어서 음양의 기운을 쉽사리 느끼는 까닭으로, 한여름이 되면 건조해서 소리가 높고, 한겨울이 되면 응삽(凝澁)해서 소리가 낮게 되므로, 반드시 경쇠 소리에 의하여 조절해야만 소리가 비로소 조화되니, 《시경》의 이른바, ‘나의 경쇠 소리에 의거한다. ’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경쇠 소리 외에는 다만 방향이 의거할 만하므로 진실로 절실하고 긴요함이 되겠지마는, 그러나 우리 나라의 방향은 다만 3(部)부만 있는데, 그 소리가 절반 이상이 그 정성을 얻지 못했으니 한스러운 일입니다. 또 문밖의 행악의 기구를 살펴본다면, 천자의 제도는 방향 8가를 사용하니, 제후의 나라에서는 마땅히 그 제도를 반으로 해서 만들어야 될 것인데, 또 도감에서 여러 악공이 배우는 것은 다만 창고 안에 간수하고 두고 있어, 사사로이 익히는 사람은 오로지 의거할 바가 없으니 작은 결점이 아닙니다. 원하건대, 더 만들어 바로잡아 다스려서 한편으론 행악의 수효를 갖추고, 한편으론 사사로이 익히는 악기를 넓히게 하소서.

1. 관현의 음악을 맡은 장님은 모두 외롭고 가난하여 말할 데가 없는 사람들로서, 지난해에 뽑아서 관습 도감에 들어온 사람이 겨우 18인 정도인데 재주가 취할 만한 사람은 4, 5인에 지나지 않고, 그 나머지는 모두 처음 배워서 익숙하지 못하고 나이가 이미 반이 넘어서 잔폐(殘廢)함이 이미 심하여졌습니다. 대개 관현의 음악을 익히는 일은 고생을 면치 못하지마는 복서(卜筮)의 직업은 처자를 봉양할 만한 까닭으로, 총명하고 나이 젊은 사람들은 모두 음양학으로 나가고 음률을 일삼지 않으니, 만약 격려시키는 법이 없다면 고악(瞽樂)179) 은 끊어지고 장차 힘쓰지 않을 것입니다. 옛날의 제왕은 모두 장님을 사용하여 악사를 삼아서 현송(絃誦)의 임무를 맡겼으니, 그들은 눈이 없어도 소리를 살피기 때문이며, 또 세상에 버릴 사람이 없기 때문인 것입니다. 이미 시대에 쓰임이 된다면 또한 그들을 돌보아 주는 은전이 있어야 될 것 같습니다. 신의 어리석은 의견으로는 이미 도감에 소속된 18인 안에서, 그들이 연회에 모신 지 시일이 오래 된 사람은 동반 5품 이상의 검직(檢職)을 제수하고, 그 나머지도 모두 배참을 허용하고, 만약 총명하고 나이 젊어서 여러 음악을 통해 알면서 자원하여 입속하는 사람은 처음에 7품 검직을 제수했다가, 그들이 익힘을 기다려 예에 의거하여 참직을 주어서 자손들의 후일의 길을 열어 준다면, 우리에게 있어서도 비용이 없이 베풀어 주는 은혜가 될 것이며, 저들에게 있어서도 권장하지 않는 권장이 될 것이니 도리에 해롭지 않을 듯하온데, 더군다나 점치는 장님에게 검직을 주는 것은 이미 그 전례가 있지 않습니까. 또 그들에게 쌀을 내리는 것도 봄·가을 두 철에 국한하지 말고 사사로 나누어 주어서 권려(勸勵)하고 흥기시키도록 하소서. 사대부의 자손으로서 폐질이 있는 사람이 하나뿐이 아닌데, 이 무리들이 이미 벼슬할 도리도 없으며 또한 음직(蔭職)을 물려 받은 예도 없으니, 이것은 이른바 세상의 버린 사람입니다. 만약 승중(承重)을 하여 이런 변고를 만난 사람이 있다면, 비록 공경의 아들과 훈벌의 자손일지라도 자신이 이미 관작이 없으므로 조종에 봉사할 수 없게 되니, 이것은 성주께서 피아(彼我)의 차별이 없이 또 같이 사랑하는 덕화가 그늘진 골짜기와 엎은 동이 밑에는 미치지 못하는 유감이 없지 않을 것입니다. 원컨대, 4, 5품의 검직을 주어 겸해 구제하고, 이어서 전책에 써서 영구히 일정한 규정으로 삼으소서."

