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조가 상인을 사류의 대열에 끼지 못하게 하는 법의 부당함을 아뢰다
상참을 받고, 정사를 보았다.
찬성(贊成) 허조(許稠)가 이뢰기를,
"우리 나라에서 본래 상인(常人)에 매어 있는 자를 사류(士類)의 대열에 참예하지 못하게 한 법은 잘 된 것으로 볼 수 없습니다. 상(常)이란 평상(平常)을 뜻하는 것이니, 평상의 사람이 어찌 벼슬길에 통하지 못할 이유가 있사오리까. 고려조가 한창 융성할 때 아랫사람이 윗 사람을 능멸히 보는 악습을 미워하여, 문무(文武)의 참외관(參外官)은 법을 집행하는 관원으로 하여금 그 죄를 바로 결단하여 시행한 바 있었기 때문에, 풍속이 박한 데까지는 이르지 않았사온데, 지금은 참외관과 음관(蔭官)의 자제들까지도 반드시 모두 계달(啓達)하여 그 죄를 논단하기 때문에, 문무(文武)의 사족(士簇) 이외에 공상(工商)·천례(賤隷)의 무리도 반드시 계달해 죄를 논단하고 있어, 아마도 장래에는 사류(士類)와의 혼잡을 일으키어 양천(良賤)의 등위(等位)가 없을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말하기를,
"공상(工商)·천례(賤隷)·잡직자(雜職者)는 사류(士類)와 대열을 같이 하지 못함은 물론이나, 만약 동·서반의 직위에 참예한 자는 그 직임이 구별이 없는 이상 대우에 있어 다를 수 있겠는가."
하였다. 총제(摠制) 정초(鄭招)가 아뢰기를,
"중국의 관제(官制)에는 각품(各品)마다 모두 잡직(雜職)이 있어 유품(流品)이 참예하지 못하오나, 우리 나라의 관제는 잡류(雜類)의 구별이 없기 때문에 공상(工商)·천례(賤隷)·조예(皂隷)·소유(所由)·나장(螺匠)·장수(杖首)의 무리일지라도 직임만 얻을 것 같으면 모두 조관 반열에 참예하고 있으니 심히 미편한 일입니다. 비옵건대, 서반(西班) 관직을 줄이고 따로 잡직(雜職)을 설정하시와 문무관의 지위를 높이도록 하옵소서."
하니, 임금이 옳게 여기고 말하기를,
"이런 무리들로 동·서반의 직품을 받은 자도 또한 조반(朝班)에 참예하고 있느냐."
하니, 판서 신상(申商)이 대답하기를,
"사옹원(司饔院)·사막원(司幕院)·상의원(尙衣院)·상림원(上林園)의 악공(樂工)과 도화원(圖畫院)의 무리들은 모두 유품(流品)이 아니라서 반열에 참예하지 못하오나, 그 나머지는 비록 공상(工商)·천례(賤隷)라 할지라도 동·서반의 직품을 받을 것 같으면 모두 조관의 반열에 참예하고 있습니다."
하매, 임금이 말하기를,
"경들의 말이 옳다. 상정소(詳定所)로 하여금 잡직의 설정에 대한 타당 여부를 논의하게 하라."
하였다. 이 일을 아뢴 자들이 나가니, 임금이 대언들에게 이르기를,
"공상(工商)·천례(賤隷)와 장수(杖首)의 부류로서 직품을 받은 자는 ‘교지(敎旨)를 받지 않고 그 죄를 논단한다. ’는 의논이 과연 어떠한가."
하니, 황보인(皇甫仁) 등이 대답하기를,
"비록 공상·천례라 할지라도 어찌 쓸 만한 인재가 없겠습니까. 이미 유품(流品)을 받았다면 구별해 대우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형벌을 엄중히 시행하여 풍속을 돈후(敦厚)하게 한다는 허조(許稠)의 의논은 정당한 언론이 아니옵니다."
하매 임금이 말하기를,
"그럴 것 같다. 잡직 설정에 대한 의논은 어떠한가."
하니, 모두 아뢰기를,
"잡직을 설정하여 전혀 다른 부류로 대하면 반드시 모두 실망할 것이니, 어찌 중후한 뜻으로 보겠습니까. 참외(參外)라면 가할지 모르오나, 참상(參上)은 더욱 곤란할 것입니다."
하니, 임금이
"그럴 것이다."
하였다.
- 【태백산사고본】 15책 49권 31장 A면【국편영인본】 3책 259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신분(身分)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역사-고사(故事)
○乙巳/受常參, 視事。 贊成許稠啓: "國朝令本係常人, 不得齒士類之法, 未盡善也。 常者, 平常也。 平常之人, 豈有不通仕路之理乎? 前朝盛時, 惡下之陵上, 文武參外官, 令執法官直斷施行, 故風俗不至澆薄, 今則參外及有蔭子弟, 必皆啓達論罪, 故文武士族外, 工商賤隷之輩, 亦必啓達論罪, 恐將與士類混雜, 良賤無等矣。" 上曰: "工商賤隷雜職者, 則不得齒士類尙矣, 若齒於東西職次者, 職旣無別, 待何有異乎?" 摠制鄭招啓: "中朝官制, 各品皆有雜職, 不列於流品, 本朝官制, 則無雜類之別, 故工商賤隷, 皂隷所由、螺匠杖首之類, 若得受職, 則竝齒朝班, 甚爲未便。 乞減西班官職, 別設雜職, 以尊文武官。" 上然之曰: "如此輩受東西班職者, 亦參朝班乎?" 判書申商對曰: "司饔、司幕、尙衣院、上林園樂工、圖畫院之輩, 皆非流品, 不得參班, 其餘雖工商賤隷, 若受東西職, 則竝參朝班矣。" 上曰: "卿等之言然矣, 其令詳定所議設雜職便否。" 啓事者出。 上謂代言等曰: "工商賤隷杖首之類受職者, 勿取旨論罪之議, 何如?" 皇甫仁等對曰: "雖工商賤隷, 豈無可用之才? 旣受流品, 則不可區別待之也。 嚴刑以厚風俗, 稠之議, 非正論也。" 上曰: "然。 設雜職之議何如?" 僉曰: "設雜職, 待以異類, 必皆缺望, 豈厚意也哉? 若參外則可矣, 參上則尤難矣。" 上然之。
- 【태백산사고본】 15책 49권 31장 A면【국편영인본】 3책 259면
- 【분류】왕실-의식(儀式) / 신분(身分) / 행정-중앙행정(中央行政) / 역사-고사(故事)