하니, 명하여 상정소에 내려 함께 의논하여 아뢰도록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7책 54권 40장 A면【국편영인본】 3책 364면
  • 【분류】
    예술-음악(音樂) / 인사-관리(管理) / 군사-군역(軍役) / 신분-천인(賤人) / 재정-역(役) / 정론-정론(政論)

  • [註 178]
    방향(方響) : 악기 이름.
  • [註 179]
    고악(瞽樂) : 맹인(盲人)의 음악(音樂).

○慣習都監使朴堧上言:

會禮不用女樂, 此絶代之令典也。 然呈才舞童正數五十人, 幷備闕數幷六十許人, 此是久遠不廢之法, 不可不慮。 各道監司酌州縣奴婢殘盛, 或一官一名, 或幷二三官一名, 或幷四五官一名, 分定貢額, 擇童男年十一歲以上十三歲以下容貌端潔、性氣穎悟, 可備御前呈才者, 慶尙道十五名, 全羅道十名, 忠淸江原道各七名, 京畿黃海平安道各五名, 咸吉道三名, 定爲元額, 京外置簿, 自壬子年輪次充數上送, 官給衣糧, 路上亦給草料。 一。 入屬已後, 年壯不用及有故不立者, 分定各官, 依前充數以送。 一。 童男未及成丁, 離親去族, 生理無依, 衣食難繼, 則必不樂學。 且童稚容貌未久, 而呈才年月有限, 令所在官勿役一家, 不問父母兄弟遠近族屬, 童男所依之戶, 放閑勿役, 使之來往奉足。 又於四時賜衣糧, 優恤勸學, 及年壯不用, 然後還本定役。 如有兼習衆樂, 可爲堂上堂下之工者, 仍充奏樂之數。 一。 方響一器, 起自朝, 上下通用, 以代鍾磬之音者也。 八音之中, 唯磬聲四時不變, 而方響亦然。 其餘中虛鑽穴之器, 則體薄內空, 易感陰陽之氣, 故盛夏則乾燥而聲高, 隆冬則凝澁而聲下, 必依磬聲而調之, 然後音始諧和, 《詩》所謂依我磬聲者, 以此耳。 磬聲之外, 唯方響可據, 誠爲切要, 然我國方響, 只有三部, 而其聲過半, 不得其正, 爲可恨也。 又考門外行樂之器, 天子之制, 用方響八架, 在侯邦, 宜半其制而爲之。 且於都監衆工之學, 只有藏之庫內, 私習之人, 專無所據, 非小欠也。 乞令加造, 極正修治, 一以備行樂之數, 一以廣私習之器。 一。 管絃之盲, 皆孤寒貧窮無告之人。 往年擇入慣習都監者, 僅十有八人, 才品可取者, 不過四五人, 餘皆初學未熟, 年已過半, 殘廢已甚。 蓋管絃之習, 未免艱苦, 卜筮之業, 足養妻子, 故聰明年少者, 皆赴陰陽學, 不以音律爲事。 若無激揚之法, 則瞽樂廢絶, 將不勉也。 古先帝王皆用瞽者, 以爲樂師, 委之絃誦之任, 以其無目而審於音, 且以天下無棄人也。 旣爲時用, 則疑亦有矜恤之典也。 臣愚妄意已屬都監十八人內, 其陪宴年久者, 除授東班五品已上檢職, 其餘竝許拜參, 如有聰明年少, 衆樂通曉, 自願入屬者, 初除七品檢職, 待其慣習, 例加參職, 以開子孫後日之路, 則在我爲不費之惠, 而在彼爲不勸之勸, 似不害理。 況卜盲檢職, 已有其例乎? 又其賜米, 勿限春秋兩等, 四時分與, 勸礪興起。 士大夫子孫廢疾者非一, 此輩旣無筮仕之理, 又無承蔭之例, 此正所謂天下之棄人。 如有承重, 而遘此變者, 雖公卿之子、勳閥之冑, 身旣無爵, 不得奉祀祖宗, 此於聖主一視同仁之化, 不無陰谷覆盆之憾, 願加四五品檢職以兼濟之, 仍謄典冊, 永爲恒(或)〔式〕

命下詳定所, 同議以啓。


  • 【태백산사고본】 17책 54권 40장 A면【국편영인본】 3책 364면
  • 【분류】
    예술-음악(音樂) / 인사-관리(管理) / 군사-군역(軍役) / 신분-천인(賤人) / 재정-역(役) / 정론-정론(政論)